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KAIST ] in KIDS 글 쓴 이(By): Leo (March) 날 짜 (Date): 1995년03월15일(수) 01시09분47초 KST 제 목(Title): [속] 과학원 아이들 / 전쟁과 평화 "열심히 해라." "왜, 들어가게?" "응." 저쪽에서 앉아 화학 리포트를 쓰고 있던 용재가 먼저 들어간다며 인사를 했다. 시계를 보니 12시 20분.. 들어갈만한 시간이다. 그러나 아직도 도서관에 남은 사람은 꽤 많았다. 아마 주인은 자리를 비운 책만 놓인 자리까지 합한다면 도 서관 자리에 빈곳 찾기가 어려울것이다. 과학원은, 밤낮의 구분이 자연에 의해 지워지는 곳이 아니다. 자기가 밤이라 고 하고 싶으면 햇빛이 환한 낮에도 블라인드를 쳐놓고 퍼질러 자도 되고, 밤엔 불 안꺼지는 곳을 찾아가 밤 새면 그게 낮이다. 옆에 유성이 있어서 관광특구로 지정된 다음엔, 어은동이며 궁동같은 곳의 점포나 업소들은 대개 새벽 4시까진 영업을 했다. 따라서 과학원은 안으로나 밖으로나 거의 24시간 가동체제를 갖춘 캠퍼스인 셈이다. 낮이 아니라서 밤에 못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Calculus 전에 배운 부분인 Conic Section을 정리하고 나서, 내일 배울부분을 조금 보다가 주섬주섬 책들과 노트들을 챙겼다. 시간도 어지간히 늦었고, 오늘 따라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피곤하기도 했고. 오늘도 원측 학생회관에 심리학 개론 textbook을 구하러 내려가야 했다. 자전거 세우다가 람보아저씨한테 걸려 서 하마터면 타이어 바람 빠질뻔 했지만, 신입생이라고 봐주신다며 옆에 있던 적당히 녹슬어 신입생것이라 보기 어려운 자전거의 바람을 빼신다. 좀 기분은 나빴지만.. (사실 별로 불법적인 주차를 한것도 아닌데..) 그리고는 저녁도 못먹고 Mathematica실습반 등록을 하러 PC실습실이 있는 2 호관으로 자전거를 몰아갔다. 일찍가서 사람도 없고, 덕분에 꽤 괜찮은 컴퓨 터를 잡을 수 있었다. 얼마 안있어 사람들이 몰아닥쳤고, 금세 실습반 정원인 30명을 넘어서버렸다. 역시 늦는거보단 빠른게 낫다. 옆자리엔 같은반인 희진 이가 차지했고, 역시 같은반인 지연이랑 수진이는 정원에 밀려 못들어오고 말 았다. 우리반 여자애덜은 부지런한데 남자애덜은 다 오디간 걸까? "태워다 줄께." 희진이가 망설이다 같이 타고 가기로 했다. 아직 자전거가 없다나.. 하여간 난 6년간 남학교만 다녀서 여자애들이랑 얘긴 잘 못하지만, 지난 일요일날 있 었던 개강파티때 이후로 그런대로 가까워진 편이었다. 전엔 가다가 마주쳐도 그냥 모른척 지나쳤지만 요즘은 아는척이라도 하니깐. 어쨌든, 일요일 개강파 티의 후유증이 아직 남았는지 -- 평소엔 10시 반에 잔다는 애가 3시에 잤으니 -- Mathematica 실습시간동안 졸리다고 힘없어 하는 애를 그 먼 나동까지 걸 어가게 하긴 좀 미안해서 태워주기로 했다. 그리고 실제로 태워다 줬고. :P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때, 우리방에 들어왔던 94선배가 한 말이 있었다. 과학 원에서 교통수단은 네가지다. 첫째는 당연히 부모님께 물려받은 튼튼한 두다리 이고, 둘째가 가장 보편적인 수단인 자전거다. 세째는 스쿠터부터 중형 오토바 이까지의 원동기 종류인데, 근래들어 이종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네째는 주로 고학년이나 점잖은 원생 선배님들이 쓰시는 자가용 -- 이것도 티 코부터 교수님들의 세단까지 다양하다 -- 이다. 그런데, 그 선배가 한말은 뭐냐 하면, 필요충분관계는 아니지만 과학원에서 '여자친구'를 만들려면 적어도 택 트가 수퍼캡같은 스쿠터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스쿠터라도 있는 사람중에 여자친구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어쨌든, 공부하는 동안은 여자 친구 안만들기로 결심했던 나는 그얘기에 별로 반응을 보이진 않았었지만, 실 제로 스쿠터를 타고 가면서 뒤에 긴머리를 휘날리는 여학생을 태운 사람을 보았을땐 그얘기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그렇지만 얼마후에, 자전거 뒤에 여 학생을 태우고 가는 남학생을 볼 수 있었다. 