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Ewha ] in KIDS 글 쓴 이(By): yujeni (유제니) 날 짜 (Date): 1995년04월15일(토) 23시18분43초 KST 제 목(Title): 이화,정동에서 문 열다.(이화변천사 2 )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은 한 노부인이 한국의 여성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도록 헌금한 돈을 가지고 감리교회의 여성해외선교부는 스크랜턴부인을 한국에 파견하였다. 그리고 스크랜턴 부인은 약간의 빚을 얻어 학교를 세울 땅을 구입한다. 이화는 1886년 11월 완공된 신촌이 아닌 정동의 다자형 기와집에서 이화학당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제국주의 열강이 제 3세계를 식민화할 때 기독교가 정신적으로 그 교두보역할을 담당하였고, 직접적인 포교에 대한 저항감을 없애기 위해 교육이나 의료활동으로 활동을 시작했던 것은 공식적인 과정이였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성만을 교육시키는 학교'란 그 당시로서는 일종의 반란이 였음에 틀림없다.젊은 여염집 여성들이 집단사회를 이루어 신학문을 배운다는 사실은 확실히 그런 일인 것이였다. 사실 그대로 이화학당 시절의 교육이념은 이랬다. "우리의 교육목적은 한국 여성으로 하여금 참된 가정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조력자가 되고 우리 학교의 교사가 되며 기숙학교의 조수가 되고 의료사업에 있어 간호원이나 조수가 되게 하는 데 있다.그들은 음식을 만들고 의복을 짓고 자기 몸과 집안을 깨끗이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the Korean Repository,1892,3.우리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 애초에 이화는 한국의 암담한 생활을 하고 있는 여성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설립되었으나 한편으로는 어디까지나 가정의 조력자,의사의 조력자,잘해서 교사로 키우고자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우리의 선배들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초등,중등,고등과 밖에 없었던 이화에 대학과를 설치하고자 하였을 때 대개의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했다. [초등과 고등과를 다닐 기회도 없는 여성들이 아직도 얼마나 많은 데 대학과를 설치한다는 것은 무리다.] [여자를 대학까지 공부시켜 대체 무얼 하자는 건가 ] 그러나 한국의 여성가운데 지도자가 많이 나와야 현실이 빨리 깨우쳐진다고 생각하여 대학과는 1910에 신설된다.그리고 대학과까지를 거쳐 졸업시키기 위해 일찍 결혼하는 관습에 반발,조혼 피하기 운동을 벌이게 된다.뿐만 아니라 결혼을 하지 않고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 몸을 바치겠다는 것이 당시 학생들의 이상이며 희망이였다.그리고 이것은 학부재학 중 결혼을 하면 안된다는 학칙과 졸업예정자조서와 함께 호적초본을 내는 것으로 굳어져 내려오게 된다. -----계속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