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w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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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wha ] in KIDS
글 쓴 이(By): swan (김  윤경)
날 짜 (Date): 1993년11월06일(토) 14시18분11초 KST
제 목(Title): 이화의 가을에 어린 추억하나....



앞에 분께서, 이화의 가을에 얽힌 추억하나 들려달라고 하시길래,

몇자 끼적끼적 거려 봅니다....


이화인 여러분들은 다 아시듯이

새벽의 도서관 자리다툼이 얼마나 치열합니까?

특히 저같이 맘에 드는 자리 하나 찜해놓고,

그 자리에 매일 앉게 되는 것만으로도,

하루를 시작하는 조용한 기쁨으로 삼는 터줏마님들에게는 

더욱 그러하죠.... 


새벽을 노래하듯, 찌찌리릭~  거리는 새소리를 들으면서 

그 자리에 앉아서 하루를 조용히 보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눈을 감고도 훤히 보이는 도서관 언덕길을 숨가쁘게 걷던 나날들....

(참, 나도...  왜 그렇게 그 자리를 좋아했는지 모르겠어요... :)  )


오늘 같이 가을비가 사뿐히 내려서,

모처럼 곱게 단장한 단풍잎들의 얼굴을 뽀독뽀독 소리나게

닦아주던, 어느 가을날 아침이었어요....


여느 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나서 더욱 총총거리면서 가고 있었죠.

너무 졸려서 눈을 감고 가다가 인제 도서관 정문이겠지? 하면서 

살짝~ 눈을 떴을 때......

햇볕에 물방울이 반사되어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너무나 매혹적인 단풍잎들을 보는 순간!!!

저는 그 자리에 설 수 밖에 없었답니다...


그렇게 이쁘고 유혹적인 색깔을 이전에는 본 적이 없었답니다.

그리고는 한참을, 정말 한참을 서서 계속 계속 바라봤답니다...


제 뒤로 지나가는 또각 또각 구둣소리들이 점점 커지고 있었고,

몇몇 학생들은 잠깐 멈춰서 이 여자가 왜 이리 서있나 의아해서 

같은 방향을 쳐다보다가 싱거운 웃음을 남기고 지나가기도 하고,

내 소중한 터줏자리가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까맣게 잊어버린 채,

정말 한참을 바라보았답니다....


그러다가 문득, 인제는 복도에 있는 자리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자, 

아쉽지만 돌아설 수 밖에 없었죠.

아래에 떨어진 새끼 단풍잎 몇개를 보물처럼 주워서,

물기를 닦고 책깔피에 하나하나 끼워놓았읍니다.



그날은 사람들이 잘 앉지 않는 시끄러운 복도 옆 자리를 차지하고도

왜 그렇게 싱글 벙글 했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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