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apan ] in KIDS 글 쓴 이(By): Dunks (SolidState) 날 짜 (Date): 1998년 8월 30일 일요일 오후 01시 11분 55초 제 목(Title): 퍼온글: 일본 문화에 대해서..[중앙 메가진 일본 대중문화가 세계 제패한 이유 ‘재미없는 일상’을 흥미있게 해석 김지룡 일본 대중문화 비평가 ‘일본문화’ 하면 선정성과 폭력을 떠올린다. 하지만 일본문화가 세계를 제패한 원인은 재미있기 때문이다. ‘재미없는 일상’에 대해 ‘삶은 원래 힘들지만 재미있게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또다른 특징은 다양성과 개방성이다. 전달한다. 또다른 특징은 다양성과 개방성이다. 개방적인 만화·애니메이션·게임업계는 이미 세계를 제패했다. 가장 보수적이던 영화업계도 최근 보수성을 탈피, 발전을 이루고 있다. “나는 일본문화가 재미있다.” ‘재미있다’와 ‘좋다’는 다른 의미다. 따라서 나는 일본문화 옹호론자는 아니다. 객관적 시각으로 일본문화를 접하다 보니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재미를 느끼는 부분 또한 여러 가지 측면을 지니고 있다. 먼저 문화의 소비자인 일본인들, 특히 젊은이들이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두번째, 일본의 대중문화상품 자체가 재미있다. 재미있기에 전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독식이 진행중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런 경쟁력있는 문화상품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이 재미있다. 먼저 일본인을 살펴보자. 우리는 그동안 소수의 일본인을 두고 일본인 전체라고 생각해왔다. 일본은 ‘있다’ ‘없다’는 논쟁이 나오는 것도 전체를 관망하는 시각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1억2천만명이 동일한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지닐 수 있겠는가. 1억2천만 인구의 다양성 간과해선 안돼 지난 5월23일, 일본에서 “프라이드”라는 영화가 개봉됐다. 2차 세계대전 때 전시내각 총리였던 1급 전범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를 영웅으로 미화하고 추앙하는 내용이다. 한국·중국 등 2차대전 때 일본제국주의에 희생됐던 나라는 물론 세계 각지에서 비난의 여론이 빗발쳤지만 영화는 예정대로 상영됐다. 이 영화의 감독은 말한다. “일본인들이여, 이제 타이타닉 좀 그만 보고 이 영화를 봐달라. 이 영화를 봐야만 올바른 일본인이 될 수 있다.” 한국 사람이 들으면 정말로 속이 터지다 못해 갈기갈기 찢어지는 말이다. ‘일본인은 모두 죽일 놈들’이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그러나 “프라이드”를 상영하는 극장 앞에서는 하루종일 상영을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시위 행렬이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행인들은 프라이드의 내용에도,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의 주장에도 무관심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일본인들도 여러 부류가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한·일 축구경기 때 개회식을 주의깊게 보기 바란다. 특히 일본의 국가인 기미가요가 나올 때 선수 하나하나의 표정과 움직임을 주의해 보라. 가슴에 손을 얹고 감격스러운 표정을 짓는 선수는 미우라와 나카야마 정도다. 나머지 선수는 딴 짓을 하거나 몸을 풀고 있다. 일본의 프랑스월드컵 본선 진출이 확정됐을 때 일장기를 휘날리며 운동장을 뛰어다닌 선수도 미우라와 나카야마밖에 없었다. 미우라는 일장기와 기미가요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줌으로써 일본의 본류사회인 보수층에 아부하는 것이다. 한때는 일본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던 미우라였지만 이미 실력면에서는 다른 선수들에게 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게임에 나오는 이유는 기미가요가 나올 때의 쇼맨십과 일장기에 대한 충성의 표시 덕택이다. 축구협회와 스폰서인 기업사회의 보수적 노인네들이 ‘귀엽고 기특한’ 미우라를 빼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다른 선수들이 일장기를 무시하고 기미가요에 반응이 없는 것은 교육 탓이다. 일본 교육계의 반골세력인 전국교원노조연맹(전교련)의 반발 때문에 학교 교정에 일장기를 걸지 못하고 기미가요를 가르칠 수 없는 학교가 30%가 넘는다. 심지어 오키나와의 일본인들은 미군기지 문제를 일본 정부에 항의하면서 일장기를 불태우기도 했다. 그 장면은 일본 전국에 TV로 방영됐다. 그 어떤 나라 국민이 자국의 국기를 불태우며 시위를 하겠는가? 주류와 비주류의 차이점 크다 그동안 우리는 주류사회, 보수본류사회에 속하는 사람들만을 일본인이라고 생각했다. 정치가·관료, NHK와 요미우리신문, 대기업의 이사들 등. 독도를 자기땅이라고 생각하고, 정신대는 날조며, 지금도 대동아공영권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런 일본인들은 오히려 소수에 불과하다. 단지 그들이 힘이 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에 망언이 신문에 오를 뿐이다. 이런 주류사회가 일본을 지배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주류에 대항하는 비주류도 폭넓게 존재한다. 