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Ewha ] in KIDS 글 쓴 이(By): apeiron (용의혓바닥) 날 짜 (Date): 1996년01월30일(화) 20시54분30초 KST 제 목(Title): ..... 새벽 3시다. 이러한 시간에 이렇게 한가지 생각으로, 한가지 태도로 맑게 깨어있던 적이 없었다. 늘 흥청거리는 음악과 너절거리는 신문들과 함께, 맘먹고 뽑아들은 책한권. 그리고 기본적으로..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부자리. 그러나 지금은 음악도, 신문도, 이부자리도 없다. 오로지 펜과 종이와 좀전까지 보던 [기형도]와 방석하나가 전부다. 나는 이것들을 내 휘하에 두고 [부엌]이라는 곳에 홀로 앉아 나만의 맑은 작업을 하고 있다. 글쓰기. 누에고치에서 한올한올 견사를 뽑아내듯, 뒤엉켜 혼란한 내 머리에서 한구절씩 내 생각들을 끄집어낸다. 비록 [문자]의 형태로 바뀔 때에 많은 왜곡이 있다 하더라도, 애초에 나의 생각들은 [언어]를 통해 가능한 것이었으므로. 위안삼으리. 부엌에는 먹을 것, 먹힐 가능성이 있는 것들이 많다. 먹는자가 인간일 수도 있고 바퀴벌레일 수도 있다. 지금 이시간쯤의 포식자는 바퀴벌레이다. 그들은 온갖 틈새 를 소리없이 방문하며 먹는다. 먹는다. 나는 그들의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다. -내 온몸이 잠자리의 눈처럼 변해 있는 것일 까. 아니면 내 눈은 냄새를 맡는 코와도 같이, [존재자]의 움직임을 맡는, 아니 보는 것일까. 존재자는 [존재]라는 냄새를 풍기는가. 돌아보면 어김없이 바퀴가 있다. 그/그녀들의 날렵한 몸매. 가늘고 긴 다리. 윤기흐르는 등껍질. 보석같기도 하다. 바람을 타고 날 것만 같은 얇은 어깨와 시종일관 그 [얇음]을 유지하는 저들의 그 빛나는 몸통. -왜 저들은 더이상 진화하지 않았는가. 어떤 충격이 저들을 2억년전, 그 태고의 때에 묶어두었는가. +++++ 왜 [핵심]이 되지 못하는가. 나 자신이 말이다. 그리고 내가 짚어내는 것들이 말이다. 괴롭고 답답하다. 숨막힌다. -김지하, [중심의 괴로움] ? +++++ 이런 식으로 나의 사고의 흐름들을 마치 [마아블링]하듯 걷어낼 수 있게 되어 너무 좋다. 지금은 치열하게 열내며 논문쓰기에 정진해야 할 때이지만, 나는 나만이 할 수 있는 나만의 [생각걷어내기]를 하는 것이 더 즐겁고 활기차다. 어쩌면 이렇게 자꾸 마아블링을 해서 수면의 것을 걷어내면, 물밑 어딘가에 가라앉아 있던 [진주] 가 보일런지도 모르는 일. -그러나..걷어내도 걷어내도..퇴적물들은 자꾸 움직여 물을 혼탁하게 만들고 잡다한 이런저런 생각들이 [편충]처럼 끊임없이 이어진다. --어떤 노트의 기록. .......................내 속에 태양이 있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