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w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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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wha ] in KIDS
글 쓴 이(By): july ()
날 짜 (Date): 1994년08월24일(수) 21시23분33초 KDT
제 목(Title): 아침에...


열시 수업에 들어가려는 듯 바쁘게 걸어가는 애들 사이에 끼어 교문쪽으로

내려가고 있는데 웬 젊은 남자 아해(?)가 전단을 나눠준다..

"연극 보러 오세요!"

음..보아하니 또 연대의대 연극반인가 보다..

어제 아침에도 대여섯명이 한꺼번에 등교길을 막아서며 광고를 했었는데..

지난 봄에는 신문지로 고깔을 만들어 쓰고 광고를 하더니만..이번에는

연극포스터로 고깔을 만들어 쓰고 아예 옷(?)까지 만들어입고 와서는

여학생들을 불러모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연대는 아직 개강도 안 했을텐데...참 열심이다....

연대...사람들이 흔히 생각하기를 가까운 곳에 있는 학교, 같이 잘 나가는

학교라고들 하는데..난 대학 4년동안 한번도 연대생과 사귀어 본 적이 없다..

심지어는 연대에 들어가본 적 조차 없으니...축제구경은 말할 것도 없고...



일학년, 처음 대학에 들어와서 3월달에..아무것도 모르는 날달걀(?)일때

연대 건축공학과와 미팅을 한 적이 있다..그것이 우리 과의 첫번째 과팅이었다..

내 파트너는 재수를 한 사람이어서 그런지 비교적 말발이 세기는 했지만

별로 매력을 느낄만한 상대는 아니었고..한두번 더 만나다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런데.....

어느날 내 앞으로 괴학보(?)가 하나 배달되어 온 것이다..

연대 건축과 ???라는 사람이 보낸 거였다..

응? 처음 듣는 이름인데....도대체 누구지?

학보 사이에 끼어보낸 편지를 보니...음냐..세상나서 처음으로 나한테 첫눈에

반했다는 사람이 보낸 것이다...

근데 난 그 사람이 어떻게 생긴 사람이었는지조차 전혀 기억이 안 나고...

다만 그날 미팅에 나온 남자들중에 킹카는 하나도 없었다는 것 밖에는...;)

그리고 아마도 기억을 더듬어 보건대 내 파트너 옆에 앉아 있었던...유난히

작고 마르고 수줍어 보이던 한 남자가 아니었나 싶다는 것 밖에는...

내가 답장을 안 하자 일주일마다 학보가 날아들었고..(물론 편지를 동봉해서)

급기야는 학보 겉장에 자기 이름을 밝히기에 이르렀다!!

으아...드디어는 과 내에 줄라이가 연대 누구랑 어쩐대더라~하는 헛소문까지

돌기 시작했고...(아마도 상대방은 그것을 노린 듯...쩝...)

그래도 반응이 없자 상대방은 드디어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장문의 편지와 함께...모월 모일 몇 시에 연세대 백주년 기념관 앞에서 

기다리겠다는...내가 올때까지 기다리겠다고..그렇게 쓴 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난..나가지 않았다.....지금은 기억이 희미해졌지만 아마도 그 사람이 날

기다리겠다는 그날 레포트라든지..아니면 퀴즈라던지..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다...그렇지만...내가 나가지 않은 것은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60년대에 대학을 다니셨고..불문학을 하셨으며..당시로는 눈에 띄게 멋장이

여서 엄청나게 인기가 있으셨다는 울엄마한테 들은 얘기밖에는 미팅이라던지

남자친구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나에게...솔직이 그 남자는 내가 꿈 속에서

그리던 왕자님의 모습은 아니었던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고...사회생활을 하면서..점점 외모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그 당시엔 그랬다...너무 어렸고...

또 그 사람은 너무 적극적이어서 겁이 날 정도고..그랬다...

가끔..그 때 일을 생각해 본다...

정말 그 사람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까...어떻게 딱 한번 그것도 짧은 동안

밖에 보지 않은 여자에게 그렇게 반할 수 있나..어쩌면 그도 기억이 희미한

내 모습을 상상해 가면서 머리속으로 자기만의 공주님을 그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그리고...어쩌면은 눈부시게 푸른 봄날..삼삼오오 무리지어 웃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저녁 늦게까지 나를 기다렸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생각하면

참 내가 못할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헛된 희망에 들뜨게 했다가 나중에 더 큰 절망에 빠지게 하는 것보다는

나았다...고 나 스스로를 위로하긴 하지만....

그리고...세상이란 참으로 공평하게도..누구에게나 비슷비슷한 상처를 주는

것 같기도 하고...난 바로 그 얼마 후 '마리포사의 추억'을 만났으니까....




며칠전 밤에 톡을 하는데 상대가 갑자기 다음날 만나자고 한다...

사실, 교수님이 내주신 일을 급히 해야 하는데 그동안 쭉 미뤄두고 있어서

그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일이 있다고 하면서 우물쭈물하는 나에게 그 사람이 갑자기 '보고 싶다'고

그러는 것이다....

어쩌면 그 사람은 장난으로 한 말이었는지도 모르지만...후후....나에게는

그 말이 몇 년만에야 들어보는 그리운 말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그 말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나에게 결정적인 것은 바로 그 다음 말이었다..

일방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는 '올때까지 기다리겠다'.

순간, 나는 그 옛날의 그 사람이 생각나면서...가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그리고는 맥없이 나가겠다고 허락을 하고야 말았다...

(부디 이걸 악용(이용?;)하는 일이 없기를.......)

일때문에 정말 점심만 먹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서..내가 속으로는 얼마나 

미안해 했는지 그는 알고 있을지...

가을을 타는걸까? 자꾸만 옛날 일이 생각난다...



창밖을 내다보니 하늘은 푸르르고...매미 소리는 시끄러운데....



시작 시간이 되었나 보다..교수님께서 들어오신다...

오늘도 하루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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