비록 힘은 없을지언정 수적으로는 본류를 능가하는 세력이다. 이들을 모른 채 일본사회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본인이 집단적이고 획일적이라는 것은 편견이다. 일본인은 한국인보다 더욱 다양하다. 특히 젊은이들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하다. 80년대 말까지 존재했던 여러 가지 ‘유행’들은 90년대 들어 자취를 감추었다. 지난해부터는 ‘마이 붐’(My Boom)이라는 말이 자리잡았다. “요새 한국음식이 마이 붐이에요.” 자신은 독자적 취향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을 남에게 평가받을 생각도, 강요할 생각도 없다는 말이다. 유행에 뒤처지면 촌스럽다는 말을 듣는 한국과는 상황이 다르다. 개방도 되기 전인데 일본 대중문화에 푹 빠져있는 한국의 청소년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 문화가 일본문화에 ‘싹쓸이’당할지 모른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왜 우리의 젊은이들이 빠져드는지에 대한 분석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 이유를 일본 대중문화의 ‘다양성’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대중가요시장의 가장 큰 특성은 ‘휩쓸기’일 것이다. 한국에서 댄스 음악도 싫어하고 발라드도 싫어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김종서나 리아의 록 음악을 듣거나, 더욱 서브컬처로 파고들어가 이윤정의 테크노를 듣는 수밖에 없다. 그것도 싫다면? 음악을 안 듣는 수밖에…. 어떤 노래를 듣는가는 ‘노래의 수준’보다 듣는 사람의 취향에 좌우된다. 그러나 한국은 댄스음악이건 발라드건 무엇인가가 뜨면 너도나도 달려들어 ‘휩쓸기’와 ‘싹쓸이’판이 벌어진다. 이로 인해 한국의 대중가요는 항상 다양성 부족증에 걸려 있다. 이에 반해 일본의 대중가요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 복잡하고 다양하다. 요시다 다쿠로를 필두로 1970년대 일세를 풍미했던 포크록 가수들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고, 뉴 포크록, 일본식 팝뮤직인 J-POP, 일본식 록뮤직인 J-ROCK 계열, 일본식 하드록, 비트 계열의 쌍벽을 이루는 고무로 사운드와 비잉 사운드, 비주얼록, 발라드 등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음악이 다양하다. 댄스음악이 전 가요계를 초토화시킨 한국과는 상황이 180도 다르다. 이러한 다양성 때문에 일본 대중가요의 상륙은 한국 가요계를 강타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사람이라고 누구나 댄스음악을 좋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런 다양성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소재와 스토리가 다양한 것은 물론이고 타깃으로 삼는 연령층도 다양하다. 일본은 오래 전부터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의 문화라는 편견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은 온통 일본판이지만 한국 만화들이 일본에 맞서 굳게 버티고 있는 이유는 성인들이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이 많기 때문이다. 어른이 돼서도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본다고 탓할 일은 아니다. 이제는 세계적으로 성인들도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보는 시대다. 이들을 무시하고 ‘애들용’만을 양산해낸다면 성인들도 즐길 수 있는 다양성으로 무장한 일본 대중문화에 일방적으로 당할 것이다. 음란과 폭력만으로 세계제패? 우리에게는 음란, 폭력의 대명사가 된 일본만화, 비단 만화만이 아니다. 애니메이션이건, 게임이건, 영화건 ‘일본’이란 접두어가 붙으면 무조건 선정적이고 폭력적이라고 간주한다. 그러나 일본의 대중문화는 이미 세계를 제패했거나 제패중이다. 과연 음란과 폭력만으로 재패할 수 있을 정도로 세계가 만만한가. 아니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 재미의 원천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 한국의 대중문화를 세계적 상품으로 발돋움시킬 수 있다. 문화에도 주류와 비주류가 있다. ‘가부키’(歌舞伎)나 ‘교겐’(狂言)이 일본의 전통문화고 보수본류의 의사를 반영하는 문화라면 애니메이션과 만화는 새로운 문화며 비주류문화다. 비주류가 만드는 대중문화에 일본 보수사회의 메시지가 담긴 경우는 거의 없다. 전쟁에 대한 분노와 염증을 메시지로 담고 있는 애니메이션은 쉽게 발견할 수 있지만 군국주의를 부추기고 재무장을 주장하는 애니메이션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점이 세계적으로 공감과 인기를 얻는 이유의 하나다. 미국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영웅과 동물농장밖에 없다. 슈퍼맨·배트맨·람보 같은 영웅이 판치거나 미키마우스·도널드덕·톰과 제리 같은 동물이 주로 나온다. 이에 반해 일본의 대중문화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서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들이 활약하는 무대도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적인 공간이다. 