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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 Liszt (장 진 웅)
Date   : Sun Nov 15 11:50:29 1992
Subject: 소나기(15년 후) Part 1




                        소         나          기



                               그 15년 후


                                                           김 현 국 지음
                                                           장 진 웅 편집


청년은 개울가에서 갓 스무살이 되었음직한 소녀를 보자 곧 건너마을 박초시네
딸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서울서는 이런 개울물을 보지 못하기나 한듯이
벌써 며칠째 청년이 읍내에서 퇴근길에 저전거를 타고 이 개울가에 도착하면
소녀는 이 개울가에서 물장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소녀는 물장난을 치는게 아니라 민물고기를 잡아 회를
쳐서 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이었다.

(음... 잘도 처먹는군. 이러다간 개울가의 고기가 씨가 마르겠군...)

어제까지는 개울 기슭에서 하더니 오늘은 징검다리 한가운데서 하고 있었다.
그곳이 바위가 많아 고기가 많은 모양이었다.

청년은 개울가 기슭에 앉아버렸다. 소녀가 비키기를 기다리자는 것이다.

청년의 기억은 15년 전 어린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가 국민학교에 다닐때 지금의 이 개울가에서 그 또래의 소녀를 만났었다.
그때 그 소녀가 물장난을 치고 있던 이 징검다리를 부끄러움이 많은 그 소년이
건너지 못하고 건너편 개울가에서 한숨만 푹푹 쉬고 있을때 하얗고 조그만
조약돌을 그에게 던지며 ``이 바보''라고 놀렸다. 그리고 긴 머리카락을
너풀거리며 저녁 하늘이 불그스레한 노을을 등지며 개울가를 달려 떠났다.

작고 소중했던 사랑은 거기부터였다.

유년의 소중한 사랑이야기는 그 소녀가 소나기를 맞은 후 병이 악화되어
죽는 것으로 끝났고 슬픔을 이기지 못한 소년은 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올라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니고 방위병으로 군복무까지
마쳤다. 졸업후에 바로 은행에 입사시험을 보아서 합격을 하였다. 당당하게
1차 합격을 한 그에게 2차 면접에서 면접관은 `합격하면 어디에서 근무하고
싶은가?'라고 물었을때 그는 거침없이 `유년시절 소중한 추억이 있는 고향
읍내의 은행에서 근무하고 싶습니다.'라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고향을 떠난지 15년이 지나서야 그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쓸쓸히
선산을 지키고 있는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가 돌아왔을때 그의 고향은 워낙 외지라서 그런지 변화가 없이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가 떠날때 눈물을 흘리고 갔던 개울가의
징검다리조차 변함이 없었다. 그는 고향을 떠나기 전이나 돌아온
후에도 어릴적의 순수함과 그때 그 소나기를 맞았던 조그만 소녀와의 사랑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었다.

건너편에서 그가 자전거를 세워둔 채 그녀가 징검다리를 비켜주기를 기다리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고기를 잡아 회를 쳐 먹는데만 열중하고 있었다.
해는 벌써 서산너머 숨어버렸다.

이윽고 고기를 다 잡아먹었는지 트림을 끄윽... 하고 걸쭉하게 한 소녀가
물속에서 무엇을 하나 꺼냈다.

주먹만한 하얀 조약돌이었다.

그가 털썩 주저 앉아 있는 쪽으로 소녀가 돌아섰다. 입가에는 예쁘게 고추장이
남아 있었다. 소녀의 얼굴은 희고 맑았다. 긴머리카락이 개울물과 조화되어
물결치듯이 보였다.

``바보.''

소녀가 그에게 하얀 조약돌을 던졌다.

``딱! 아이쿠!''

슬픈 사랑이야기는 이렇게 시작 되려나......

15년 전에 작은 들국화 같았던 그 소녀가 던진 조약돌은 아주 작은 동전만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날아온 돌은 주먹만하고 아주 단단한 것이었다.
소녀가 바람에 지나가는 듯한 웃음을 띄우며 던진 조약돌이 청년의 이마에
정통으로 명중했다. 청년은 이마에 약간 구멍이 나면서 뒤로 자빠졌다.

(으악! 아파라.. 아니 이거 미친년 아냐? 왜 돌을 던지는거야?)

머리에서 피가 흐르자 화가 난 청년이 그녀가 던진 돌보다 열배는 더 큰
바위를 들어 그녀에게 던져버렸다.

