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oodPlaces ] in KIDS 글 쓴 이(By): Papillon ( kaputt) 날 짜 (Date): 2007년 10월 25일 목요일 오후 09시 57분 13초 제 목(Title): 인사동, 아빠 어렸을 적에 야근을 하면 밥값이 최고 5000원 나오니까 오늘 너랑 둘이 인사동 골목을 뒤지고 다녔잖아. 너랑 나랑 둘이 만 원이니까 정 안되면 파전이나 하나 먹자는 거였지. 여차하면 몇 천 원 보태면 되는 거고. 가게 앞으로 철길이 나있고 입구는 몹시 비좁았지. 거기 70년대에나 쓰던 물건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었고 안으로 들어가니 속은 생각보다 널직하더군. 넌 메뉴판에서 6000원짜리 닭갈비볶음밥을 찾아냈고 그래, 그냥 여기서 먹자, 우리는 의자에 앉았어. 나 실은 예스러운 물건들 굉장히 좋아해. 그냥 깔깔 웃음부터 나오지. 넌 나보다 몇 살 어려서 그런지 그 뭐냐, 팥빙수 얼음 가는 기계를 모르데? 그거 오라지게 흔했던 건데. 응,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생맥주 둘을 시켰어. 요 며칠 맥주를 좀 과하게 마시는 바람에- 내가 아침에 말했었지? 출근길에 토했었다고. 을지로역에서 잠시 내려 헛구역질을 빽빽 했던 거지, 그리고 당분간 술에 입을 대면 내가 개새끼라고 생각했던 거고. 거울을 보니 눈자위에 핏발이 섰더라. 귀신 같았어, 술독에서 막 도망쳐 나온 미친 귀신. 그런데 오늘 또 마신 거야. 인사동, '아빠 어릴 적에' 거기에서. 술 끊는 것보다 어려운 게 있을까? 가랑비에 젖는 옷처럼 내 몸은 이제 하나의 거대한 술독이 되어, 어디가 나이고 어디가 술인지 분간도 안되는데 시월은 나를 비껴가고 있고 나는 ... 이제 이쯤에서 고은의 시를 한 수 읊는다. 진지하게, 엄숙하게, 봄날은 간다 이렇게 다 주어버려라 꽃들 지고 있다 이렇게 다 놓아버려라 저녁 바다 썰물 아무도 붙들지 않는다 바다 층층 해파리 쥐치 감성돔 멍게 우럭 광어 농어 새꼬시 외할머니 부채 같은 가자미 그 아래층 말미잘의 삶이 있다 삶이란 누누이 어느 죽음의 다음이라고 말할 나위도 없이 지상에 더 많은 죄 지어야겠다 봄날은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