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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kimsi (!수이리!)
날 짜 (Date): 1994년03월10일(목) 15시13분02초 KST
제 목(Title): "안암동"과"압구정동" 유래




 유석재   (deam    )

지명의 유래 ―안암동과 압구정동              03/10 00:41   68 line


안암동과 압구정동이라... 둘다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이시대의 문화공간임엔
 틀림없으나, 너무나도 서로 이질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동네들이라고 해
야 하겠지요? 물론 압구정동의 문화가 훨씬 자극적(!)이어서 안암동"조차" 물
들어가고 있다고 개탄하는 분위기가 작금의 현실이지만서도...

그런데... 최근에 서울시 지명들의 유래를 조사하던 도중, 저는 안암동(安岩
洞)과 압구정동(狎鷗亭洞)이라는 두 지명이 같은 시대(조선 세조: 1455-1468
)에 생겨났으며, 또한 그 이름이 지어진 연유에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음
을 알게 되었습니다.

압구정동의 "압구정"은 원래 조선시대에 지금의 압구정동 한강변에 있던 정자
였습니다. 이 정자의 이름은 바로 당시의 정난공신으로서 네 번이나 공신의 
지위에 올랐던 한명회(韓明會)의 호이기도 했습니다. 옛날 MBC에서 <조선왕조
 500년>인가 하는 드라마에서 정진이라는 배우가 맡아서 출세와 처세의 화신
같은 연기를 펼쳐보여 세간의 화제를 모았던 그 인물입니다. 요즘은 이덕화가
 꽤 애쓰고 있습디다만...

당시 5공때 그 드라마의 극작가는 놀랍게도(!) 수양대군을 개혁가로, 한명회
를 야심가적 정치가로 설정함으로써 화제를 모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쿠데
타를 일으킨 쪽이 정의의 편이 되던 시대에서나 가능한 역사해석이었지요...
 수양대군과 한명회를 아무리 좋게 본다고 해도 권력층 내부의 이기적 패권다
툼에서 권모술수가 뛰어나다는 점밖에는 평가할게 없죠. 한명회란 인물은 한
번 수양대군의 눈에 든 이후 탄탄대로의 체제내적 인생행로와 최첨단의 부귀
영화를 누린 인물입니다...

이렇게 성공(!)적인 인생의 기반을 다진 그는 이제는 문화적인 여유를 누리고
 싶었던지... 한강건너 경치좋은 곳에 갈매기[鷗]와 친하다[狎]는 뜻의 압구
정(狎鷗亭)이란 정자를 지었더랍니다. 그리고는 여기서 명나라 사신이 오면 
호화로운 잔치를 베풀어 접대하였는데, 때로는 왕의 행차때만 사용되던 용봉
(龍鳳) 차일까지 칠 정도로 호기를 부렸답니다... 항상 8도의 수령방백들이 
줄을 서서 이곳에 진상품을 보내 그의 재물과 권세를 빛내고... 하지만 이름
과는 달리 정자 주위에는 갈매기가 얼씬도 하지 않았답니다...

자! 그런데... 이렇듯 세속적이고 체제내적인, 그리고 문화사대주의적이고 첨
단적인 부귀영화를 누리던 압구정이 번창할 무렵, 저어기 북악산(北岳山)의 
한 기슭에 솟아있는 개운산(開雲山) 아랫편의 범상치않은 동네에는... 그 한
명회의 사촌형이며 덕망과 학식으로 이름높은 한계희(韓繼禧)라는 인물이 살
았답니다...

그는 정신없이 잘나가던 망나니같은 사촌동생과는 달리, 집안이 매우 청빈하
여 나물과 조식으로 끼니를 이었으며, 그나마 과분하다고 해서 양을 줄였답니
다... 이런 꼴을, 가문과 족벌의 영화를 누리던 그 집안에서 가만 놔둘리 없
죠... 한명회 이하 부원군이며 정승인 친척들이 양식을 보내주어도 절대로 받
지 않았답니다...

어쨌든 집안의 체면문제도 있고 워낙이 이름높은 선비라서 가문의 이미지를 
상당히 순화시켜 주는지라 문중모임에서 대책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명회의 제안으로 문서를 한장 작성하여 친척들이 연대서명하게 되었죠. 그
 문서란...

흥인문 밖의 고암(鼓岩: 지금의 고려대 구내에 있던 북바위라고 하는데 확실
한 위치는 불분명함. 아마도 지금의 인촌기념관 옆에 있는 그 바위?) 밑에 있
는 논 열섬지기를 한계희에게 억지로 받게 하였답니다...

그러나 한계희는 이 논을 받아 자기가 가지지 않고, 인근의 가장(家長)이 병
든 집이나 어려운 집들에 모두 나누어 주었고, 논의 소출이 절대로 자기집 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답니다... 그의 이러한 자선사업은 유언으로 가
문에 계승되어 인근 농가가 편안히 살게 되었고, 이 장한 유업을 기리는 뜻에
서 고암(鼓岩)을 편안한 안(安)字를 써서 안암(安岩)이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
입니다...


참으로... 500년전에 지어진 이름이건만... 지명의 유래라는 것은 결국 제몫
을 하게되지 않습니까? 참으로 상징적이지 않은가요??

                                      �� 달 빛 소 나 타 ��


(프람 하이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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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m, Soo-il                       고려대학교 전산과학과 자연어처리연구실
   E-mail address: kimsi@swsys.korea.ac.kr                Tel.: 02-924-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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