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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IST ] in KIDS
글 쓴 이(By): pictor ()
날 짜 (Date): 2002년 4월 15일 월요일 오후 07시 51분 37초
제 목(Title): 농노철폐


노예와 농노는 엄연히 다릅니다. 

그리스 - 로마 시대를 거치면서 특히 노예는 생산 노동력을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 이었고, 노예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공급하느냐가 사회의 안정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고대 로마에서의 노예는 말하는 '말하는 가축'으로서의 지위만이 인정되었고, 
주인의 사유물이었으므로 생존과 노동을 통해서만 주인의 독점적지위가 
인정되었기 때문에 최소한의 '생존이유'는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개인에게 소득물이 돌아가지 않는 농장노예들의 생산력이 갈 수록 
떨어지게 되고 서로마제국의 멸망을 기화로 지방의 영주들이 하나씩 발호하면서 
우리가 일반 적으로 말하는 중세시대로 진입하게 되는데, 이 중세시대란 
다음아닌 장원을 기초로 한 봉건 영주의 등장을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하나의 영지는 기본적으로 하나의 지역에 영주의 성이 있고, 성안에 존재하는 
소상공인과 장인들이며, 농사를 주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농지 근처에서 살게 
되었는데, 이들은 농지에 매여있다고 해서 농노라고 부릅니다 

농노는 농사를 짓는 가장 중요한 인력이었으므로 자유로운 이동이 불가능 했고, 
결혼등에도 반드시 영주의 허가를 얻어야 했습니다. 

굳이 농노와 노예의 차이를 들라면, 노예는 결혼을 할수도 없었고, 신분과 
주거환경이 주인에 의해 결정되었지만, 적어도 농노는 신체의 구속이 땅에 의해 
결정되어었다는 점이 다르다는 정도 일겁니다. 

중세시대의 유럽내에는 노예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데, 그것은 노예가 농노에 
비해 생산력이 그다지 큰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며, 노예는 농민군대로 편입시킬 
수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한몫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노예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18세기 초까지 동유럽이나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에는 일부 노예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흑인이나 비기독교인등으로 
국한되어있었으며, 기독교인은 원칙적으로 노예로 삼는 것이 
금지되어있었습니다. 

그렇게 1천년을 지탱해온 장원을 바탕으로한 중세 봉건제도도, 결국 산업화와 
자본주의 시대의 도래로 밀려나게 되었지만,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미국이나 
브라질 등의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아프리카의 사람들을 강제로 잡아다 노예 
노동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




갑자기 "KAIST학생들의 의무복무"가 생각나는군.

중세시대가 끝나면서 농노들이 없어졌듯이...(물론 러시아는 19세기 말까지 
그게 있었지만) KAIST도 "의무복무"를 없앴나 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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