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KAIST ] in KIDS 글 쓴 이(By): darkman (밤이슬) 날 짜 (Date): 2000년 10월 23일 월요일 오전 11시 39분 32초 제 목(Title): 인간승리 ------------------------------------------------------------------------------- - 시사인물 포커스 ------------------------------------------------------------------------------- - ■ 1%의 가능성, 난 그거면 충분해 - KAIST 전기및전자공학 박대연 교수 2000. 9. 14 경향신문 ------------------------------------------------------------------------------- - ‘한국의 빌 게이츠’ KAIST 교수 박대연, 가난한 시골뜨기에 야간상고 출신. 하지만 늘 1%의 가능성에 도전했다. 첫번째는 고교수석. 두번째는 미국유학. 불굴의 의지로 그것들을 실현했다. 벤처기업‘티맥스소프트’창업. 설립 2년만에 연매출 2백억원 돌파. 오르지 못할 나무만 골라서 올라온 그. 내일은 또 어떤 1%에 도전할까?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자전산학과 전기 및 전자공학전공 박대연 교수(44)의 인생은 이 한마디로 요약이 된다. 그는 늘 1%의 가능성에 도전했고, 꺾일 줄 모르는 의지로 그것들을 현실로 만들었다. 지금은 벤처기업 ‘티맥스소프트’의 창업자로, 정보통신업계의 기린아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그. 하지만 30여년 전 소년 박대연은 월급 3,000원의 운수회사 사환이었다. 1956년 전남 담양에서 6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중학생 시절 이미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69년 전남화물이라는 중소 운수회사에 취직하면서 밤에는 광주 동성중 야간부를 다녔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그의 주경야독은 계속됐다. 광주상고 야간부에 진학, 동생들 학비까지 대기 위해 그는 낮 동안 늘 2~3명 몫의 일을 했다. 그가 1% 가능성에 도전한 첫번째는 고교 수석이었다. 당시 상고생 사이에 최고의 인기 직장은 은행. 전교 1등을 하면 학교장이 추천서를 써줘 시험을 보지 않고도 은행에 입행할 수 있었다. 전교생 450명 가운데 1등을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졸업 6개월을 앞두고 낮에 하던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우를 범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학업에만 전념한 결과 그는 수석으로 졸업하는 영예와 무시험으로 75년 한빛은행(당시 한일은행)에 취직하는 행운을 잡을 수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컴퓨터와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다. 은행 컴퓨터 시스템이 고장나면 그는 밤샘작업으로 복구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며 컴퓨터 조작에 천부적인 소질을 나타냈다. 그러던 그에게 처음 찾아온 기회는 일반 행원으로서는 좀처럼 얻기 힘든 영국 런던지점 근무. 3개월의 외국 지사생활은 그의 시야를 넓혀 주었다. 동생들이 학업을 마치고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한 88년, 그는 나이 32살에 안정적인 은행원을 포기하고 미국 오리건대 컴퓨터공학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나 유학생활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미국에 가자마자 탈장 진단을 받았고, 5개월 뒤인 88년 12월 결국 수술대에 올라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한국서 가져간 1천3백만원은 학비를 대기에도 빠듯한 금액이어서 그는 의사의 만류에도 수술 이튿날 곧바로 퇴원, 피로 붉게 물든 붕대를 감고 강의에 참석하는 ‘무모한 짓’을 감행했다. 이처럼 이를 악물고 공부한 덕분에 그는 1년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학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다. 그것도 전과목 A학점이라는 오리건대 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그의 집념에 감명을 받은 지도교수는 그에게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남가주대(USC)를 추천해 주었고 이후 그는 박사 학위 취득까지 5년7개월동안 1억5천만원이 넘는 장학금을 받았다. 귀국 후 그는 KAIST 교수직에 원서를 냈다. 더 큰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야간상고 출신이라는 학력으로는 불가능해 보였지만 그가 걸어온 독특한 길과 의지를 이해한 학교는 마침내 그를 교수로 임용했다. TP모니터 개발도 1%의 가능성을 100% 현실로 실현한 것이다. 인터넷 서버의 접속용량을 극대화하는 TP모니터는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한 분야다. TP모니터는 하드웨어를 따로 구입하지 않고도 인터넷 접속자 수를 최고 5배 이상 늘릴 수 있는 시스템소프트웨어의 한 종류. 