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w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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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wha ] in KIDS
글 쓴 이(By): landau ()
날 짜 (Date): 1994년06월22일(수) 22시31분02초 KDT
제 목(Title): 이대생과의 재수 없는 (?) 미팅..



"너네 또 미팅하러 가는 구나?  :>"

으윽... 저 인간들을 왜 하필이면 여기서 만난단 말이냐...재수없게스리...

때는 바야흐로  1987년 4월 2 일...(만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막 대학에 입학하고 한 달이 지난 내가 넘치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서 어쩔 줄 모르던 무렵이었다. 

그 때 우리 고등학교 동기 다섯은 이대 앞으로 단체 미팅을 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우연히도 바로 그 전 주 토요일에 함께 미팅한 팀 5명이 그대로 뭉쳐져 있었다.
그 전 주에 했던 상대팀은 이대 미대의 모 고등학교 동기생 들이었는데 솔직히
말해서 속된 말로 "미팅에 킹카 없다."는 말을 적나라하게 몸으로(?) 증명해
주는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우리 다섯과 여학생 다섯은 그냥 그럭저럭 놀다가
빠이빠이 하고 말았는데, 그 다음 주중에 주선자를 통해서 엉뚱한 제안이 들어왔다. 
5+5=10 으로 등산을 가자나? 흠...이건 보통 그 여학생들 중 누구 하나가
파트너가 무지 맘에 드는데 우리 쪽의 누구인지 모를 남자 파트너는 (물론 우리
끼리 누구라고 대충 짐작은 했지만...) 도무지 아프터 신청을 하지 않을때...
여자 쪽에서 먼저 자존심 상하게 만나잘 수는 없고... 이럴 때 친구들이 살신성인
하는 자세로 도와주려는 것이다. 즉, 떼거리로 다시들 만나서 문제의 두 
사람이재회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지. 하지만 이 제안은 우리 다섯이 투표한 결과
4:1 로 부결되고 말았다.헐헐...사실 당사자 말고 누가 이런 일에 좋다고 
찬성하겠어?   :>

그 때 우리가 댄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 곧 시험이야, 바뻐!!"
(4월달에 웬 시험? 그것도 일학년이...)

그리고 그 주 토요일에 우리 다섯은 또다른 미팅을 하러 신나게 이대 앞으로 향했던 
것이다. 아직은 미팅에 절망하지 않은 새내기의 부푼 기대감을 안고 말이다.
그런데.. 지하철을 타고 이대 입구역 ...아니참 이대역에서 막 내리는데...

으아악~~~ 전동차의 문이 열리는 순간 플랫폼에는 지난 주에 우리랑 미팅했던 
이대생 5명이 고대로 모여서 서 있는 것 아닌가 !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열차문이 열렸는데도 우리는 내릴 생각을 못했고 이대생들도
놀라서 우릴 뻔히 쳐다보고 있었다. ....

몇 초 지나서 정신을 수습한 우리팀의 대장이 애들을 끌고 내렸고 이대생들은 
우리랑  엇갈려서 지하철을 탔는데 그 때 그 중 한 여학생이 우리를 비웃으며
던진 말이다.

"너네 또 미팅하러 가는 구나?"

그리고는 그 여학생들의 까르르 하는 웃음을 남겨두고 지하철은 떠나 버렸다.
으아...쪽팔리고 재수 없어. 우째 이런 일이 ....? 이 넓고 넓은 이대역에서
그 수 많은 시간 속에 하필이면 이때 쟤네들을 만난단 말이냐...음냐...
완전히 맛이 간 우리 다섯은 시뻘개진 얼굴로 천천히 이대 역을 올라 갔다.
그 유명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말이다.

그러면서 우리 다섯은 서로 다음과 같은 결론 에 전격적으로 동의했다.

"싹수를 보니 오늘 미팅은 글렀다.  :<  "

이렇게 재수 없는 일이 미팅 전에 일어 났으니 용꿈이나 돼지 꿈을 꾸고
나가도 성공을 보장 못한다는 미팅에서 어찌 잘 되기를 바라겠는가? 
우리 다섯은 미리 기대감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쩝쩝...

