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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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IST ] in KIDS
글 쓴 이(By): Leo (February)
날 짜 (Date): 1995년03월05일(일) 01시13분38초 KST
제 목(Title): [속] 과학원 아이들 -- 출발선에 서서 (1)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다. 머리맡으로 팔을 최대한 뻗어 책상위에 팽개쳐

놓았던 손목시계를 끌어당겼다. 7시 25분. 어제 2시가 넘어서야 잤었는데

이시간에 깬 것을 보면 자기암시가 효과를 발휘한 모양이다. 조금 더 잤으

면 싶었지만 이러다 첫날부터 나가리다 싶어서 이불을 박찼다. 어제 룸메

이트인 효원이가 웬 도박패를 이끌고 와 방을 점령하는 바람에 옆방의 '캐

피탈'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잠을 자지 못했다. 기숙

사생활.. 겨울방학동안 한달간의 경험이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익숙치

않아서 생활 패턴을 찾기 힘들다.

  계단부터 뛰었다. 5층이라는 천혜의 환경(?) 덕분에 다리운동을 따로 할

필요가 없지만, 그래도 아침부터 운동이라도 해야지, 운동부족이기 십상이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부터 조깅을 시작하기로 맘먹었었다. 그런데 1층

으로 내려가보니 기숙사 문이 닫혀 있다. 으헉.. 벌써부터 카드키가 작동

되는구만.. 어제 통신정보과로 갔다가 사람이 많아서 카드키를 나중에 받

겠다고 안받았었는데.. 그냥 나갔다간 잘못하면 새벽에 밖에서 덜덜 떨어

야 할지도 몰랐다. 무엇보다도 지금 시간은, 적어도 이 넓고도 좁은 지역

에서는 꼭두새벽에 속하지 않는가. 어느 놈이 이시간에 일어나서 문을 열

어주랴?

  '나갈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나 첫날부터 이럴순 없다. 용감

히 오픈스위치를 눌렀다. 싸늘한 아침기운. 몸을 움츠리며 호흡을 가다듬

고 차가운 아침안개속에 몸을 던졌다. 저쪽에서 뛰어오는 한 사람이 있었

다. 반갑기도 했지만, 벌써 일어나서 한바퀴 돌아오는 중일거라는 생각이

드니 조금 분하다.

  그동안 운동을 너무 안한 탓인지 조금 뛰었는데도 호흡이 가빠져 왔다.

기계공학동을 우회해서 기초과학연구지원동 쪽 도로로 뛰었다. 내심 캠퍼

스 외곽도로를 한바퀴 돌 셈으로 캠퍼스 지도를 보면서 생각한 코스였는데

앞길이 험난해 보인다. 원내 아파트가 보였다가 이내 내 옆을 스쳐 지나갔

다. 서측 기숙사를 지날땐 너무 힘들어서 뛰기를 멈추고 걸었다. 

  '헉헉.. 으 안되겠다, 여기서 돌아가자..'

  원측 학생회관으로 접어들어 중앙도로를 타고 겨우 기숙사까지 돌아왔을

땐 몹시 힘들어서 그냥 주저앉고 말았다. 어차피 누가 기숙사 문을 열때까

진 기다려야 하니까. 그런데 신입생이라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꽤

되었나보다. 얼마 있지 않아 누군가 문을 열려고 오픈스위치를 열심히 눌

러대고 있었으니까.



  과학원이 서울 홍릉에 있다가 단지 자리 부족이란 명목으로 대덕으로 이

전할 것이 결정되었을 때, '서울에 위치해 있다'는 강력한 장점을 포기한

대신 얻은 것은 이 몹시도 넓은 캠퍼스였다. 부지가 얼마나 되어야 넓다는

표현을 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이 과학원을 다 지어

놓고 나서, 과학원 이전 책임자가 윗사람들에게 몹시 혼났다는 이야기가 있

었다. 이유는 왜 이렇게 호화스럽게 지어놓았냐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새로

생긴 건물들이 많은 학교가 여기저기서 최첨단 시설을 자랑하고 있는 터라

이미 구식건물 소리를 듣게 되었지만 그당시만 해도 과학원 캠퍼스는 대단

히 화려했다. (사실 지금도 화려하다. 청소만 조금 잘 된다면) 특히 원측

건물이 그 외벽에 바른 하늘색 타일때문에 '목욕탕 건물'이니, '사우나'니

하는 말을 듣긴 하지만, 그걸 짓는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었는지, 돈 주면

기둥하나 세워놓고 돈달라고 하고, 또 주면 창문 만들어놓고 돈달라고 하고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왔다.



  "오늘 일반물리 실험 몇호실이지?"

  "2144호더라."

  "이거 또 휴강하는 거 아니냐?"

  "뭐 휴강하면 좋은거고, 강의한다고 해도 첫시간이니 강의계획 말하고 일

  찍 끝내주겠지 뭐."

  "뭐 배운거나 있어야 실험을 하든지 말든지 할거 아냐?"

