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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yungPookUniv ] in KIDS
글 쓴 이(By): artte (아르테미스)
날 짜 (Date): 1996년03월12일(화) 22시08분34초 KST
제 목(Title):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




천상병....

기인이라 불리웠던...때묻은 눈으로는, 때묻은 마음으로는 결코

그를 이해할 수 없는 순백의 영혼을 간직했던 사람...



서울대 상대를 다녔지만 평생 돈과는 거리가 멀게 살았던 사람...

더러운 세상에서 순수한 영혼을 간직할 수 있었던 강한 사람...


그러나....


너무나 연약하게만 세상을 살아간 사람...



아마도....



그는 알았던 것이다.



여리디 여린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데에 가장 강할 수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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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행  복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느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아   가  야


해뜨기 전 새벽 중간쯤 희부연 어스름을 타고 낙심을 이리처럼 깨물며

사직공원 길을 간다. 행인도 드문 이 거리 어느 집 문 밖에서 서너 살 됨직한

잠옷 바람의 앳된 계집애가 울고 잇다. 지겹도록 슬피운다. 지겹도록

슬피운다. 웬일일까? 개와 큰집 대문 밖에서 유리 같은 손으로 문을 두드리며

이 애기는 왜 울고 있을까? 오줌이나 싼 그런 벌을 받고 있는 걸까? 자주

뒤돌아보면서 나는 무심할 수가 없었다.


아가야, 왜 우니? 이 인생의 무엇을 안다고 우니? 무슨 슬픔 당했다고,

괴로움이 얼마나 아픈가를 깨쳤다고 우니? 이 새벽 정처없는 산길을

헤매어 가는 이 아저씨도 울지 않는데.......


아가야, 너에게는 그 문을 열어 줄 엄마손이 있겠지. 이 아저씨에게는

그런 사랑이 열릴 문도 없단다. 아가야 울지 마! 이런 아저씨도 울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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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천상병 시인을 알게 된 것은 그가 이 세상 소풍을 끝낸 후였다.

그의 아내 목순옥 여사의 글을 읽으며...

순수한 한 영혼의 존재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  You never see me with your cloudy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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