잠시 뒤에 우리는 그 유명한 이대 앞의 "장미빛 인생"으로 들어 섰다.
(여기는 아마 아직도 있지요? 추억어린 그 곳...) 그 미팅은 우리 다섯만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고교 동문회와 이대 D 여고 동문회 차원에서
20 명이나 출전(?) 하는 대규모 였다. 한꺼번에 움직이기가 너무 커서
다섯씩 나누어서 이대 앞까지 온 것이었다.

10명씩 나누어서 얼굴을 마주 대고 앉았는데..솔직히 물(?)이 어땠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느 한 여학생이 단번에 눈에 들어와서 다른 
사람을 쳐다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_^  나는 오늘 날까지 이런 경험을
딱 두 번 했는데... 아무리 보아도 미인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한 눈에 쏙 
들어오는 참한 여자를 보고 넋을 잃어 버리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래서
나는 여성에게 찬사를 보낼 때 참하다는 표현을 최고로 쓴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농담이 돌던 시절이었다. 미팅 나가서 저 여자다 하면
절대로 자신의 파트너가 되지 않고  저여자 만 안 걸리면 다 좋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그 여자가 나의 파트너가 된다는..... (아마 그래서 다음해 6공시절부터는 
미팅에서 파트너를 정하는 관습이 사라졌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아까의
재수없는 (?) 사건도 있었으니 내가 그 이대생에게 한 눈에 반했어도 그 아이가
내 파트너가 되기를 기대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포기....:<

우선 파트너를 정하기 위해 우리는 번호를 골랐다. 내가 얼이 빠진 채로 계속
그 참한 이대생의 얼굴을 쳐다보는 사이에 치사한 내 친구 들은 이미 좋은
번호를 다 가져가 버렸다. 2번...2번이 내 번호였다. 하필 이렇게 특징 없는
번호람... 그 사이 여학생들도 번호를 정하고... 각자 자신의 파트너를 찾기
시작했는데.... 그 참한 이대생이 

"전 2 번인데요...."

하고 말하는 순간 나는 정말 기절할 뻔 했다. :> 아니...내게 이런 일이....
란다우는 신나게 그 참한 이대생 앞에 가 앉아서 이제는 내 파트너가 된 
사람의 모습을 곰곰히 뜯어보았다.우~~와~~ 내 이상형 바로 그대로다...

그런데....그 이대생이 내 파트너가 되고 나니 갑자기 걱정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자고이래로 미팅에서는 첫인상이 좋아야 하는데.. 그때의 나는 재수 없게도
졸팅(졸지에 하는 미팅) 이었던 것이다.!!!  학생회간 근처에서 어슬렁 거리다가
사람 수가 모자란다는 동문들에게 갑자기 잡혀 온 것이었으니 복장이나 위생(?)
상태가 엉망일 수 밖에... 에고...나의 베아뜨리체는 지금 당장 입사면접에
나가도 좋을만큼 깔끔한 차림인데 나는 완전히 건달 폼이 아닌가.... 아마
나는 나중에 애프터 신청을 하면 보기 좋게 딱지 맞을 거야...으으...

어쨌거나 우리는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은 많이 퇴색했지만
그때만 해도 나는 이빨 하나는 자신 있던 사람이라 미팅에 나가서 시간을
채우는데는 전혀 걱정이 없었다. 보통 한두시간 파트너와 앉아 있으면
할말이 없어 괴롭다는 사람이 많은데...
나는 한번도 그런 곤란을 겪은 적이 없어서...언젠가 친구들이

"넌 도대체 첨 만나는 여자랑 무슨 할 이야기가 그리 많니?"

하고 물은 적도 있었다.물론 그 장광설을 여자들이 좋아하느냐 마느냐는 별개의 
문제지만...  

그런 식으로 계속 이야기를 해나가니  그 이대생도 즐거워 하는 것 같았다.
더욱 나에게 좋았던 것은 (나중에 들었던 이야기이지만) 그 참한 이대생이
나의 첫인상에 별로 거부감을 갖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여자들이 도도
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데 나의 경험으로는 뜻밖에 관대한
사람들이 바로 여자들이다. 오히려 쓸데 없이 인물 따지는 것은 남자들이
더 심하다...

한 두 시간 정도 이야기를 했을까....? 나는 파트너 양에게 용감한 제안을 했다.

