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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taurus (Siegfried)
날 짜 (Date): 1999년 9월 13일 월요일 오후 02시 06분 35초
제 목(Title): [수필23] 하나의 풍경


하나의 풍경

박연구

찌는 듯이 더운 날씨에 아이 할아버지는 웬 절구통을 사오셨다.
메주콩도 찧어야 할 것이고 언제부터 벼르던 차에 좋은 돌절구통을 만났기에 들여온 
거라 말씀하시기에 자세히 보니까 돌절구였다.
 이 무거운 걸 버스 종점에서부터 메고 왔다는 인부에게 절구통값 오천 오백원을 
얼른 내주라고 하셨을 때도 나는 차마 아버지께서 속으신 것이니 대금을 치르지 
못하겠다는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다. 땀으로 뒤범벅이 된 인부의 얼굴보다도 
그처럼 좋아하시는 어버지에게 사실대로 알려 드린다는 것이 죄송스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아니 계시니까 아버지가 시어머니 몫의 배려까지 하시었다. 김장철이 
임박하면 비싸니까 고추나 마늘을 미리미리 사두라는 등 자상하신 데가 있었다. 
절구통을 보니까 시골집의 나무 절구통이 생각났다. 볼품은 없었으나 어머니의 
체취가 배인 것이라서 내 마음만 같아서는 이사 올 때 가져오고 싶었던 물건이다. 
아버지가 사오신 절구통은 보기는 좋게 생겼지만 사실은 시멘트로 빚어 만든 
거였다. 쑥돌 색깔이 누가 보아도 의심할 수 없는 돌절구가 분명한데....... 내 
설명을 듣고 난 집사람은 어쩌면 그렇게도 부자가 닮았느냐고 핀잔이다. 
 지난 초여름의 일이다. 대구에서 정국진 선생이 올라 오셨을 때 우리 동네 초입에 
있는 화원을 들러 난을 구경만하고 나오자니 미안해서 모란 한 떨기를 샀다. 집의 
화단에 심었더니 이걸 보신 아버지는 모란이 아니라 작약이라 하시면서 너무 
비싸게 사왔다고 야단을 치시던 생각이 나서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 꽃을 파는 아가씨가 분명 모란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모란과 작약이 
비슷하기는 하지만 염연히 풀과 나무의 구별이 있음에도 그걸 미처 생각하지도 
않고 그 아가씨의 말만 믿고 샀던 내가 어리숙한 사람이 되고 말았으나 어느날 
아침 탐스럽게 피운 붉은 꼿송이를 보고선 비싸게 샀다는 생각이 싹 가셔 버렸던 
것이다. 어쩌면 아가씨의 밀도 전적으로 틀린거는 아닐는지 모르겠다. 모란을 
목작약이라고 일컫고도 보면 말이다. 다만 내게는 꽃이 주는 즐거움이 중요할 
따름이다.
 우리집 작은 마당에는 담 밑으로 제법 여러 가지의 꽃나무와 화초들이 심어진 
화단이 있는데, 그 한켠에 아버지가 사오신 절구통이 놓이니 한결 시골스런 풍경의 
조화를 이루게 되었다. 진짜 돌로된 절구통은 꽤나 비쌀 것이다. 내 형편에 그걸 
사기는 어렵겠고 시멘트로 빚은 것이지만 미상불 없는 것보다야 낫다고 
생각되었다. 
 시골과는 달라서 절구통 쓸 일이 별로 없으니만큼 진짜 돌이 아닌들 쉬 깨질 
염려도 없다. 말하자면 실용성보다도 하나의 장식용으로 존재하면 되는 것이다.
 어쩌다 절구통 사용할 일이 생겨서 아내가 절구질을 하면 그 옛날 나의 어머니가 
시골집에서 절구질을 하시던 모습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아니면 또 막내 딸아이가 
소꿉놀이를 한다고 플라스틱 절구통에 절구질을 하는 시늉을 내는 귀여운 모습을 
연상하게도 될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래도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사온신 절구통은 돌이 아닌 가짜 절구라고 일러 
드리고도 싶었다. 계속해서 물건을 속아 사오시면 어떻게 하나 싶은 노파심 
때문이다.
 결국 아내와 나는 이 문제를 다시는 거론 않기로 약속을 하였다.
 아버지가 사시면 얼마나 더 사실 것이며 속아 사오신들 그 액면이 얼마나 될 
것인가. 다만 연만하셔서도 자식의 생활에 마음 써 주시는 어버이의 사랑이 
그지없이 소중스럽다는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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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서점에서 좋은 책을 찾았을 때의 느낌을 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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