그땐 '자전거도 희망이 있다' 며 친구들과 얘기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아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 사람도 그냥 아는 클래스메이트이거나 과메이트인 사람을 태워다 주는 그런게 아니었 나 싶다. :P 근래들어 날씨가 점차 따뜻해져서, 특히 낮엔 난방에 얇은 편성니트를 하나 입어도 별로 춥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후 내내 화학 실험을 하느라 고생한다음, (질산이 손에 몇방울 튀어서 몹시 따가웠음. 그것도 진한질산을) 그나마 만족스런 결과가 나와서 푸근한 마음으로 도서관으로 갔다. 내일 징병검사 관계로 오늘 서울에 올라가야 하는데 그전에 조금 봐두어야 할 것이 있었으니까. 도서관 1층에 있는 스팍스룸에 잠깐 들렀다가 재수좋게 Sparc station ELC 한대 를 차지할 수 있었다. 오래간만에 엑스텀을 띄우고 키즈에 들어올 수도 있었고. 어쨌든, 게시판에 올려진 몇개의 글을 보면서 헤죽 웃고, 다시 2층 열람실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어제 못 끝낸 Calculus를 마저 정리했다. 시계를 보니 6시 10분.. 더 늦으면 식당문 닫으니깐 슬슬 저녁을 먹어야 겠다.. 하면서 책가방 을 대충 챙겨 도서관을 나섰다. 가끔 3월에 눈발이 날리는 변덕이 존재하지만, 오늘 도서관 앞뜰에 내리쬐는 햇볕은 몹시도 따사로웠다. 왼쪽에선 세사람이 모여 한사람은 심판을 보는지 두사람이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고, 오른쪽에선 둥그렇게 모여선 두 무리의 사 람들이 팩차기를 하고 있었다. 잔디밭은 아직 누런 색깔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이제 좀더 따뜻해지면 잔디밭가운데 서 있는 상록수들과 색깔에 balance를 유 지하는 푸릇한 기운이 비쳐질 테고, 가끔 잔디밭이 끝나는 도로를 질러가는 자전거를 탄 학생들의 모습이나 붉은 벽돌로 지어진 학부건물들의 모습이 좀 더 가볍고 신선하게 느껴지게 될 것이다. 과학원 == 연구소 라는 등식이 아직 도 진짜인 양 믿는 사람들에게 이런 모습을 한번 보여주고 싶다. 물론, 과학 원은 연구소지만, 그건 한면일 뿐이다. 아니, 부분일 뿐이다. 여기엔 학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중에 학문보단 낭만을 더 찾아 학점을 반납(?)하 는 사람들도 있고, 그러면서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를 창조해 가는 엄연한 대학 캠퍼스이다. 그게 훨씬더 과학원의 모습에 가깝다. 식당에서 만난 반친구들의 인사.. 우린 밤을 잊고 학문과 전쟁을 치루고, 그런 가운데 구체적으로 하나를 집기는 힘든 우리들만의 평화를 지니면서 조금씩 새로운 변화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What though life conspire to cheat you, Hearts live in the coming day. Do not sorrow or complain. There's an end to passing sorrow. Lie still on the day of pain, Suddenly all flies away, And the day of joy will greet you. And delight returns to-morro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