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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 psyche (임기용)
Date   : Tue Dec 29 12:11:53 1992
Subject: 자기만의 방을 보고

        12/12(토) EBS 18:50 예술의 광장<자기만의 방>을 보고

        비록 TV로 본 연극이었지만 가슴과 뇌리에 박힌 감동은 결국촉발된 
느낌 하나를 표출하기 위해 나의 손가락을 키보드로 인도하였다. 요즘 바쁘
다는 핑게로 kids에 포스팅을 거의 않고 있지만, 그냥 지나치면 나의  대뇌
피질과 심장이 너무나 답답해 할 것같아 바쁜 시간을 쪼개본다.

        신문에 난 기사 - Cinema BB의 '자기만의 방 소개' 참고 - 까지 오
려 다니면서 꼭 볼려고 마음 먹었던 연극이었는 데 번번히 실패하고 결국은 
공연이 끝나버려 꽤나 아쉬워하고 있던 차에 우연히 TV를 통해 볼 수  있는 
행운을 갖게 되었다. 가끔은 토요일 오후 일찍 집에 들어와 TV와 함께 지내
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문제에 대해 쓴 6개의 연작 에세이를 묶은 강
연집(1928년)을 각색한 이 연극은 내용면에서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 - 드라
마 보다도 더 애절한 실제 이야기들 - 을 엮은 것이다. 비록 원작이 여성의 
문제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제기하기는 하지만 이 연극에 삽입된  실화들
이 아니었더라면 결코 나의 가슴에 이렇게 큰 감동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각색을 맡은 분들(여성문화예술기획 관계자)께 먼저  박수
를 보낸다. 그리고 이 연극이 진정 가슴과 머리로 느끼는 연극이게 해준 결
정적인 역활을 한 배우 이영란씨에게 마음으로 부터의 박수를 보낸다. 가슴
을 치며 통곡하고 머리를 쥐어 뜯어며 비통해 해도 모자랄 그 한스런  대사
를 어쩜 그리도 결연하고 절제된 감정으로 읊으댈 수 있는지....  감탄스러
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제 이 연극에 대한 소감을 말해 보기로 하자. 먼저 단적인  소감 
한 마디를 미리 말 한다면, '어쩜 내가 여성문제를 주제로  쓰고  싶어하던 
바로 그런 연극'이었나 하는 것이다. 나에겐 늘 품고 있는 여성에 대한  한 
가지 불만이 있다. 다름아닌 '왜 여성은 남성들의 성차별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이 뚱단지 같은 불만의 근원을 밝히기 전에 먼저  이
야기 할게 좀 있다. 대부분의 경우 가해자는,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간
에, 자신이 남에게 얼마나 피해를 주고 있는가 혹은 남이 자기로 인해 얼마
나 괴로워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잘 모르는 경향이 있다. 혹시 안다  하더
라도 피해 당사자가 겪는 고통만큼 이해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따라서 
피해자는 반드시 스스로 자신의 불이익에 대해 항거해야 하며 자신의  권익
을 주장해야 한다. 자신뿐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서.... 내가 여성  스스로
의 자기 권익 주장의 부족함에 분노를 하는 것은 그들의  침묵이  그들만의 
불행이 아니라 나의 불행, 아니 우리 모두의 불행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나
의 이 말은 결코 궤변이거나 여성 연민적 발언이 아니다. 나는 결코 여성을 
찬미하지도 연민하지도 않는다. 다만 내 삶의 영원한 친구로  생각할  뿐이
다. 여성들의 차별과 소외는 곧 지구 위에 있는 인간의 반이 차별받고 소외
됨을 의미하며 그러한 차별과 소외로 인한 불행이 존재하는 한  남성들  역
시 결코 불행으로 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자기 
실현의 기회 상실 혹은 제약은 곧 우리 인류의 창조적 행위의 기회  상실이
요 공정한 경쟁에 대한 부당함이다. 더군다나 삶이란 우리 모두가 함께  만
들고 누리는 것이지, 누군가는 누리고 누군가는 희생하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한 형태의 삶은 결코 우리들에게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행복
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발생하는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그 뒷면에 여성 차별이라는 씨앗을 품고 있는 지 눈 밝은 사람은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문제는 무엇인가. 법보다도 더 견고히 우리  사
회와 우리 의식에 자리잡고 있는 남성우월의식, 뒤집어 말하면  여성열등의
식 - 이미 오랜 세월을 통해 사회 곳곳에 배여있는 이러한 편견과 고정관념
의 타파와 교정을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자 하는 것이 내가 이 글을 이화 보드에 포스팅 하는 이유이다. 우리  나라
의 거출한 여성 운동가를 선배로 둔 '이화인' 여러분의 좋은 의견을 기대해 
본다. 특히 저 같은 남성이 해야 할 일에 대해....

        끝으로 연극 중에 나오는 몇 가지 대사를 나열하는 것으로 이 글을 
끝맺을까한다. 기억에 의존하기 때문에 원문 그대로는 아닐지 모르지만  의
미는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만의 방, 나만의 돈. 아니 그런게 뭐가 필요있어. 내가 남편 용돈 줘, 
출근.등교 시키고 나면 다 내 방인 데...." 
  "여성은 수치스러울 정도로 스스로(의 권익)에대해 무지하다" 
  "우리 모두에게는 남성적인 힘과 여성적인 힘이 있습니다. 남성은 여성적
인 면과 여성은 남성적인 면과의 교류가 필요합니다." 
  "아버지에게 여자가 생긴 후 어머니에게 매질이 시작되었습니다. 왜 맞고
도 도망가지 않는거야. 나는 어머니를 경멸했습니다. 바보,천치,쪼다. 어머
니가 장롱 밑에 몰래 조금씩 모아두었던 돈이 아버지에게 들키고 나서야 나
는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 컴에 영혼을 담고 싶은 psyche ^_* ----------

        PS: 미처 못 본 그러나 꼭 보고파하는 사람들의 요청에 의해  비원
옆 '공간 사랑'에서 12월 31일까지 재공연을 한답니다. 꼭 보세요.  가능하
면 남자친구와 함께. 그이의 여성에 대한 시각을 점검할 수 있는 좋은 기회
이기도 하고.... 그러나 무엇보다도, 어쩌면 당신 자신도 깨닫지 못하고 있
을 여성문제에 대한 의식의 각성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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