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wha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민형) 날 짜 (Date): 1994년05월17일(화) 20시43분39초 KDT 제 목(Title): Re : 불안한 나날들 사람들은 내가 이혼한 줄만 알지 몇 번 했는지 모른다 - 최영미 '어떤 사기' 에구, 줄라이님, 저도 공부해야죠... 기말 시험과 term project, 논문, 토플과 GRE... 그렇지만... 모처럼 이대 보드에 제 일기 한 페이지를 올리지요. 줄라이님을 위해서... 1994. 5.14. (토) 힘없이 내리는 비... 키즈가 자고 있다. 그래서 모처럼 E-mail 아닌 진짜 편지를 써보려고 문방구를 찾았다. 근데 한 구석에 웬 여학생이 꿇어앉아 있다. 동덕여고 교복...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랬겠지... 요즘의 문방구라는 게 무슨 선물가게처럼 앙증맞고 귀여운 것들로 가득하다보니... 저만한 여고생이라면 탐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닐거다. 귀 뒤로 단단히 빗어 당겨 두 갈래로 묶은 머리가 고집스럽고 새침해 보인다. 요란스런 것들을 헤쳐 최대한 단순한 편지지를 골랐다. 다정한 이들에게 늘 메일로만 인사하는 게 미안스럽던 차에... 이번 기회에 비록 악필이지만 육필로 인사를 전해야지... 그렇지만 이 악필을 보고 반가와할 사람은 누구일까? 계산을 하며 다시 그 여학생을 넘겨다 본다. 머리를 묶은 귀여운 리본, 폭이 넓고 올이 굵은 체크 무늬 리본을 보며 집에 돈이 없어 그런 짓을 한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해본다. 무표정한 카운터 아가씨... 아무리 봐도 표독스런 인상은 아닌데... 문방구를 나서서 50m쯤 걸었을까? 마침내 되돌아선다. 문방구로 돌아가는 거다. 부끄러움과 당혹감으로 바알갛게 물들었던 귀 언저리와 목덜미... 그 모습이 아물거려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르지만 이제 그만 용서해줍시다... 그만하면 충분히 벌을 받은 것 아닐까요? 여긴 학교 친구들도 자주 드나들 텐데... 자칫하면 평생 씻기 어려운 깊은 상처를 안길 지도 모르잖아요...' 입안으로 대사(?)를 연습하며 문방구의 유리문을 밀었다. ... 그 여학생은 그새 용서를 받았나보다... 카운터의 아가씨는 staire를 알아보고 엷게 웃었다...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