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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IST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guest) <211.119.130.59> 
날 짜 (Date): 2000년 9월 15일 금요일 오전 06시 01분 59초
제 목(Title): Re: [Q] 평행선이 만날 수 있나요?


잘 아실 만한 분들이 계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기에 가만히 있으려고
했지만, 다들 안 쓰시길래 잠깐 시간이 남는 저라도... :)

물론 `평행선'의 정의가 그렇기 때문에 평행선이 만난다는 문장 자체는 문제가
약간 있습니다만, 그다지 틀린 얘기도 아닙니다.  평행선을 `만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사영기하에 대한 이야기이고, 아마도 처음 질문하신 분이
물은 것도 여기에 대한 것일듯 합니다.

평행한 철도가 죽 뻗어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무한히 먼 곳에서 두 선이 만나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따라서, 주어진 두 평행한 직선 a, b에 대해 `무한히
먼 곳에 있는 점'을 평면에 추가하면 이 두 직선은 그 점에서 만납니다.
이런 점들을 모두 더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사영평면입니다.  좀 다릅니다만,
밤하늘을 볼 때에 상상하는 시각적인 가공의 개념인 `천구'와 약간 비슷합니다.

소위 `무한원점(무한히 먼 점)'이라 불리우는 점들입니다.  위의 정의는 그다지
엄밀하지는 않죠.  조금 더 엄밀한 정의를 줄 수가 있습니다.  아까의 a, b에
또한 평행한 또다른 직선 c가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역시 머릿속으로 황야
위로 무한히 멀리 뻗어나가는 세 개의 평행선 a, b, c를 생각하면, a와 b, c는
동시에 한 개의 무한원점에서 만나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결국, 임의의
주어진 직선 a가 있으면, a에 평행한 임의의 직선은 a와 같은 곳에서, 즉 
`a의 맨 끝에서' 만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따라서 그런 의미로는 임의의
평행선의 다발은 하나의 무한원점을 결정합니다.  반대로, 무한원점이 하나
주어지면 `그곳을 지나는' 직선들을 생각한다면 이들은 전부 평행합니다.
따라서, 동치관계에 익숙하신 분이라면 무한원점은 직선들을 평행관계에 의해 
나눈 동치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좀 딱딱하기는 하지만
무한원점에 대한 엄밀한 수학적 정의가 됩니다.  그리고 강제로 평행선을
만나게 했으니 만납니다.

`천구'와의 차이는 여기서 나죠.  직선 a가 하나 주어지면 위의 정의에 따르면
이 직선은 한 개의 평행관계에 의한 동치류, 그러니까 한 개의 무한원점을
결정합니다.  따라서, 직선 a의 `끝'이 하나 뿐인 것으로 되어 버리니 시각적인
것과는 좀 다릅니다.  왜냐하면 직선의 경우 보통 무한히 먼 곳의 `끝'이라고
하면 두 개의 점을 아무래도 상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지금은
사영기하적인 답을 하는 중이므로 계속 하겠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쪽이
더 나은 점이 있습니다.  두 직선은 평행선이 아닌 경우 유일하게 한 점에서
만납니다.  두 평행선은 이 정의에 따르면 유일하게 한 개의 무한원점(그들이
속하는 동치류)에서 만납니다.  따라서 최소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상황이
평등해집니다.  만일 시각적인 처음의 모티베이션을 따라서 양 끝단을 만들려고
한다면 이런 면에서는 덜 좋겠죠.  무한히 먼 곳에서 직선이 어떻게 돌아서 원
비슷하게 붙는다는 식의 상상을 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니, 사영평면은 두 종류의 점으로 이루어집니다.

1. `진짜 점': 평면상의, 우리가 익숙하게 느끼는 점.  (x,y).
2. 무한원점 : 각각의 평행선 다발이 결정하는 점, 무한히 먼 데에 있는 점,
              말하자면, y=mx+n에서 m에 의해 (그리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x=0까지 넣어서) parametrize 되는 점.

그러니 최소한 이 정의에 의하면 2번 점들은 사영평면의 이등시민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동차좌표를 도입하면
분명해집니다.

