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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taurus (Siegfried)
날 짜 (Date): 1999년 8월 19일 목요일 오전 10시 28분 01초
제 목(Title): [수필7] 외 투


외 투

김 소 운

계절 중에서 내 생리에 가장 알맞은 계절이 겨울이다.
 체질적으로 소양인데다 심열이 승하고 다혈질이다. 매양 만나는 이들이 술을 
했느냐고 묻도록 얼굴에 핏기가 많고 침착 냉정하지 못해 일쑤 흥분을 잘한다. 
아무리 추운 날씨라도 김나는 뜨거운 것보다는 찬 음식을 좋아한다. 
남국에서보다는 눈 내리는 북구에 살고 싶다.
 그러면서도 유달리 추위를 탄다. 추위에 대한 저항략이나 자신으로 겨울을 
좋아한다기보다, 추위속에서 그 추위를 방비하고 사는 --- 추위는 문 밖에 세워 
두고 나 혼자는 뜨끈하게 군불 땐 방속에 앉아 있고 싶은 --- 이를 테면 그런 
'에고(ego)'의 심정이다.
 눈보라 뿌리는 겨울 거리에 외투로 몸단속을 단단히 하고 나선, 그 기분이란 말할 
수 없이 상쾌하다. 어느 때는 외투라는 것을 위해서 겨울이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느낀다.
 그런데도 나는 그 외투없이 네 번째 겨울을 맞이한다. 무슨 심원이 있어서, 무슨 
주의 주장이 새로 생겨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외투 두 벌은 도둑맞았고, 서울 갈 
때 남에게 빌어 입고 간 외투 한 벌 조차도 잃어 버리고. 그러고 나니 외투하고 
실랑이하기가 고달프고 귀찮아졌다. 그냥 지낸다는 것이 한 해, 두 해--- 벌써 
네해 째이다.
 겨울의 즐거움을 모르고 겨울을 난다는 것은 슬픈 노릇이다. 하기야 
외투뿐이랴--- 가상다반(집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의 일체의 낙이 일시 
중단이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면 가난하고 군색한 것이 나 하나만이 아니길래 
도리어 마음 편하기도 한다.

벌써 십여년 --- 채 십오 년까지는 못 됐을까?
 하얼빈서 사오백 리를 더 들어가는 무슨 현이라는 데서 청마 유치환이 농장경영을 
하다가, 자금 문제인가 무슨 볼 일이 생겨 서울에 왔던 길에 나를 만났다. 이삼 일 
후에 결과가 시원치 못한 채 청마는 다시 북만으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었다. 역두에는 유치진 내외분---그리고 몇몇 친구가 
전송을 나왔다.
 영하 사십 도의 북만으로 돌아간다는 청마가, 외투 한 벌 없는 
'세비로'(양복저고리)바람이다. 당자야 태연 자약일지 모르나 곁에서 보는 내 
심정이 편하지 못하다. 더구나 전송 나온 이 중에는 기름이 흐르는 낙타 오바를 
입은 이가 있었다.
 발차 시간이 가까웠다.
 내 전신을 둘러보아야 청마에게 줄 아무것도 내게는 없고, 포켓에 꽂힌 만년필 한 
자루가 만져질 뿐이다. 내 스승에게서 물려 받은 프랑스제 '콩크링'--- 요즈음 
'파카'니 '오터맨' 따위는 명함도 못 내놓을 최고급 만년필이다. 일본 안에도 열 
자루가 없다고 했다. 
 " 만년필 가졌나?" --- 불쑥 묻는 내 말에 ,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청마는 제 
주머니에서 흰 촉이 달린 싸구려 만년필을 끄집어 내어 나를 준다.
 그것을 받아서 내 주머니에 꽂고 '콩크링'을 청마 손에 쥐어 주었다.
 만년필은 외투도 방한구도 아니련만, 그 때 내 심정으로는, 내가 입은 외투 한 
벌을 청마에게 입혀 보낸다는 그런 기분이었다.
 오륙 년 후에 하얼빈에서 청마와 재회했을 때, 그 만년필을 잃어버리지 않은 것이 
고마웠다. 튜브가 상해서 잉크를 찍어 쓴단 말을 듣고, 서울서 고쳐서 우편으로 
보내마고 약조하고 '콩크링'을 다시 내가 맡아오게 되었다. 튜브를 갈아 넣은 지 
못 되어 그 '콩크링'은 내 집 안사람이 잠시 가지고 나간 것을 스리가 채갔다.
 한국에 한 자루밖에 없을 그 청자색 '콩크링'이 혹시 눈에 띄지나 않나 해서, 
만년필 가게를 지나칠 때마다 쑥스럽게 들여다보고 또 보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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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서점에서 좋은 책을 찾았을 때의 느낌을 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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