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UFSan ] in KIDS 글 쓴 이(By): riceworm (@~쌀벌레~*) 날 짜 (Date): 2002년 3월 26일 화요일 오후 02시 42분 11초 제 목(Title): TV추천 - 3.31 <이제는 말할 수 있다> 1. 프로그램 명 : MBC 특별기획 <이제는 말할 수 있다> "8.18 판문점 도끼 사건" 2. 프로그램형식 : ENG 형식 (55分物) 3. 방 송 일 시 : 2002년 3월 31일 (일) 23시 25분 ~ 24시 20분 4. 기 획 의 도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북한군 경비병에 의해 저질러진 미군 장교 살해사건은 한반 도를 전쟁 일보 직전까지 몰고 간 중대 사태였다. 당시 포드 행정부는 이러한 북한의 도발을 응징하기 위하 여 엄청난 무력시위를 동반한 '미루나무 절단 작전'을 감행하였고 결국 김일성이 '유감 및 재발방지'라는 내용을 담은 메시지를 유엔군에 보냄으로써 사태는 일단락 되었다. 김일성이 '유감'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한국전쟁 이후 처음이었다. 데프콘 3가 발령되는 위기 상황 역시 한국전쟁 이후 처음이었으며, 미루나무 절 단 작전 때에는 전쟁 직전인 데프콘2까지 올라갔다. 공동경비구역은 이 사건 때문에 유엔군과 북한군이 분 할 관리하여 오늘까지 이르게 되었다. 사건이 지난 지 이미 26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북한 도발의 배경, 미국의 대응 작전의 내용, 그리고 작전 에 참여했던 한국군 특전사의 활동 내용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일촉즉발까지 이르렀던 전쟁 위기의 실상 역시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우선 8.18 당일 현장에 있었던 한국군 장교와 병사의 증언을 통해 구체적인 사건의 전개 과정을 소개하 고 이에 대한 유엔군의 대처 과정을 시간대 별로 정리한다. 아울러 스틸웰 유엔군 사령관 휘하의 작전 참모 들의 증언과 당시 백악관에서 가동되고 있었던 키신저의 워싱턴 특별 대책반에 참여했던 인사들의 증언을 통해 미국의 대처방안을 알아보고 '미루나무 절단 작전' 현장에 투입되었던 한국군 특전사 요원들의 생생 한 증언을 통해 당시의 위기의 본질을 조명하고자 한다. 5. 주 요 내 용 '악의 축' 증거인가? 8.18 판문점 도끼 사건 "그들이 악이란 내 생각은 이상할 것이 없다" 지난 2월 20일 비무장지대를 방문한 부시 대통령은 1976년에 발생한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에 사용된 도 끼가 북한 "평화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는 설명에 이렇게 답했다.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나무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UN군 소속 미군 장교 2명이 도끼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단 5분 여의 사건은 필름 기록과 함께 전 세계에 보도되었고, 한반도는 즉각 전 쟁 위기에 휩싸였다. 사건은 어떻게 일어나게 된 것일까? 사건이 기록된 사진 및 영상자료를 바탕으로 당시 사건을 함께 했던 한국인 장교와 병사들의 생생한 현장 증언을 통해 참혹했던 만행의 전말을 알아본다.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 - 개성 막사 포격 계획 미군 2명이 살해 된 사건에 미국은 분노했다. 미군은 즉시 대응책 마련에 들어갔고 대량의 무력시위를 동 반한 미루나무 절단 작전을 시행하기에 이른다. 전쟁 준비 태세 데프콘 3가 발령된 전쟁 위기의 상황! 한반도는 전례 없는 화약고 상태였다. 핵 탑재 가능 전투기 F-111,B-52가 미 본토에서 출동, 이외에도 항 모 미드웨이호가 한반도로 향하고 있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개성 막사를 포격하는 우발계획까지 세운 상태!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다각적인 인터뷰로 접근해 보았다. 워싱턴 특별 대책반 국가안보회의 글라이스틴, 합동참모부 할로웨이 제독의 증언으로 미 본토의 표정을 살 펴보고, 한반도의 미8군 참모장 싱글러브, JSA 경비대장 비에라 중령, 미 2사단장 브래디 등의 인터뷰를 통 해 당시 작전 수립 과정에서 그들이 생각한 사건의 본질을 알아본다. '미친개에겐 몽둥이가 필요하다' -1976.8.20 3사관학교 졸업 훈시 미군의 작전으로만 알려졌던 나무 베기 작전 - 한국군들의 역할은 어떤 것이었을까. 박정희 대통령은 3사관학교 졸업 훈시를 통해 북한의 만행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응징 의사를 표명했 다. 박 대통령은 즉각 태권도 유단자로 구성된 64명의 특전사 여단을 파견하도록 했다. 특전부대 외에도 1 사단 수색대가 작전에 참여했다. 박희도 특전여단장, 이희성 1군단장, 임복진 1사단 작전 참모의 증언으로 박 대통령이 생각한 보복 조치가 무엇인지, 한국군 파견의 의미를 알아본다. 작전명 폴 버니언 "미루나무를 잘라라!" 8월 21일 오전 7시 - 대규모 무력 시위와 함께 미루나무 절단 작전(작전명 폴 버니언 PAUL BUNYAN)이 실시 됐다. 북한의 어떤 움직임도 포착되지 않았고 작전은 45분만에 종결되었다. 한미 유대는 완벽했다? 언론은 일제히 강경 대응의 효과를 치하하며 '한미 유대는 완벽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미국은 작전 종결 후 특전사 관련 지휘관에 대한 등에 대한 징계를 요구했다. 긴장의 45분, 어떤 일 이 있었던 것인가? 당시 작전에 참여한 미군과 특전사, 1사단 수색대원들의 인터뷰를 통해 알려지지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는다. 숨막히는 일촉즉발의 전쟁위기 상황에서 그들이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 작전은 단순히 나무 베기에 불과했던 것일까. "도발하지도 말고 도발에 걸려들지도 말라!" - 탈북자 이영선 인터뷰 中 작전 종결 후 북한은 긴급히 수석대표회의를 요청, 김일성의 유감성명을 전달했다. 북한의 유감 표명은 한 국 전쟁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탈북자의 증언을 통해 사건 후 작전이 시행되기까지 북한의 움직임을 살 펴본다. 1976년 당시 국제 사회에 '주한 미군 철수'를 선전하던 북한에게 이 사건은 어떤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 북 한의 월간지 "조선녀성"은 2001년 5월호에서 53년 휴전 이후 3대 대미 대응 경고 사건의 하나로 8.18 판문 점 도끼사건을 꼽았었다. ---------- 눈가려지고 입막히고 했던 시대엔 감히 넘볼 수 없었던 방송주제들... 그 실제적인 고증을 통해서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시리즈는 자랑스럽게도 우리 외대 선배님이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작품이다. http://www.jungpd.co.kr 삼청교육대, 80년 광주, 일천황, 철거민, 북파공작원 등.... 다양한 주제를 시원스레 들쑤셔주는 이 프로그램을 친구들도 많이 봐주었으면 한다. 솔직히 나의 경우에는 일요일 이 시간쯤되면 너무나도 피곤해서 거의 반쯤 졸다시피하면서 보는데... 그래도 꼭 TV를 틀어놓는 이유는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들이 허접한 쇼프로그램등에 시청률에서 밀려서 없어지기나 하면 어쩔까하는 조바심에서라고 말할 수 있다. v v ..@"@.. 나비가 되고픈 푸른 애벌레의 꿈이여 ((~)) ( ) 하늘에 닿고픈 미물의 욕심이여...... ( 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