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UFSan ] in KIDS 글 쓴 이(By): riceworm (@~쌀벌레~*) 날 짜 (Date): 2000년 5월 28일 일요일 오전 01시 15분 29초 제 목(Title): 노영심의 이야기 피아노 #7 뭐에 그리 홀려 지내는지 요즘은 느끼고 나눌 감상이 있어도 글 한자 적을 새 없이 시간이 훌쩍훌쩍 지나가 버린다. 수첩의 메모를 보니 벌써 2주가 지났구나. 그 때의 짧지만 상쾌했던 기억에 잠시 쉬었다 가야지... 한달에 한 가지씩 나에게 선물을 주자는 의도에서 회사 동료 다섯 사람이 만든 문화 모임에서 이번 달 행사로는 '노영심의 이야기 피아노 #7'를 선택했다. 구파발에서 자전거를 타고 돌아온 뻐근한 몸으로 찾아간 곳은 성북동 주택가. 길상사라는 도심 한가운데의 큰 절 너른 마당이었다. 서울 안에 조계사말고 또 이렇게 큰 절이 있었던가.. 옛날에 대원각이라는 요정이었던 것을 최근 개조했다고 한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어도 모르는 구석이 참 많구나. 공연 시작 한시간 전에 도착해서는 절 안 이곳저곳을 거닐었다. 엄숙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그런지 경내에 사람이 꽤 많았는데도 말 그대로 '정숙'이다. 해가 지면서 약간 쌀쌀해지는 야외무대임을 배려하여 따끈하고 구수한 둥글레차가 준비되어 있다. 부처님오신 날에 해두었는지 너른 마당을 감싼 아름드리 나무들에는 연등이 색색으로 밝혀지고 무대 조명도 특별한 것 없이 주변의 나무와 불전 건물들을 은은하게 비춰주는 것이 전부이다. 사실 피아노 음악을 즐겨듣는 귀가 없던터라 노영심이라는 대중적인 피아니스트의 유명세로 이 공연을 보러왔다고 할 수 있는데, 전체적인 분위기라는 것이 글로 다 옮길 수 없을만큼 포근하고 신선해서 참 좋았다. 락 콘서트나 오케스트라 연주회 등에서는 느낄 수 없는 또다른 새로운 매력이.. 입장객 모두에게 책을 한권씩 선물해 주는데 평소 노영심과 알고 지내는 문인들이 한 편씩 모아준 '마음의 풍경'이라는 글이다. 이번 공연의 주제이기도 하다. 생각지 않던 선물을 받는 것은 정말이지 유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영심이라는 아가씨는 이런 사람들의 심리를 너무나 잘 아는 여우야 여우. 노영심의 피아노 연주는 말공해는 줄이고 자연 그대로, 마음의 풍경을 즐기라는 기획의도에 의해 짜여진 프로그램없이 곡목 소개도 일일이 하지 않고 진행이 되었다. 얘기에 의하면 어떤 곡은 예정된 것이고 또 어떤 것은 즉흥으로 연주하는 것이란다. 영화음악이나 동요를 편곡한 연주곡은 좀 알겠는데, 모르는 곡도 많았다. 우리 관객들이 너무 착한 학생들 수업받듯이 무대앞에 단정히 앉아 연주모습을 주목하고 경청하니까 노영심이 그러지 말란다. 의자를 옮겨 편한 곳에서 편한 자세와 마음으로 봐달라고.. 주변의 자연경관과 어울리며.. 공연에서의 관객의 매너라는 것이 점잖게 앉아 집중해서 보는것이라고 생각해왔었는데 오히려 그런 주문을 받으니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 마음편하게 먹고 피아노 연주는 귀로 들으며 '마음의 풍경' 책을 뒤적이기도 하고 은은한 불빛이 밝혀진 주변의 나무들을 둘러보기도 하고 둥글레 차의 구수한 향기와 흙냄새 저녁 공기의 찬 기운을 느껴보기도 하였다. 게스트로서 노래를 해준 권진원씨도 아주 멋졌다. 마이크 상태 불량으로 돌발사태가 있었지만 오히려 자연스러운 무대가 되었다. 잔잔한 피아노 연주 간간히 노영심이 짧은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면 저쪽 어딘가에서 소쩍새가 울었다. 뻐꾸기 시계소리도 아니고 지하철에서 틀어주는 녹음된 새소리도 아닌 진짜 소쩍새 우는 소리. 별천지에 와있는 느낌이다. 두 시간이 채 안되는 피아노 연주 공연이었는데 나에게는 일상을 돌아보고 오월의 감상을 한껏 재충전하는 값진 시간이었다. 누가 나에게 '이런 공연이 있는데 함께 가보지 않을래?' 제안해 주는 친구가 있었다면 반해버렸을거야. 그 친군 정말 멋진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며 선선한 골목길을 걸어내려왔다. 커피를 마시면 잠을 못자는 내 한심스런 증세도 이 날만큼은 나타나지 않았다. 너무도 편안한 마음으로 잘 잠들 수 있었다. 적어도 한 달치의 행복감은 채워진 듯하다. * 지금은 걸음마단계인 피아노, 열심히 연습해서 나도 내가 좋아하는 곡 하나쯤은 친구에게 선물로 들려줄 수 있도록 해야지 * v v ..@"@.. 나비가 되고픈 푸른 애벌레의 꿈이여 ((~)) ( ) 하늘에 닿고픈 미물의 욕심이여...... ( 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