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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UFSan ] in KIDS
글 쓴 이(By): riceworm (@~쌀벌레~*)
날 짜 (Date): 2002년 8월  8일 목요일 오후 03시 02분 27초
제 목(Title): 친절하려다 무안했던 이야기





간격도 그리 멀지 않게 최근 무안했던 기억이 세 건.




출근길 전철안.
사람은 많지 않았고, 나는 꾸벅꾸벅 졸다시피하며 회사로 행하고 있었다.
장애인, 노약자석에 앉았는데 
행여 누구라도 내앞에 서는 사람이 있으면 비켜줘야하지 않을까 싶어서
계속 눈치를 보며 졸고 있던 중

두 정거장쯤을 비몽사몽간에 건너뛰고 눈을 떠보니
내 앞에 서있는 젊은 오빠가 좀 힘들어보인다.

젊은 나이인데 배가 꽤 나왔고
어울리지 않는 큰 배낭을 양어깨에 걸쳐 무거워보이는데도 내려놓지도 않고
표정을 보니 땀도 삐질삐질 흘리고...
아무래도 몸이 불편한 장애인인것 같았다.

앉아서 순간 고민에 빠진다.
'젊은 사람인데 내가 자리 양보한다고 일어선다면,
 그런데 혹시 장애인 아니고 그냥 좀 통통하고 어리벙해 보이는 사람인거라면
 내 양보가 얼마나 그 사람을 당황스럽게 할 것인가...
 그런데 또 반대로 진짜 장애인인데..  서서 가는게 힘들어 죽겠는데 내가 양보도 않고 계속 
앉아서 간다면
 그 얼마나 괴로운 상항인가'

일어날까 말까
그냥 자는척해버릴까 양보할까
내가 실수해서 무안주면 어떡하지
멀쩡한 사람을 장애인 취급했다면 기분상하겠지
다리가 아픈가보다. 전철 손잡이에 매달리다시피하고 한쪽 다리에만 중심을 두어서 비틀린 
자세로 서있는게 영락없는 지체장애인인데..

나에게는 너무도 괴로운 시간이 한참을 흐르고
결국 이렇게 앉아있는게 내가 더 불편해! 하고 결론을 내리고는
그 사람이 무안하지 않도록 조용히 스스르 일어나 자리를 내주었다. 그쪽으로 지긋한 눈빛을 
보내며..

아뿔싸!
내가 일어난 그 자리에 어느새 뒤에있었던 아가씨가 턱! 앉고는 책에 눈을 파묻어버린다.
그렇다고 내가 나서서 "여기 이 분이 불편해보여서 양보한건데요"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 이후부터는 나와 그 아가씨와의 눈싸움.
입으로 말 할 수는 없고 그 아가씨와 그 불편한 오빠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어떻게든 뜻을 
전해보려고 했고
뭔가 좀 이상한 낌새를 눈치차렸긴했지만 이왕 앉은거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 아가씨는 계속 
내 눈빛을 피한다.


그 젊은 오빠는..
일어서서 보아도 역시 불편해보인다.  아직까지도 그가 정말 장애인이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 이날 뼈저리게 느낀 점. 살 빼야겠다. 
  살이 찌더라도 사람들을 헷갈리게할 정도로 찌지는 말아야겠다.




또 전철 안.
사람도 많지 않은 전철인데 어느틈엔가 난 또 노약자석에 앉아서 가고 있었다.
읽고있던 종이 사이로 구석에 서 있는 여자의 배가 눈에 들어왔다.
원피스를 입고있던 그 여자.

'임산부일거야. 서서가기 얼마나 힘들까...'
지금 임신중인 내 친구가 생각나서  얼른 일어나 양보하려다가 주춤했다.
'만약에 저 아가씨가 임신한게 아니라면?'
그또한 얼마나 큰 실수인가

자세히 살펴보아도 긴가민가..

Bust Line이 위로 많이 올라간 원피스. 보통 임산부 아니면 저런 스타일 잘 안입지...
아냐.. 하체가 길어보이려고 멋으로 입었을 수도있어
친구중에도 유난히 아랫배가 많이 나와서 보는이마다 몇개월이냐고 물어봐서 미치겠다던게 
생각났다.

이번에도 수분여의 괴로운 고민끝에 
티안나게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문가에 섰다.
그러고 그 여인이 내 자리에 앉는지 살폈다.
체형으로 보면 얼씨구나 하고 가서 앉아야하는데
그 여인, 그냥 갸우뚱하고는 그대로 그 자리에 서서 신문을 읽는다.

뭐야...  씩씩하고 건강한 엄마인가? 왜 안앉지? 취향도 참 독특하네..힘들텐데..

내가 대놓고 자리 내어줬더라면 진짜 기분상하게할 뻔 했다.
이 여인도 진짜 임산부였는지 무늬만 임산부인지는 아직까지도 확인할 길이 없다.
나혼자 괴롭고 당황스런 순간이었다.


- 이날 뼈저리게 느낀 점. 살 빼야겠다. 
  살이 찌더라도 아랫배는 꼭 빼야겠다.
  아니더라도 원피스는 입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덧붙여서 이젠 자리가 남아도 노약자석에는 앉지 않도록 해야겠다.




이번엔 비오는 날. 건널목에서...
비가 줄창내린 요며칠. 그 비가 시작되던 즈음.
아침에 우산을 챙겨오지 못한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전철역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건널목이 있는데 그때 비가 꽤 내렸다.
우산없이 서있는 사람이 몇몇 눈에 띈다.

'어차피 우산 씌워준다고 닳는것도 아닌데...' 생각하면서 무심결에 내 앞에있던 아저씨를 
씌워주면서 "어느쪽으로 가시는데요?" 했다.
그 아저씨, 그런 나를 보더니 조금 놀란 눈치.
'나도 예전에 우산없을 땐 누군가가 같은 방향인 친절한 사람이 씌워줬었지...'

앗!
3초 후에 나는 그 아저씨가 왜 놀란 기색이었는지 눈치채고 말았다.
"고맙습니다. 요즘엔 이런거 잘 안씌워줄려고하는데 말이죠. 허허허"하는 아저씨 머리를 
안젖게 한답시고 열심히 들고 서있는데
우리가 서있는 바로 그 자리에만 비가 안내린다.
건널목이 위치한 곳이 전철이 지나가는 그 길 아래라서 비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결국 비도 안맞는 처마아래에서 생색만 낸 꼴.
게다가 우리집은 코앞인데 그 아저씨는 훨씬 더 멀리가는지라
내가 우산을 빌려준다고까지 한다면 너무 오바겠고...  쩝...

내가 우산 씌워준 상대가 여자였다면 덜 무안했을지도 모르는데
어쩜 그 아저씨, 혼자 생각에 내가 그에게 관심있었나 생각할지도 모르지.  후후후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며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 이날 뼈저리게 느낀 점. 
  친절도 기술이다.
  섣불리 친절하려고 하지 말자.
  분위기 파악 좀 하고 살자.




      v v
    ..@"@..            나비가 되고픈 푸른 애벌레의 꿈이여
     ((~))
      (  )                        하늘에 닿고픈 미물의 욕심이여......
     (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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