그가 티맥스소프트를 세우고 TP모니터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하자 사람들은 모두 무모한 계획이라고 말렸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 최대의 통신회사인 미 AT&T의 연구진 20여명이 5년을 매달려서 이룬 것이었기 때문에 신출내기 공학자에게 기대를 걸리 만무했다. 그러나 그는 2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13시간씩 진력, 98년 초 마침내 상용제품(제품명 ‘티맥스’)을 개발해냈다. 외국 제품보다 값이 20% 저렴하면서도 성능은 오히려 더 우수했다. 그러나 어려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개발은 했지만 막상 제품을 구입해가는 업체가 없었다. 검증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TP모니터는 프로그램에 조금만 이상이 있어도 조직의 전산망 전체가 무너지기 때문에 기업들은 유명 외국 제품을 선호할 수 밖에 없었다. 8개월 동안 그는 관공서와 기업체를 돌아다니며 제품 시연을 했다. 98년10월5일. 그는 지금도 그 날을 잊지 못한다. 그날 국방부는 30억원에 이르는 군 보급관리사업 시스템소프트웨어 독점공급업체로 티맥스소프트를 선정했다. 불가능할 것이라는 주위의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밤잠을 잊은 채 연구에 쏟은 정성이 마침내 결실을 맺은 것. 국방부가 구입하자 많은 금융기관과 관공서 그의 제품에 대해 문의를 해왔다. 그 뒤로 지금까지 삼성전자와 포스코 등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그의 제품을 구입했고 덕분에 1년새 2백억원에 이르는 매출을 올렸다. 그의 회사는 코스닥 등록도 안됐지만 주식이 액면가의 100~150배에 거래되고 있다. 그는 최근 또 한번의 1% 가능성에 도전했다. 목표는 내년도 총 15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TP모니터 세계시장의 석권. 지난 4일 그는 일본 경제인연합회에서 일본 현지법인 ‘티맥스 소프트 저팬’ 설립 기자회견을 열고 티맥스 시연회를 가졌다. 현지 업체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수십억엔 어치의 제품상담을 벌이고 돌아왔다. 또 올해 말에는 벤처 및 정보통신의 본산인 미국에 현지법인을 세워 티맥스를 실리콘밸리에 수출할 예정이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지금껏 오르지 못할 나무만을 골라서 올라왔다. 가난한 시골뜨기에 야간상고 출신. 보통 사람이라 평생을 짊어지고 사는 멍에겠지만 그는 그것들을 모두 자기 발전의 동력으로 승화시켰다. 그가 앞으로 또 어떤 1%의 가능성에 도전할지 궁금하다. -학교식당서 2,500원짜리 백반으로 세끼 해결- 처음 그는 인터뷰를 완곡하게 거절했다. 정보통신 분야는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하기 때문에 촌음이라도 낭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의 연구를 돈으로 환산하면 하루 2억~3억원의 가치가 있다. 또 신문에 대서특필되면 자신이 자만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언론에 내 얘기가 보도되면 마음이 들떠 연구에 집중하기 어렵고, 그 우쭐함이 삶을 갉아먹는 것 같아 자꾸 슬퍼진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의 인생 이야기가 소년소녀 가장이나 불우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설득에 그는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다. 박대연 교수는 자기관리에 매우 엄격한 사람이다. 수백억원대 재산가가 됐지만 그는 지금도 학교 식당에서 2,500원짜리 백반으로 하루 세끼를 해결한다. 식사대를 포함해 하루 용돈이 1만원을 넘지 않는다. 매일 밤 10시에 연구실에서 퇴근, 숙소인 교수아파트로 가서 11시에 잠자리에 들고 아침 5시30분에 기상, 6시에 연구실로 출근하는 생활을 반복한다. 건강을 위해 토요일 오후 계룡산에 오르는 5시간을 제외하면 일요일도 없이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 그는 “많은 돈을 벌고도 돈의 노예로 사는 사람들이 많다”며 “그런 사람들을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시기를 못박지는 않았지만 수년 내에 자선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아파트 한 동을 구입해 학업에 뜻이 있는 불우 청소년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대학에도 보내줄 생각이다. 어머니에게는 경기도 일산에 55평 아파트 한채를 이미 마련해드렸고 동생들도 모두 자립했으므로 자신이 번 돈은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것이다. /대전 대덕/오창민기자 riski@kyunghyang.com / 시사인물포커스 ========= 존경스런 장남이군요. 이분이 빌게이츠처럼 세계적인 인물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훌륭한 장남으로 살아온걸로 보입니다. -안 훌륭한 장남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