사회적으로는 힘이 없는 비주류들이 만들기 때문에 서민들의 정서와 부합하는 측면이 많은 것이다. ‘재미’는 ‘지겨운 일상’의 리얼한 해석에서 ‘일상’이란 키워드는 선진국일수록 막강한 힘을 지닌다. 고도경제성장이 끝난 사회에서 사람들 앞에 던져진 것은 ‘끝없이 반복되는 지긋지긋한 일상’이었다. 오늘이 어제보다 별로 나아지지도, 달라지지도 않는 사회인 것이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무료한 사람들은 응원가를 필요로 한다. 일본의 대중문화는 이런 일상을 포착해내는 힘이 있다. “원령공주”와 “에반겔리온”은 지난 한해 일본 열도를 뜨겁게 달군 애니메이션이다. 이 두 작품이 공통적으로 담은 메시지는 ‘삶은 원래 힘든 것이다. 그렇지만 살아가자’는 경구다. 세계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일본영화 “우나기”와 “하나비”도 이런 메시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일상으로 그리다 보면 자연히 ‘성’과 ‘폭력’이 삽입될 수밖에 없다. 일본사회 자체가 ‘성’과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진짜 폭력만이 아니라 언어에 의한 폭력, 개인에게 가해지는 집단의 폭력, 성희롱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체에 폭력이 난무한다. ‘성’도 마찬가지다. 일상의 지긋지긋함과 무료함을 ‘성’으로 해결하는 일은 세계 어디서나 존재한다. 이런 사회를 리얼하게 그리다 보면 자연히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이 들어간다. 사회 전체에 성과 폭력이 만연한 것은 미국이나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초등학생이 아니라면 무조건 사회를 미화하는 내용에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의 대중문화가 세계적으로 어린애들보다 성인들에게 인기 있는 것은 실제로 겪는 사회를 리얼하게 묘사해 공감을 얻기 때문이다. 세번째, 대중문화를 만들어내는 일본의 업계가 재미있다. 인간의 창의성은 불행히도 기나긴 수업이나 뼈를 깎는 노력에 의해 발휘되는 것 같지 않다. 우연히 발생하는 측면이 강하고, 그 우연성은 다양한 개성에 의해 뒷받침된다. 대중문화업계는 인간의 창의성을 기본으로 한다. 이런 업계가 폐쇄적이어서는 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 문을 활짝 열고 다양한 인재들을 끌어모을 수 있어야 한다. 사실 할리우드가 전세계를 정복한 이유도 영화업계라는 좁고 폐쇄적인 틀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외부에서 유능한 인재를 끌어들인 데 있다. 나아가 최근의 추세는 미국에 머무르지 않고 전세계에서 유능한 인재를 찾는다. 홍콩 출신의 우위썬(吳宇森)이나 프랑스 출신 뤽 베송이 좋은 예다. 일본영화가 할리우드에 밀려 한때 빈사상태에 처했던 것도 결국은 업계의 폐쇄성이 원인이었다. 최근 보이는 일본영화의 부활 조짐도 역시 할리우드의 진화법칙을 도입했다는 점에 그 실마리가 있다. 이른바 어디서 굴러왔는지 모를 ‘개뼈다귀’들도 쉽게 영화감독으로 데뷔할 수 있는 환경으로 조금씩 정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코미디언·포르노 출신 영화감독의 대성공 “하나비”로 베니스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한 기타노 다케시 감독. 그는 코미디언 출신이다. 설명적 대사나 화면을 극단적으로 삭제한 스토이크적 연출, 예측하기 힘든 전개 등 기타노 감독의 강점은 코미디언 출신이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개그맨은 최소한의 대사로 웃겨야 한다. 개그의 대사는 에센스만으로 충분하다. 대부분의 영화는 너무 대사가 많고 설명도 길다”고 말했다. “Shall We Dance?”도 한국적 풍토에서라면 있을 수 없던 일이었다. 지난해 이 영화는 미국에서 1천만달러의 배급수입을 올리며 최고로 히트한 일본영화로 기록됐고 평론가들로부터도 극찬받았다. 이 영화의 감독인 스오 마사유키는 포르노영화 감독이었다. 그의 데뷔작은 “변태 가족, 형수.” 제목만으로도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는 영화였다. 놀라운 것은 영화라고는 포르노영화 한편밖에 찍은 적이 없는 스오에게 다음해 일본의 민간방송인 후지TV에서 드라마 제작을 맡겼다는 것이다. 포르노영화 감독이라도 실력이 인정되면 텔레비전 드라마나 일반 영화의 감독을 맡기는 개방적 풍토가 없었다면 스오 감독은 평생 포르노를 찍었을 것이다. 실베스타 스탤론도 한때는 포르노영화배우였다는 사실, 그것이 밝혀지고서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사실과 오버랩되는 얘기다. 일본 영화계는 대중문화업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곳이다. 개방적인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업계는 이미 세계를 제패한 반면 영화업계는 보수성으로 침체 일변도를 달렸다. 그러나 약간 문호를 개방하는 것만으로도 부활의 조짐이 보인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닌텐도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게임업계를 제패한 소니의 입사원서에는 출신대학 기재란이 없었다. 학벌 위주의 인사채용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한국처럼 ‘어디서 구르던’을 중시하는, 즉 경력·학연·지연을 중시하는 풍토에서는 창의성있는 인재를 발굴하기 힘들다. 한국인은 창의성이 풍부한 민족이다. 창의성만 있다면 누구나 쉽게 등용될 수 있는 분위기와 시스템이 정착된다면 한국의 문화상품도 세계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