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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taurus (Siegfried)
날 짜 (Date): 1999년 9월  3일 금요일 오후 02시 36분 01초
제 목(Title): [수필18] 이 사


이사

피천득

무슨 생각이었는지 사지 못할 집을 복덕방에 물어보고 가회동 골목길을 도로 
나왔다. 그리고는 발걸음을 비원으로 옮겼다. 비 내리는 고궁에는 산책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날 나는 우연히 돈 삼백환을 내고 값이 있다면 몇 백억이 될 그 넓은 정원을 
혼자 즐길 수 있었다. 흐뭇한 소유감까지 가져보려 하다가 문득 깨닫고 우연히 비 
맞는 연잎들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가난을 느끼는 일이 거의 없다. 다행히 삼십여 년간 실직을 한 일이 없고 
욕심이 많은 편이 아니어서 그런가 보다. 술담배에는 돈을 아니 쓰고 반찬 가게에 
외상을지지 않고 월급을 미리 당겨 쓰지도 않고 월부라든가 계라는 것을 아직 하지 
않아 돈에 쪼들리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식주 셋중에서 주택 때문에 가난을 느끼는 때가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주님의 말씀과 같이 달팽이도 제 집이 있고 누에도 제 집을 만들어 드는데, 
나에게는 내 집이 없었던 때가 있었다.
 남산에서 만호 장안을 내려다보고, 
 " 집, 집, 집 사면에 집, 그러나 우리를 위한 집은 한 채도 없구나." 이런 한탄을 
한 일이 있다. 한때는 옛날 서생들의 기숙사였던 성균관 동재에 방을 빌어 
살림살이를 한 일도 있다. 그리고 이사간 첫날 밤에는 꿈에 유생들이 몰려와서 
나가라고 야단을 치지나 않을 까 퍽 걱정을 하였다.
 어느 해는 일년에 여섯 번 이사를 한 해도 있었다. 해가 아니 들어서, 물 길어 
먹기가 어려워서, 옆집이 구공탄 공장이어서, 가까이 제재 공장이 생겨서, 그리고 
두 번은 집주인이 내놔 달래서 그렇게 되었다.
 칠 년 전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방 둘 있는 영단주택으로 이사를 올 때 , 그때 
기쁨은 참으로 대단하였다. 아이들은 "이것이 인제 우리 집이지."하고 좋아라고 
뛰었다.
 우리 집에는 쏘니라는 이름을 가진 강아지가 있었는데, 제 집을 끔찍이 
사랑하였다. 레이션 상자 속에 내 헌 자켓을 깐 것이 그의 집인데, 쏘니는 
주둥이로 그 카펫을 정돈하느라고 매일 장시간을 보내었다. 그리고 그 삐죽한 
턱주가리를 마분지 담벽에다 올려놓고 우리들 사는 것을 구경하고 때로는 명상에 
잠기기도 하였다. 그리고 저의 집 앞은 남이 얼씬도 못하게 하였다. 마치 궁성을 
지키는 파수병같이 나는 이개 못지않게 집을 위하였다.
 칠 년 동안에 아이들이 자라고 책이 늘었고, 왜 버리지 못 하는 지 모를 너저분한 
물건들도 많아졌다. 집이 좁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건넛집 라디오가 소란하고 골목 여인네들의 목소리가 시끄러워졌다. 
그리고 나 혼자 있을 수 있는 내 방이 갖고 싶어졌다.
 나는 이사를 해볼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집 매매가 없다는 요즘음 우리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섰다. 나는 집값이 떨어졌다는 의식에 사로잡혀 준다는 
금세에 덜컥 계약을 하였다. 
 그리고는 집을 보러 나섰다. 교통 좋은 곳은 엄두도 못 내고 이끝에서 저끝으로 
변두리마다 돌아다녀보았다. 팔려고 내놓은 집은 많아도 내 돈으로 살 수 있는 
집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집만 다 못한 것들이었다. 매일 지쳐서 돌아오면 이 
집같이 좋은 집은 없었다. 꽃 심을 뜰이 좀 있고 방이 너덧되는 집 이것이 내가 
원하는 집이다. 언제든지 내 돈은 집 값의 반이나 삼분의 일밖에 아니 된다.
 나는 잠을 못 자게 되었다. 집 보러 다니느라고 몸이 피곤한데도, 도무지 잠이 외 
않았다. 나는 칠 년 만에 새삼스럽게 가난을 느꼈다. 불안과 초조로 두 주일을 
보내다가 집 내놀 기일이 다가오자 마침내 집값의 절반을 십오 년 간에 걸쳐 
은행에 부어간다는 그리고 버스가  십오 분에 한 번씩 다니는 곳에 있는 주택 
하나를 계약하게 되었다. 십오년 ! 내방, 좋은 말로 서재의 대가로 십오 년 간 
부어갈 부채와 교통을 위한 무수한 시간을 지불하게 되었다.
 그저 이집에 그냥 살고, 비 오는 날이면 비원이나 찾아갈 것을 공연히 이사를 
한다고 나는 마음을 괴롭히고 있다. 이삿짐을 상상하면 더욱 가난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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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서점에서 좋은 책을 찾았을 때의 느낌을 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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