``너도 맞아봐랏!!!''

바위에 직통으로 맞은 그녀는 기절을 해서 쭉 뻗어버렸다.

저녁 하늘 기울어진 햇빛에 건너편에 창백한 하얀 달이 떠올랐다. 기절한
소녀를 밟고 넘은 청년은 자전거를 등에 메고 징검다리를 건너서 신나게
자전거를 몰고 존덴버의 ``Somedays Diamond! Somedays Stone!''을 부르면서
체인이 덜커덩거리는 자전거를 시속 100킬로로 몰아서 집으로 왔다.
혹시 소녀가 집채만한 바위를 들고 쫓아올지 몰라 겁이 났었다. 집에
돌아와서 보니 그 소녀가 던진 짱돌이 주머니에 들어있었다.

다음날에 퇴근길에 보니 소녀는 개울가에 없었다.

다음날에도 없었고 그 다음날에도 없었다.

``음, 역시 돌은 인간을 침묵시키는군!!!''

어느날부터인가 청년은 주머니속에 불룩 나온 하얀 짱돌을 문지르는 버릇이
생겼다. 소녀가 안보이기 시작한지 사흘째 되는 날에도 그가 읍내 은행에서
퇴근을 하고 20리길을 자전거를 타고 그 개울가에 도착했을 때도 역시 없었다.

청년은 자전거를 세워 두고 소녀가 앉아 있던 자리에 앉아 소녀가 하던대로
물을 움키면서 고기를 잡아보았다. 잘 안되었다. 약은 고기들은 어느새
손바닥에서 빠져나가 버린다. 다시 해보았다. 역시 고기들은 비늘만 반짝이며
그의 손에 잡혀주지를 않는다.

그때 징검다리 끝에서 하얀 광목 덩어리가 건너오는 것이 보였다.

청년이 움찔 놀라서 바라보았을때 그것은 광목 덩어리가 아니라 순백색의
광목천으로 머리를 싸맨 소녀였다. 마치 아라비아 사람들의 터번 같이 머리를
칭칭 감고 있었다. 그때 맞은 상처인 것 같았다.

(내가 하던 것을 숨어서 엿보고 있었구나.)

청년은 부끄러움에 벌떡 일어나서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스치는 귓바람
사이로 소녀가 ``바보! 바보!'' 하고 놀리는 것 같았다. 정신없이 달렸다.
소녀의 놀리는 소리가 아직 따라오는 것 같았다.

그런데 재수가 없으려는지 너무나 속력을 내던 자전거가 중심을 잃는 바람에
길옆으로 나동그라지면서 김씨 아저씨네 돼지우리를 들이받고 말았다.
청년은 돼지우리에 나동그라지면서 바로 아래 구덩이에 있는 늪같이 걸쭉한
돼지화장실로 머리부터 풍덩 박혀버렸다. 한낮의 뜨거운 햇볕에 알맞게
데워졌는지 메탄가스로 인하여 돼지화장실의 진흙뻘 같은 것이 부글 부글
거품이 나면서 끓고 있었다.

(음, 근래에 겪어 보지 못한 개망신이군...)

그가 돼지 화장실을 나와서 허둥지둥 떨어내고 있을때 어느새 왔는지 소녀가
아라비아사람 터번처럼 생긴 광목을 흔들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고거 쌤통.''

소녀가 빙긋이 웃으면서 여유있게 말을 했다.

청년은 상대를 하지 않으려고 일어나 자전거를 일으켜 세웠다. 자전거는
형편없이 망가져 있었다. 망가진 자전거를 들쳐메고 돼지우리를 떠나려는
청년에게 소녀는 예의 그 환한 웃음을 지으며 까만 종이에 싼 것을 그에게
내밀었다.

``??????''

``다이너마이트예요. 정선탄광에서 하나 훔쳐 왔어요. 우리 이거 가지고
개울가로 메기나 잡으러 가요, 한방이면 매운탕 열그릇은 얼른 나오지요.''

청년은 얼굴을 들어 소녀를 보았다.

그 맑은 웃음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채 입가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다이너마이트를 아무 말 없이 뿌리친 청년은 부서진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돌아갔다. 자전거를 읍내 수리점에 맡기고 나서 찾을 때까지 그는 버스도
다니지 않는 20리 길을 걸어서 다녔다. 퇴근후 부지런히 걸어도 밤중에나
집에 도착하기 때문에 그는 며칠째 소녀를 보지 못하였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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