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apan ] in KIDS 글 쓴 이(By): dicom (누구맘대로) 날 짜 (Date): 1998년 8월 26일 수요일 오후 09시 27분 06초 제 목(Title): [펌] 한일 특질 비교 학술] 한국과 일본의 특질 비교한 가라타니 고진 논문 한국과 일본은 한자문화를 공유하고 있고 언어도 서로 닮았지만, 정신세계와 삶의 태도는 매우 다르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온 것일까. 최근 계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번역 소개된 일본 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일 긴키대·미 콜럼비아대 교수)의 `일본정신분석'은 이에 관한 흥미로운 분석이다. 가라타니는 우선 동아시아 각국이 서양 제국주의에 부닥쳤을 때, 중국과 한국에서는 거센 저항이 일었지만, 일본은 `별 문제 없이 근대화를 이뤘다'는 데서 분석을 출발한다. 그는 그 까닭을 “저항해야 할 `자기'가 일본에는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잘 짜인 사회체제와 원리가 있다면 외래 문화에 반드시 저항하지만, 일본은 그럴 만한 `자기'도 `원리'도 없었다는 것이다. 왜 일본에서는 `자기'나 `원리'가 형성되지 못했을까. 가라타니는 이집트 종속이론가 사미르 아민의 `불균등발전론'을 빌려, 시스템이 미완성 상태인 주변부 국가에서 새로운 사회의 발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아민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 문화도 완성된 제국 이집트의 주변에서 싹튼 것이며, 근대 자본주의도 중세 유럽의 변방이자 섬나라인 영국에서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런 관계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도 적용할 수 있다. 한반도와 일본열도는 중국의 변방인 점에서는 같지만, 일본이 주변적 성격이 훨씬 강하다. 한반도는 잦은 이민족의 침략을 입은 까닭에 중국보다 더 원리적이고 체계적이고자 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 때문에 한반도에서는 `억압'과 `주체'가 강화했다. 반면 일본은, 몽골 침략의 예에서처럼, 한반도가 이민족의 침입을 걸러주는 구실을 한 까닭에 `자기'도 `원리'도 없는 주변적 특질을 형성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은, 전후 도쿄재판을 보며 전쟁범죄를 책임질 주체가 어디에도 없는 일본 천황제 파시즘을 `무책임의 체계'라고 부른 일본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의 분석과도 일맥상통한다. 가라타니는 여기서 더 나아가 한국과 일본이 한자를 받아들이는 방식의 차이에도 주목한다. 일본은 한자를 음독과 더불어 훈독으로 받아들였지만, 한국은 한자를 음독으로만 받아들였다. 한국인은 한자를 음으로만 읽음으로써, 프로이트와 라캉의 용어를 빌리자면, 무의식의 `거세'를 통해 `억압'을 경험하지만, 일본인은 한자를 훈으로 읽음으로써 오히려 무의식을 상형문자의 형상으로 표현하는 `거세의 배제'를 경험한다. 이처럼 `억압'이 없는 일본 문화에서 비롯한 권력구조는 결국 `기만'이며, 이는 천황제 파시즘의 `무책임제'를 낳았다. 이 글은 한·일 두 문화의 같고 다름에 대한 뛰어난 통찰을 담고 있지만, “일본 자본주의 발전의 정당화 논리”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이상수 기자 기사제보·문의·의견 culture@mail.hani.co.kr ----------------- 사족> 결론은 그럼 일본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