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KAIST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guest) <adsl-66-72-185-7> 날 짜 (Date): 2002년 10월 11일 금요일 오전 10시 50분 43초 제 목(Title): 學士회사원’이 노벨화학상 탔다 ‘學士회사원’이 노벨화학상 탔다 유학경험 없는 43세…15년전 실험실서 ‘실수’로 큰 발견 학문의 정점이라 할 노벨화학상의 2002년도 수상자는 ‘학사’다. 그것도 ‘화학과’가 아니라 ‘전기공학과’ 출신인 40대 초반의 기업 ‘주임’이다. 일본 시마즈(島津)제작소 분석계측사업부 라이프사이언스연구소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43) 주임. 노벨상위원회가 수상 사실을 통보했을 때 그는 ‘회의 중’이었다. 어머니는 “동명이인(同名異人) 아니냐”고 되물었고, 직장에서도 “우리 다나카가 맞느냐”며 쉽게 믿어주지 않았다. 9일 밤 작업복 차림으로 기자회견장에 나온, 그렇게 ‘평범한’ 다나카가 지금 일본의 최대 화제다. 그는 도호쿠(東北)대학을 졸업했지만, 우수한 성적은 아니었다. 오히려 놀다가 낙제를 하기도 했다. 남들보다 1년 늦게 졸업하면서 가전업체인 소니의 문을 두드렸으나 떨어졌다. 결국 시마즈제작소에 입사, 생소한 생화학 연구를 하게 됐다. 물론 유학경험도 없다. 외국물이라면 최근 영국의 자회사에서 근무한 정도. 회사 안에서의 평가도 ‘비상한 천재’ 혹은 ‘연구실을 떠나지 않는 노력파’가 아니다. 그저 ‘친근감 넘치는 사람’, ‘아이디어 좋은 사람’ 정도이다. “중요한 전화라고 해서 받았지만, 영어로 ‘노벨’ 어쩌고 해서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들었다”는 다나카의 수상 첫 소감은 “여우에 홀린 것 같다”였고, 하루 지난 후의 감상은 “시상식장에서 영어로 연설시킬지 몰라 걱정”이라는 것이다. 화학상이 발표된 9일 일본 자연과학기술정책을 총괄하는 종합과학기술회의에는 노벨상 수상 내용을 해설하기 위해 2000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시라카와 히데키(白川英樹) 쓰쿠바대 교수 등 3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들 다나카를 몰랐다. 노교수들의 해설은 수상자 발표 2시간 뒤에야 나왔다. 그 사이 3명의 석학은 다나카에게 직접 수상 내용을 물었다고 한다. 아사히신문은 “이런 사람을 찾아내 추천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다나카 주임은 “노벨상을 받을 만했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단백질은 분자의 크기를 아는 것이 생물연구와 약품개발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측정이 쉽지 않았다. 다나카는 바로, 분자량을 획기적으로 쉽게 측정할 수 있는 ‘소프트레이저 이탈법’이라는 방법을 개발한 사람이다. 그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측정기는 대학생 정도면 쉽게 분자 크기를 측정할 수 있게 했다는 격찬을 받았다. 다나카가 이 이론을 발표한 것은 28세이던 1987년. 대학을 졸업하고 불과 4년 지났을 때다. 연구소 동료들과 실험하다 실수로 글리세린 액체를 코발트 분말에 떨어뜨렸는데, 커다란 분자의 이온이 관측되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는 “우연이 만들어낸 성과일 뿐”이라고 겸손해했다. 이 기술 개발로 다나카가 회사에서 받은 돈은 특허등록 때 1만1000엔, 다른 동료들과 공동표창장을 수상할 때 받은 10여만엔이 전부다. 일본은 다소 당황한 분위기다. 일본 기업의 연구력을 증명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뒤집어 보면 회사와 사회가 노벨상급 인재를 알아보지 못한 채, ‘주임’이란 직책만으로 판단했다는 얘기도 되기 때문이다. 시마즈제작소의 다나카의 상관은 “이제 우리 주임을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되나”라며 당황했다는 후문. 다나카는 동기들이 부장·과장으로 승진할 때 “연구에만 몰두하고 싶다”며 승진 시험을 거부했었다. (東京=崔洽특파원 pot@chosun.com ) ------------------------------------------------------------------------ @ 요즘 신문지상에선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받기 위해 로비를 했다는 딴나라당 주장도 있습니다만 노벨상 후보 선정 과정이 궁금해 지는군요. 왜 이렇게 학계에서 무명하고 영향력 없어 보이는 사람이 선정이 됐을 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