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Ewha ] in KIDS 글 쓴 이(By): dryad (나무요정) 날 짜 (Date): 1995년04월30일(일) 11시57분40초 KST 제 목(Title): 시집을 잘 가려면 이화로? 모 재벌그룹 총수는 이대졸업생을 줄줄이 며느리로 맞아들이면서 '여자로서 적당히 교육받은 수준'이라며 짐짓 흐뭇해 했다던가. 1세대가 갖고 있던 활발성과 이 '며느리감으로 알맞은'수준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어보인다. 오늘날 사람들이 '이화'하면 떠올리는 몇몇 이미지들은 2세대 이화에서 자리잡기 시작했다. 시집을 잘가려면 이화로? 해방과 6.25를 거치면서 대거 유입되기 시작한 미국문화의 영향으로 서양적인 것이 좋은것, 상류적인 것으로 동경의 대상이 되던 그 시절. 60여년 동안의 신학문교육의 성과가 축적되어 있고 어떻게 보면 당시 가장 서구적이 었을 이화는 '사상이 나쁘고 실력이 없고 양물을 먹었다'는 평가를 받던 1세대와는 다르게 최상의 여성교육기관으로 여겨지게 된다. 점차 '양가집의 성적 우수한 여학생'들이 이화로 몰리게 되고-이화가 세간의 동경과 인정을 받게 되는 시절, 1세대적인 이화기질이 부분적인 해체를 맞게 되는 시절듸 시작이다. 1세대를 '선구적 지도자', '2세대를 키워 낸 교사들', 그리고 '독신'으로 정리할수 있다면 2세대의 특징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규수감'으로서의 이미지이다. 참한 며느리로 맞기엔 아무래도 부담스러웠을 1세대 이화인과는 다르게, 사회진출의 측면보다는 고학력 남성에 어울리는 배우자로서의 이미지, 이화를 나오면 시집을 잘 간다든가 시집을 잘 가려면 이화에 가야한다는 생각은 아마도 이 시기에 자리잡아간듯 싶다. 초기에서 전문학교시절까지의 메이퀸들은 그 시절 사회봉사의 뜻을 살려 주로 교육계와 여성운동에 평생을 바친 것에 비해, 해방 이후의 메이퀸들은 대부분 평범한 가정주부가 되었다는 것은 의미있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