동차좌표란, 한 점 (x,y)의 좌표가 사실은 x=X/Z, y=Y/Z라는 비로 되어 있다고
상상하는 것입니다.  제대로 표기할 때에는 (X/Z,Y/Z)가 아니라, 직접 세
숫자의 비인 [X:Y:Z]라고 표기합니다.  물론 이 세 개의 숫자가 전부 0이면
재미가 없으므로 그런 경우는 사영평면의 점을 결정하지 못한다고 간주합니다.
세 개의 숫자 자체가 한 점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 개의 숫자의 비가
한 점을 결정합니다.  즉, (1,2)는 동차좌표로는 [1:2:1]이라고도 쓸 수 있고,
또한 [2:4:2], [e:2e:e]라고도 쓸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무한원점들은 어디에 속하는가?  `무한히 먼 곳'에 있으니까,
(X/Z,Y/Z)에서 Z가 X, Y에 비해 훨씬 작은, 궁극적으로 Z=0인 경우입니다.
(X/Z,Y/Z)라고 써놓고 보면 (무한대, 무한대)가 되는 듯 보입니다만,
동차좌표에서 보면 무한원점들이 있을 자리가 다 있습니다:  바로 [X:Y:0]같이
생긴 점들이니까요.  더 간략하게 쓰고 싶으면, X가 0이 아닌 경우에는
[1:Y/X:0], Y가 0이 아닌 경우에는 [X/Y:1:0]이라고 쓸 수 있습니다.

앞에서 y=mx+n꼴의 평행선이 있으면 이 m에 의해 그 평행선들이 만나는
무한원점이 결정된다고 했으니, 동차좌표로 그 문제의 점의 좌표가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 봅시다:  쉽습니다.  x 대신 X/Z, y 대신 Y/Z를 넣습니다.
그러면 Y/Z=mX/Z+n.  정리하면 Y=mX+nZ가 되죠.  동차좌표에서 Z=0인 점을 찾는
중이므로 원하는 관계식은 Y=mX가 됩니다.  따라서, 문제의 점은
[X:Y:0] = [X:mX:0] = [1:m:0].

아참, 또 하나 전혀 다른 평행선 다발이 있었죠: x=n 꼴의 직선들입니다.
이 경우에는 X/Z=n -> X=nZ -> X=0.  따라서 [0:Y:0] = [0:1:0].

그러므로 일단은 보통의 점이나 무한원점이나 똑같이 동차좌표로는 비슷하게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동차좌표가 보다 근본적인 것이라고 상상한다면,
관점을 바꾸면 무한원점이 보통의 점이 되고 보통의 점이 무한원점이 되게
만드는 것도 가능합니다: 아까는 [X:Y:Z]에서 Z가 0이 아닌 점들이 정상이라고
간주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유일한 가능성이 아니죠.  예를 들자면 X가
0이 아닌 점들이 정상이라고 간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정상인 점들은
[1:Y/X:Z/X], 그러니까 (Y/X,Z/X) 라고 묘사됩니다.  아까의 y=mx+n이 결정하는 
무한원점 [1:m:0]은 간단히 (m,0)으로 변합니다.  근데 (m,0)에서 m을 바꾸어줄
때에 이 점이 그리는 궤적은 물론 직선입니다.  따라서, 관점을 바꾸면
무한원점들을 다 모아보면 `정상적인' 직선이 됩니다.  또한 지금 우리는 x=0인
점들을 새로운 무한원점들로 간주해 버렸습니다.  x=0인 점들은 (0,y), 바로
y축입니다.  따라서 정상적인 직선은 관점을 바꾸면 무한원점들을 모은 직선이
됩니다.

그리하여 정리하면, 사영평면은 정상적인 평면에다가 무한원점들로 이루어진
직선 하나를 더한 것이며, 이 정의는 동질적이지 않은 듯이 보이지만 관점을
바꾸어 보면 사영평면은 어디에서나 동질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영평면에서는 `정상적인' 평행이 아닌 직선 둘은 보통의 평면에서,
`정상적인' 평행선은 어딘가의 무한원점에서 만납니다.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직선과 무한원점 또한 만납니다: 바로 아까 y=mx+n의 `끝점'이었던
[1:m:0]에서 만나죠.  즉, 여기에선 모든 두 개의 직선이 한 점에서 만납니다.
그 한 점이 `정상적인' 점일 수도 있고 무한원점일 수도 있겠지만.  즉,
평행선이 없습니다.

