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KoreaUniv ] in KIDS 글 쓴 이(By): taurus (Siegfried) 날 짜 (Date): 1999년 10월 5일 화요일 오전 11시 25분 01초 제 목(Title): [수필27] 월부도둑 월부도둑 이응백 우리 나라에도 작년 세모(歲暮)에 '텔레비젼'의 대량 월부가 있었다. '텔레비젼'을 놓으면 주부가 일손을 쉬게 되고, 애들의 공부에 지장이 많다는 통폐론에도 불구하고 이에 감연히 한몫 끼인 것은 무엇보다도 어린 것이 아직 학령 전이요, 월부라는 편리점에서였다. 방의 크기로 보아 14 인치라도 그리 작은 감이 없이 잘 조화가 되고, 더구나 화면이 일그러지거나 흔들리지 않으며 농담도 고르고 음향도 깨끗하여, 이 진귀한 문명의 산물이 내방객의 호기심을 끌기에 족했다. 그리하여 밤마다 저녁을 끝내고는 찾아오는 '팬'도 생기게 되었다. 이렇게 몇 달을 지내는 동안에 이 이채로운 텔레비젼도 그리 변벼치 못한 우리 살림의 다른 가구들과 제법 어울리게 되어 그대로 자리가 딱 잡히게 되었다. 언제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그 싱싱한 디자인은 방안에 한결 신선한 분위기를 불러일켰다. 그리하여 텔레비젼은 우리 가정에 의젓한 필수품이 되고, 그 시청은 하나의 생리화로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를 어쩌랴? 그 애지중지하던 텔레비전이 어느 비 오는 새벽, 지붕을 타고 들어온 도둑에게 감쪽같이 도난을 당하고 말았다. 흙발로 들어온 그들에게 이끌려 나가며, 그 텔레비젼이 우리를 얼마나 원망했으랴 ? 그리 간단하지 않은 절차동안, 같은 방에서 자면서도 전혀 낌새도 못챘던 것은 마취제의 살포 때문일 것이라고 우리는 아직까지 그렇게 자위하고 있다. 텔레비젼이 앉았던 자리는 보기 흉하리만큼 쓸쓸해 보였다. 더구나 물건은 없어졌어도 월부는 꼬박꼬박 물어야 한다. 말하자면 도둑을 월부로 맞은 셈이다. 하기야 한꺼번에 맞은 것보다는 이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상물 없는 빈 월부를 부어나가기란 아물려던 상처를 건드리는 것 같아 마음이 아리다. 비노니 이훌랑 월부 물건은 월부장까지 가져가는 에티켓을 잊지 말아 주기를 그들 밤손님에게 바라는 바이다. --------------------------------------------------------------------------- ㅣ서점에서 좋은 책을 찾았을 때의 느낌을 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ㅣ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