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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taurus (Siegfried)
날 짜 (Date): 1999년 9월  7일 화요일 오후 04시 09분 16초
제 목(Title): [수필20] 꼴찌의 변


꼴찌의 변

백임현

나는 어릴 때 달리기를 잘하지 못했다. 어른이 된 후에는 그것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학교 시절에는 그로 인해 위축되기도 하고 열등감도 가졌다.
 특히 매년 운동회 때만 되면 달리기 종목에서 번번이 꼴찌를 도맡아 하는 
사람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와 한 팀이 되면 누구라도 꼴찌는 면하게 되어 
있어 아이들은 좋아하였다.
 세월이 많이 변해서 지금도 시골에 가면 운동회를 하고 있는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우리가 어렸을 때는 가을 추석 무렵이면 학교마다 운동회가 열렸는데 
이것은 지역 주민들의 커다란 축제였다. 학교, 학생, 학부모들이 모처럼 
한마음으로 한자리에서 즐기는 한마당의 흥겨운 잔치였다. 지금도 그 시절 
운동회를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이는 것 같다.
 고르게 다져진 운동장에 눈부신 백색의 트랙이 그려지고 오색 찬란한 만국기가 
높푸른 하늘 위에서 가을바람에 나부끼면 아이들의 가슴은 하늘을 향해 나는 
기분이었다.
 마침내 본부석에 텐트가 쳐지고 금빛 번쩍이는 크고 작은 악기를 들고 이웃 
고등학교의 밴드부가 행진곡을 연주하며 발 맞춰 운동자에 들어서면 아이들의 
설레임과 즐거움은 절정에 달한다. 
 이 부분까지는 나도 다른 아이들과 다름없이 신나고 들뜨고 한다. 그러나 
달리기가 시작되면 이제까지의 즐거움은 갑자기 초조감과 불안감으로 떨리기 
시작한다. 출발신호를 기다리기 위해서 준비 자세를 취하고 있는 그 짧은 순간의 
팽팽한 긴장감이란 도저히 나의 소심한 담력으로는 감당하기 벅찬 부담이었다. 
가슴은 뛰고 다리는 떨리고 부르쥔 두 주먹은 식은 땀으로 젖었다. 그러나 
'탕'하고 출발신호가 떨어지면 나는 놀라서 뒤쳐지고 말았다.
 내가 꼴찌가 되어서 본부석 앞을 지날 때면 그곳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가 손뼉을 
치면서 큰소리로 외치셨다.
 "빨리 뛰어라. 인마! 빨리 뛰어."
그러면 함께 있던 내빈들이, 
 "아 - 저 끝에 뛰는 것이 백교장 딸이야. 빨리 뛰어라! 와하하하........"
하며 함께 응원하는 것이 귓결에 스쳤다. 아- 이 부끄러움. 이때부터 기다리던 
나의 운동회는 무참하게 망가져 버렸다. 다른 아이들이 푸짐한 상품을 안고 돌아갈 
때 나는 금년에도 꼴찌를 면하지 못한 불명예와 수치심 때문에 풀 죽은 모습으로 
집에 오면 사태를 짐작하신 할머니께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아이고 신통한 거. 기 죽을 거 없다. 남보다 앞서 가는 것보다 좀 뒤쳐져서 가는 
것이 편하니라.꼴등이 좋은 거야."
 꼴찌가 좋다고 하는 할머니의 말씀이 결코 옳은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지만, 
나는 낮 동안에 있었던 복잡한 마음들을 잠재우며 편안해졌다. 아버지의 응원과 
할머니의 위로, 이것은 내가 초등학교를 마칠때까지 해마다 되풀이되었던 나의 
운동회 날 이야기였다.
 많은 세월이 지났으므로 지금은 웃으면서 꼴찌만 했던 운동회를 회상하곤 한다. 
특별히 신체에 결함이 있지도 않았는데 왜 그토록 달리기를 못했을까. 적극적이지 
못한 성격과 담력이 부족한 데서 오는 소심함에 원인이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성격은 비단 뜀뛰기에서 뿐만 아니라 어른이 되어 생활인으로 살면서도 여전하여 
내가 남보다 여러 부분에서 뒤지게 되는 원인이 되는 것 같다. 남보다 
앞서야겠다던가  지지 말아야 한다던가 하는 생각은 성격상 애초부터 갖고 있지를 
못하고 있다.
 사람이 살다보면 용기있는 선택과 과감한 결단이 요구될 때가 있다 . 이러한 
경우에 나는 번번이 그 옛날 달리기 출발선에섰던 겁쟁이 어린애처럼 주저하고 
망설이고 떨면서 꼴찌가 되는 때가 많았다. 오로지 앞에 보이는 트랙을 따라 
정신없이 뛰다보면 꼴찌가 되어 있었던 것처럼, 세상 사는 원칙에 따라 겨를없이 
살아왔건만 어쩐지 초라해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 대우받지 못하는 사회 속에서 허위단신 꼴찌로 쫓아 살면서 
문득 박완서 씨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라는 소설을 생각한다. 지금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꼴찌들이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달릴 수 있도록 박수를 보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내가 인생의 달리기에서도 꼴찌를 면치 못하고 있는 변변치 못한 자식임을 
아신다면 지하에 계신 아버지와 할머니는 어떻게 생각하실까. 빨리 뛰라고 손뼉을 
쳐주시던 아버지. 꼴찌가 마음 편하고 좋은 거라고 말씀해 주시던 할머니. 삶의 
고비마다 지치고 힘겨울 때 나는 이 분들의 격려를 환청처럼 들으며 다시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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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서점에서 좋은 책을 찾았을 때의 느낌을 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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