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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YU ] in KIDS
글 쓴 이(By): cgman (호머심슨)
날 짜 (Date): 1995년10월31일(화) 11시30분26초 KST
제 목(Title): 한양대에 입학할때쯤의 이야기..


그때가 87년이었다.
그땐 선시험 후 지원제의 마지막이었고, 아마도 76만명인가가 시험에 응시
했다고 한다. 그이후에 계속 응시자가 늘었다고 하는데 내 동생이 시험 볼
때는(내동생은 학력고사를 다행히 보지않고 10월달에 입학하는과기대에
붙어 있었음. 아마 봤으면 그 아이의 상태로는 서울대는 좀 힘들었을게다)
그 지원자수가 100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동생은 90학번인가(가물가물..)
그렇다. 
우리집안의 전통은 좋아하는 과목은 잘하고 싫어하는 과목은 못한다는 것
이었다. 누나 둘도 이미 그런 전례에 따라 시험을 치뤘고 나도 역시 그 영
향으로 국어에서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다. 국어55점중 32문제를 맞았어도..
근데, 상황은 32문젠가를 틀렸다는거였고, 당시 공업이 무지 어려워서 거기
서 반타작도 못했다는것.. 아뭏든 270점을 간신히 넘는 점수를 받았고..
한대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동생은 국민윤리와 국어를 못했
는데, 국민윤리는 그정도가 심각(?)했다. 25문제중 10문제를 못맞췄던것 
같다.. 그러니 겐 과기대 간게 다행스럽다.과기대입학시험엔 국민윤리가 없
으니까..
그때 학교앞 신교문앞에서 원서를 500원에 팔았다. 매표소비슷하게 나무로
만든 거였는데..난 느지막하게 마감 전날인가? 그때쯤에 원서를 사러 학교에 
처음으로 갔었다.
대문이 무척 크다고 생각했고 학교가 산속에 있구나 하고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냥 원서만 한 2장정도 달랑사들고 집에 왔다. 그리고 원서내는 마지막날
내려고 학교에 갔더니..왠? 모두 미달이었다. 나는 쾌재를 불렀다. 미달로
들어가겠군 하고 어느과에 갈까 망설이고 있었다. 원래 전산과에 가고 싶었
는데 일단 그건 접어두고.. 마감이 다되가는 5시30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미달이었다. 엄청난 눈치작전 이었다.
난 그때쯤 원래 생각하고 있었던 과에 원서를 내기 위해 학생회관2층 원서
접수창고에 원서를 들고 올라갔다. 사람이 엄청나게 북적이고 있었다. 
원서를 내는데 원서를 받는사람이 몇점이냐 몇등급이냐를 물어봤다. 속으로
원서에 다 써있는데 그걸보지..하는 생각을 했다.
얼마나 오래 발표를 기다렸는지는기억에 안난다. 난 당연히 붙을걸로 예상을
했다. 별로 떨지도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미달로 달리던 경쟁율이 마감이
지나서야 겨우 미달을 넘엇섰기 때문도 하지만 난 작년평균보다 무려 10점인
가를 높여서 냈기 때문이었다. 작년점수로만 따지만 전자공학과에도 갈수있
을정도 였다. 
발표날 오전에 한 10시쯤 일어나서 신문사에 전화를 했었다. 근데 신문사에서
왠 청천벽력? 내가 명단에 없다나? 그리고는 뚝 끊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때 어머니가 방을 닦고 계셨는데..
'엄마 나 떨어진것 같아...'
'그래 잘됐다. 이왕 그렇게 된거 재수해라'
꽈당...(이부분이 한대가 못해서가 아니라 어머니가 원래 그런데 별로 신경을
안쓰시는 분이라서... 솔직히 난 공부해라 소리를 어머니로 부터 들어본 기억
이 없다)
후에 다시 다른 신문사에 전화를 해보니 축하합니다. 합격하셨습니다. 그러
는것이었다. 그럼 그렇지...
그래도 기분낸다고 그때 처음으로 학교 대운동장에 있는 합격자 명단을 보러
학교등반에 나섰다. 처음 경사는 그래도 참을만 했는데, 윽! 왠 계단!
눈이 와서 미끄러운 계단을 108갠가를 올라가서 만난 또다른 급경사.. 하마터
면 미끄러질뻔 했다. 그리고 행당로를 지나 드디어 대운동장에 들어섰다.

이곳이 이제 내가 다녀야할 대학교구나..
그렇게 대학생활이 시작되었다. 한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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