어쨌든 아마도 이게 처음 질문하신 분이 대강 기대하신 답일 것 같군요.  근데
왜 뭣하러 이런 짓을 하는가?  처음 정의가 약간 복잡해 보였지만, 일단
동차좌표를 쓰기 시작하면 사영평면에서의 해석기하학은 보통 평면에서의
해석기하학에 비해 특별히 많이 복잡하지는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영평면에는 보통 평면에 비해 훨씬 많은 장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1. 직선과 점 사이의 대칭성: 사영평면 위에서의 직선의 방정식은
aX+bY+cZ=0입니다.  예를 들어 이 직선을 보통의 (x,y)-평면으로 한정하면
a(X/Z)+b(Y/Z)+c=0 -> ax+by+c=0이 되니까 말이 되어 보입니다.
그리고 보시다시피 위의 식에서 하나의 직선을 결정하는 것은 a, b, c 자체가
아니라 이들의 비율입니다: X+2Y+Z=0이나 2X+4Y+2Z=0이나 이들이 묘사하는
직선은 당연히 같습니다.  뭔가 상황이 앞에서와 비슷하죠?  임의의 직선 역시
동차좌표로 [a:b:c]라고 묘사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대칭성은
단순히 묘사의 닮음 이상입니다: 사영평면에서는 임의의 두 직선 l,m이 항상
만나므로 유일하게 한 점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임의의 두 점 P, Q 사이를
잇는 직선이 유일하게 있으므로 바로 이 직선을 유일하게 결정합니다.
나아가서, 사영평면 위의 점과 선에 대한 어떤 참인 명제가 있다면, 그 명제에
나오는 모든 점을 선으로, 모든 선을 점으로 바꾸고, 모든 `l, m이 P에서
만난다'를 `P, Q를 l이 지난다'로 바꾸고, 기타 등등의 자명한 번역을 해 주면
그 결과로 얻어지는 명제 또한 자동으로 참입니다.  보통의 평면은 일단 임의의
두 직선이 항상 만나지 않기때문에 처음부터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멋지죠.

(물론, 위의 명제는 기하학의 모든 명제가 아니라 선과 점들과 이들의 만남에
대한 내용으로 국한되어야 합니다.  선분의 길이 같은 것이 나오기 시작하면
이것을 점의 어떤 개념으로 번역해야 할까요? ;)

이건 `괴상한' 사영평면 얘기이고 보통의 평면과는 상관 없는 일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영평면에서 직선 하나만 빼면 보통의 평면이 되므로 
보통의 평면은 사영평면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렇게 번역한 결과가 다시 무한직선 밖의 점과 선에 대한 묘사가 된다면 
그 결과를 보통의 평면 위의 점과 선에 대한 이야기로 되돌릴 수도 있겠죠.

2. 두 개의 곡선이 만나는 점의 갯수: 두 개의 직선은 1개의 점에서 만나는데,
그 이유는 직선이 일차 곡선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y=f(x)에서
f(x)가 만일 삼차식이면, 우리는 이 곡선과 직선이 만났을 때에 3*1개의 점에서
만날 것을 예상합니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는 않습니다.  일단 허근이 생길
가능성도 있고, 중근이 생길 가능성도 있고, 뭐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 y=f(x)와 y=g(x)가 있으면, 재수가 좋은 경우에는 m이 f의
차수이고 n이 g의 차수이면 두 곡선은 mn개의 점에서 만납니다.  하지만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항상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실 허근, 중근의 문제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에서 정상적인 평면은 이런 일이 생길 수 없습니다:
보통의 평면의 경우에는 당장 근본적으로, 평행선이 만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장 1차 곡선들조차도 말을 듣지 않으니 자명하게도 참이 아닙니다.

일단 사영평면의 경우는 이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했기 때문에 (두 직선은
반드시 한 점에서 만납니다), 좀 더 희망적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습니다.  사영평면에서는 임의의 m차 곡선과 n차 곡선은 mn개의 점에서
만납니다.  다만, 여전히 허근과 중근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근데 그다지
심각한 문제는 아닙니다.  해석기하를 하는 데에 있어 방정식을 풀고 숫자를
대입하는 등의 일에서 실수 대신에 아예 처음부터 복소수를 쓰기로 하면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복소사영평면으로 무대를 옮기면 허근이라는
말이 별로 의미가 없죠.  여전히 중근의 문제는 남습니다.  k중근은 k번 거듭
세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고 나면 임의의 m차 곡선과 n차 곡선은
희망대로 mn개의 점에서 만납니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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