"우리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길까요? (=우리끼리 찢어져서 나갑시다!)"

으앗~~~ 좋단다...이렇게 잘 일이 풀려 나가기는 나의 화류계 30년(?) 생활중에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_^ 그래서 란다우는 친구들의 부러움과 질시가 가득
섞인 눈총을 받으며 파트너 양과 "장미빛 인생"을 나올 수 있었다....
지금도 그 예쁘던 아이가 자신은 고교때 불어를 공부했다며 독어의 딱딱한 발음에 
익숙해 있던 나에게 "장미빛 인생"이란 불어 단어의 발음을 들려주던 생각이 
또렷이 난다......나는 그 발음 보다도 그 고운 입매에 더 신경이 쏠려 
있었지만... 

지리를 잘 알지도 못하던 이대 입구를 헤메다가 우리가 들어간 곳은 "레몬"이란
이름이 붙은 아주 작고 오붓한 카페 였다. 그냥 두 사람다 이름이 맘에 들어서 들어 
간 곳이었는데... 분위기가 너무 아담하고 좋아서 우리는 그 뒤로도 이대 앞에서
만날 때면 언제나 "레몬"을 찾아가곤 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갔더니
찾을 수 없더군... 내가 기억이 오래 되어서 못 찾은 것인지 아니면 없어진 것인지 
슬프다....

레몬에서도 우리는 계속 이야기 했다...저녁을 먹으면서... 거기서 알게 된 재미난
사실은 나의 파트너와 나는 국민학교 동창이었는데다가 살던 집마저 같은 
골목이었다는 것이다.으... 이런 놀라운 인연이 있나... 어쩌면 우리는 같이
소꿉놀이를 한 적이 있는 지도 몰라..... 우리는 내가 국민학교를 졸업할
무렵 이사를 했지만 그 아이는 아직 그 동네에서 살고 있었다.......

10시가 다 되어서야...(미팅을 시작한 것이 5시 였는데 도대체 그 때까지
무엇을 했던 걸까...?) 우리는 일어났다. 나는 옛날에 살던 그 J동에
가보고 싶다는 핑계로 그 이대생을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조심스레 청해 
보았다. 나의 베아트리체는 그때까지 나의 넋을 빼놓던 그 웃음을 지으면서
선선히 자신의 집까지 에스코트를 허용해 주었다.

이대 앞에서 그 동네까지는 한시간 가까이나 걸리는 먼 길인데도 왜 그리
짧게 느껴지는지... 어릴 때 살았던 그 동네를 옆에 맘에 드는 여학생과
함께 조용한 밤분위기 속에서 걷는 것또한 아무나 경험하기 힘든 일일것이다
........

집앞에 다다랐을 때 나는 있는 배짱 없는 배짱 다 동원해서 그 이대생에게
다음에 만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결국...그날의 미팅이 재수가 있는지
없는지는 바로 여기서 판가름 나는 것이다....글쎄.. 그 아이가 나의
애프터를 받아들인 것은 무엇때문이었을까... 이제는 물어볼 수 없게 되었지만 
나는 역시 궁금할 뿐이다...인연이었을까.....?

그래서 지금도 나는 인연을 중시하는 지도 모른다. 남자와 여자가 만났을 때
잘나고 못나고를 떠나서 , 가장 중요한 것은 인연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연이
있는 쌍이라면 아무리 서로 바보같은 짓을 해도 이어지지만 인연이 없다면
제아무리 킹카와 퀸카가 만나도 한시간을 함께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이대생을 들여보내고 집으로 돌아 오면서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발이 땅에
닿았던 기억이 나질 않는다. 후후... ^_^

그리고...그 참한 여학생은 ....철없이 내가 양복을 입고 이대에 갔을 때도
나의 파트너가 되어 주었고...나의 새내기 시절을 온통 가득 채운 추억거리가
되었으며... 지금도 조용한 밤이면 담배 한 대와 더불어 늘 기억하게 되는...
그런 존재로서 나에게 남아 있다....

오늘이..그 사람의 생일이다... 이제는 스물여섯이 되었겠지...
하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봄처럼 화사한 이화여대 1학년생으로 남아있다....


* 누구보다도 저의 짧은 글을 아껴주시는 분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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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DAU
                e-mail address : fermi@power1.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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