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KoreaUniv ] in KIDS 글 쓴 이(By): pkp (~~~pkp~~~) 날 짜 (Date): 1999년 8월 31일 화요일 오후 02시 13분 59초 제 목(Title): [고대신문] '곁가지' 멋에 빠져 고대정신의 기획연재-'고대문화' 속뜻 읽기 '곁가지' 멋에 빠져 고대정신의 '뿌리' 캐보겠다고? (1)고대생이 된다는 것, 고대인의 정체성 '고대’하면 ‘선후배간의 끈끈한 정’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는 친구가 있습니다. ‘고대가족’이라고 서슴지 않고 말하기도 합니다. ‘고려대학교’가 “마음의 고향”이라는 그의 노래도 자동화된 의례는 아니었습니다. 모교의 교가를 끝까지 부를 수 있고 크림슨 색만 보면 뿌듯하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가 ‘고대인’으로서 깊은 자긍심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잠시나마 그의 자긍심에 대해 저항심을 갖게 됩니다. 물론 ‘고대 놈들’이라며 적개심을 드러내는 그런 사람은 아니지만, 저는 ‘고대가족’을 존경하지는 않습니다. ‘고대인’에게서 ‘굶주려도 결코 잡풀을 뜯지 않는 맹호’의 자존심을 보기 힘든 까닭입니다. ‘자유·정의·진리’의 고대인도 점차 흔적이 되어 가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친구가 자부심을 느끼는 ‘고대’와 ‘고대인’이 적어도 일부분은 그 자신의 실재와는 별개인 고상한 허구 또는 呪物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고대’는 이미 물리적인 하나의 대학을 넘어 ‘역사’, ‘전통’, ‘민족’, ‘정의’, ‘명문’, ‘지성’ 등의 가치를 지니면서 집단적 유대감과 정체성을 구성하는 ‘자아 이상(ego ideals)’이 되었으나, 그것에 대한 내적 경험을 ‘고대생’이면 누구나 다 공유하는 것은 아니더군요. 오히려 ‘情’, ‘풋풋함’ ‘야성’ 등의 잉여 가치와의 일치를 통해서 진짜 ‘고대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아 이상’과의 일치를 통해 형성되어야 할 ‘고대인’이라는 상징적 정체성이 ‘잉여가치’를 통해 자신을 영원한 ‘고대인’으로 부르는 나르시스적 정체성과 심각한 균열을 이루고 있음을 목격합니다. 자신을 ‘고대인’이라고 부르기 이전에 엄격하게 이 문제를 따져보기 바랍니다. ‘고대가족’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하고자 하는 ‘고대 놈들’의 이기적 권력행사에 알리바이를 제공할 따름이라는 오해의 근원이 바로 이 균열에 있기 때문입니다. ‘자아 이상’과 견고한 관계가 없다면 당신들의 삶은 ‘고대인’ 모조품에 지나지 않겠지요. 그런데도 ‘고대생’이라는 환상을 고집한다면 그것은 이러한 자신들의 결함을 ‘고대’와 ‘고대동창’의 심리구조 속에 감추며 자신의 열등한 자아를 가치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또한 타인에게 확인시키고 싶은 이기적 욕망에 불과하겠지요. 고대는 ‘사람을 사랑하게 하는’ 아름다운 추억을 선사했습니다. 그 추억이 사회와 역사에 적극적으로 책임을 지려는 고대의 ‘자아 이상’과 진정으로 합일을 이룰 때, 그것은 인간상실로 특징 지워진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사람과 사람’을 잇는 삶의 역동적 정서가 될 것입니다. 이기적 자아들의 방어심리를 합리화시키는 닫힌 ‘고대 놈들’이 아니라, 한 시대를 더불어 사는 사람들에 대한 박애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신념에 뿌리를 둔 보다 “열린 사회”를 위한 모임을 ‘참된 고대인’에게서 기대하렵니다. 시인 김종삼의 말을 빌면, ‘고대인’의 “본적은 인류의 짚신이고 맨발”이기 때문입니다. 그 친구가 막걸리 한 사발 권하는군요. 어도선(사범대 영어교육과) 교수 ‘고대문화 속뜻 읽기’에서는 앞으로 5회에 걸쳐 고대와 고대생에 관한 이야기를 정신분석학적 이론에 기초해 쉽게 풀어봅니다. 글을 써 주실 어도선 교수님은 현재 「미래의 얼굴」에 ‘우리시대 욕망읽기’란 제목의 글을 연재 중에 있습니다. ** from 고대신문 1353호(1999/8/30) ~~~~~~~~~~pkp~~~~~~~~~~~~~~~~~~~~~~~~~~~~~~~~~~~~~~~~~~~~~~~pkp~~~~~~~~~~~~ ^_^ 키즈의 아저씨 pkp palindrome ^L^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