  "어쨌든, 남는 시간엔 뭐할거냐?"

  식당에서 만난 친구들과는 아침강의에 대한 것이 화제였다. 문제는 남는

시간이다. 선배들 말로는 '행복한 소리 하고 있다'지만 지난 겨울방학때 특

강을 들으면서 정말 '할일이 없을때의 괴로움'을 뼈저리게 느꼈던 백수들에

겐 마치 숙제 홍수와 리포트 폭풍이 몰아치기 전야같은 고요함속에서 시간

을 때울 특정한 일을 발견해야 한다는 사명감마저 들었다.



  "문 잠겼어?"

  고생끝에 2호관 2144호를 찾아갔건만 허망히도 잠겨있는 문앞에서 망연

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게 같은 반인 세정이가 저쪽에서 걸어오면서 

물었다.

  "응. 혹시 강의실 바뀐다는 얘기 없었지?"

  세정이는 고개만 끄덕였다. 이거 어쩌자는 얘기야? 강의시간이 5분도 안

남았는데 문이 잠겨있다니. 그런데 우리반 애들은 왜 오지도 않아?

  잠시후 아이들이 몰려 왔다. 조용하던 복도에 도때기 시장이 열렸다. 간

밤에 만화책을 봤느니, 오늘 휴강이 틀림없다느니, 북적북적.. 그러다 한

교수님(확실치는 않은)이 오셔서 2138호로 오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꾸역

꾸역 몰려드는 아이들을 향해 단 한마디를 던지셨다.

  "아, 뭐 다 들어올 거 까지는 없고, 여러분 담당교수님이 일이 있어서 오

  늘 강의 없습니다. 과목 오리엔테이션은 다음주에 하겠습니다."

  쿠궁.. 설마 했더니 역시라더니.. 다른반은 벌써부터 물리 숙제가 나오고

C로 프로그래밍까지 해오랬다는 썰이 돌았고, 몇몇 친구들은 벌써 물리책으

로 영어공부를 하는 희한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판인데, 우리반은 우째

이리 널럴하다냐..



  아침부터 조깅을 하겠다고 설치다 몸의 한계를 느낀 후에도, 신입생들은

늘 치러야 하는 여러가지 일때문에 오전 내내 드넓은 캠퍼스를 헤집고 돌아

다녔다. 과목교재를 사러 얼굴에서 뼛속까지 들어오는 추위를 감수하고 내

애마인 자전거로 원측 학생회관까지 다녀왔고, 카드키 받으러 행정분관을

찾아야 했고, 등록금 영수증을 내야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또 행정분

관 1층의 학적과를 가야 했고, 1호관 교학과 앞에서 자기 수강 신청 결과표

를 찾느라 온 프린트물을 다 헤집으며 찾아야 했다. 할일 없어 널럴하다는

불평이 무색할 정도 였다. 어떻게 오전을 보냈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점

심을 겨우 먹고 또다시 '논술'과목을 듣기 위해 1호관으로 가서, 한시간쯤

처음으로 강의같은 강의를(사실 과목 오리엔테이션이라 강의도 아니었지만)

들었다. 그리고 나오면서 우리 손엔 각자 한학기 수업계획서와 논술 숙제

'한국 현대사와 우리가족'이 들려 있었다.



  아직은 대학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감이 잘 오지 않

는 내게 과학원에서의 생활들이 조금씩 길들어간다. 그동안은 방학때나 잠

깐 아는 선배형들을 만나러 놀러 오던 유원지(?)같던 곳이 이젠 다른 개념

으로 바뀌어 갔다. 저녁을 먹고 나오면서 MT를 간다며 식당앞에 무리지어

서있는 과학고 출신 아이들을 보면서, 친구가 어떤 건지, 아는 사람이 있

다는 것이 어떤건지도 어렴풋이 느껴져 왔고, 그들과의 고질적인 이질감도

결국은 포용하고 극복해야 한다는 다짐도 해야 했고, 분식점에서 라면을 먹

으면서 MBC뉴스에서 찍어간 우리 학교 입학식 장면이 언제나오나 지켜보다

지역뉴스때 그것도 충남대 다음으로 한 3초간 나왔다고 같이 흥분하던 일이

나, 새벽 한시에 선배형 랩에 찾아가 같이 편의점 로손에 가서 즉석우동을

먹으면서,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흰색 가로등과 노란색 나트륨등이 섞여 비

추고 있는 과학원 캠퍼스를 보면서, 요즘 수준이 어떻고 순위가 어떻고 하는

곤혹을 치루고 있는 과학원이지만, 적어도 이안에 속한 사람으로서 과학원에

미운정 고운정을 붙이기 시작하는 시점에 있다는 것을 나는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었던 것이다.



What though life conspire to cheat you,    Hearts live in the coming day.
Do not sorrow or complain.                 There's an end to passing sorrow.
Lie still on the day of pain,              Suddenly all flies away,
And the day of joy will greet you.         And delight returns to-mor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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