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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IST ] in KIDS
글 쓴 이(By): Leo (April)
날 짜 (Date): 1995년04월16일(일) 13시10분45초 KST
제 목(Title): [속] 과학원 아이들 / 그대도 여기 있다면



  본의 아니게 '과학원 아이들' 원판에 있는 타이틀 중 하나를 도용했다. 이

유는 대단한 건 아니고, 저 타이틀이 지금 우리에 대한 심정같은 걸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도 오래간만에, 그것도 내일부터 중간

고사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정신나간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건 아마도 사람은

뭔가 극한 상황에 몰리면 다른 쪽으로라도 돌파구를 찾고픈 심정이 누구에

게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얼마전부터 맺히기 시작한 꽃망울을 채 알아채기도 전에, 과학원 학부쪽

에는 2호관 옆 큰 벚나무를 시점으로 일제히 벚꽃들이 폭발하듯 피었다. 내

가 나온 경희중학교 (경희대 병설로,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소재의 경희대

캠퍼스 남쪽 끝단에 위치한다) 의 봄은, 동양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얘기가

있는 경희대 캠퍼스의 벚꽃으로 인해 더욱 봄다운 풍요로움을 느끼게 해준

기억이 있다. (뭐 일본의 국화가 사쿠라, 곧 벚꽃이라고 해서 굳이 벚꽃의

아름다움을 그런 사사로운 민족감정과 얽매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아름

다운건, 그 자체로 아름다우면 그만이다.) 그런데, 난 과학원에 벚꽃이 있

다는 사실을 키즈 선배이자 동아리 선배인 곽** 형으로 부터 처음 알았고,

그 다음에 맺히기 시작한 꽃망울들을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보곤 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중간고사라는 폭풍은 그런 꽃들에 대한 사소한 관심을 온

통 종이와 인쇄잉크, 복사물들 쪽으로 돌려놓고 말았었다. (언젠가 심리학

시간에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중 하나가, 사람의 인지구조에 의하면, 감각과

인식은 구별된다고 하셨다. 즉 감각을 하더라도, 그것을 재구성하는 인식이

없으면 학습도 없다고.. 고로 벚꽃은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존재하지만 존

재하지 않는 가시범위 밖의 존재였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서쪽 산등성이 너머

로 해가 약 한뼘 정도 남아있을 그런 시간에, 피어있는 벚꽃들이 햇빛을

받아 정말 환상적인 광경을 보여주고, 갑자기 휙 하고 부는 바람에 벚꽃

잎들이 눈내리듯 우수수 날려오는 때, 벚나무 밑을 지나다 보니 온통 벌들

이 벚꽃사이에서 '한몫잡자!' 는 듯 붕붕대는 날개짓 소리를 들을 수 있었

을때.. 그때야 비로소 이곳이 온통 벚꽃천지임을 알아차렸다. 와~ 세상에..

과학원 캠퍼스가 이렇게 아름다울 때도 있었다니.. 그건 옛날 내 중학교때

의 기억과 오버랩 되면서, 과학원 캠퍼스를 다시 한번 몹시도 아름다운 광

경으로 각인해 놓는 순간이었다.

  그랬다. 날씨는 점점 더 따사로워져 갔고, 이젠 나 혼자 봄만났다는 소리

는 듣지 않아도 되었다. (제법 찬바람이 부는 때에도 나는 별로 두꺼운 옷

을 입고 다니지 않았었다. 괜히 두꺼운 옷 입으면 강의시간에 쏟아지는 졸

음을 참기 힘들기 때문에 -- 그덕분에 올 겨울엔 감기에 별로 안 시달린 것

같다) 도서관 앞 잔디는 이미 푸른색으로 물들어 갔고, 저녁식사를 마치고

강의가 끝난 몇몇 학생들이 잔디밭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풍경도 점차로 빈

도가 높아져 갔다. 덩달아, 도서관 정면의 운동장 옆 잔디밭과 벤치들 옆에

서는 '떠이어니레'의 풍물소리가 들리는 시간이 늘었다. (아마 제 2 열람실

에 자리맡은 사람들 중 민감한 사람들은 고생좀 했으리라. 그래도 일련의

항의가 없다는 사실은 아마도 그런 풍물소리가 다들 싫지는 않은 것 같다.)

과학원의 봄은, 정말 여기 있는 사람만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그대도 여기

있다면!!




  곽** 선배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너.. 과학원 기숙사 부터 도서관 앞은 건

너 뛰고 2호관까지 죽 심어져 있는 나무가 뭐라고 생각했니? ... 그 벚꽃들은

중간고사 전에 피기 시작해서.. 중간고사 끝나고 좀 여유를 가지고 보려고 하

면 비가 와서 다 떨어져 버리거든....'

  중간고사.. 이제 처음 대학교가 뭔지를 경험하는 내게 있어 입학한지 고작

한달 반만에 보는 중간고사의 로드는 가히 엄청났다. 이건 나 뿐아니라 내 친

구들도 이구동성으로 찬성하는 것이다. 생소한 말로 씌어진 베개만한 책 3권,

(물론 범위가 다는 아니지만) 그리고 프린트들.. 그리고 조금 작은 책들 2권.

이틀전에 Chemistry 에 대한 group study 가 있었다. 멤버는 7명, 그리고 시

험범위 역시 chapter 7개. 한사람에 한 chapter씩을 맡기로 하고 약속 시간에

도서관 그룹스터디실에 모였는데 text를 해석하고 요약해서 각자 만들어 온

handout을 모아놓고 모두 황당해 하던 기억이 있다. 왜냐하면, 요약이랍시고

만들어 온 프린트를 모아놓고 보니 웬만한 책 한권 분량이 나왔기 때문이다.

(더 황당한 사실은 그걸 다른 과목들과 함께 이틀동안 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어제 친구 방에 몇명이 모여 같이 공부를 했다. 그때 내 옆에 있던 성재가

화학을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다가 갑자기 볼펜을 탁 놓으며 말했다.

" 으, 정말 내 이럴줄은 몰랐다. 이게 다 저 행정동에 있는 심씨 때문이야. "

"원장이 무슨 죄가 있냐? 여기에 원서를 쓴 니가 잘못이지."

"맞어. 그때 내가 왜 그런 미친 짓을 했지?"

우린 쓴 웃음을 지을수 밖에 없었다.


"너 라디오에서 '과학원 아이들'이란 책 선전할 때 나오는 멘트 아냐? '우리

는 청춘을 저당잡히고 어쩌고..' 하는 거. 난 그거 나올때 웃었는데, 여기 지

금 있다 보니까 정말 청춘을 저당 잡힌거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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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litics is for the moment,                                       White Leo
   But a equation is for eternity.                    KAIST Undergraduate 95
                    - A. Einstein                   vector@baram.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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