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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 kiky (박 용 섭)
Date   : Wed Nov 18 14:25:14 1992
Subject: 동 백 남나 무 


안녕하세요 이화인 여러분 그리고 이화인을 애타게 기다리는 여러분  :)

아이고 .. 도대체 위의 곽태영씨 경고대로 이런 글이 이화 보드에 
올라와서는 아니될 것이나아 .. 이미 말을 해 버렸으니 ..

이화 보드생긴걸 축하하는 의미에서 그냥 시시 껍절한 글 하나 올립니다..
내가 쓴건 아니고.. 근데 내가 타자는 했음 ..  :-)

시카고에서  박 용 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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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 백 나 무 


                                글 : 정 채 봉


흰구름이 이야기 하였습니다.


나는 팔순을 넘어선 청청한 할아버지 의사 한분을 알고 있지.

젊은날, 의사가 된 이래로 오로지 호주머니에 든 것 하나없는 사람들을 위해 

천막병원을 세우고 움집병원을 열며 살아온 분.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목에 건 

청진기로 환자들의 작은 신음소리도 크게 들으며 함께 애통해 온 분. 돈 없어

퇴원을 못하고 있는 노인더러 내빼라며 병원의 뒷문을 열어주며 차비를 뒷주머니에 

넣어 보낸 분. 병들어 산중에 버려진 걸인을 찾아내어 씻기고 치료해도 끝내 눈을 

뜨지 못하자 엉엉 소리내어 울어버린분.

이분은 지금도 가진것 하나 없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병원꼭대기에 방을 

들여서 혼자 살고 계시지.

어떤날 보면 이 할아버지 의사는 먼 바다를 바라보면서 혼자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데, 그 노래 가사가 참 서글픈 것이어서 나를 아리게 하곤 했어.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님이 그리워 눈물 납니다.'


그런데 바다의 파도소리와 어우러져서 햇볕이 쫘악 내리는 어느날이었어.

사철 푸른 동백분이 하나있는 이 병원의 옥상에 하얀 머리의 할아버지 의사가 

나왔지.  바로 그 뒤에는 머리를 짧게 친 젊은 사람이 따르고 있었고, 사진을 찍는

점퍼 입은 사람도 있는 것으로 보아 기자가 찾아온 것 같았어.

젊은 사람이 묻더군.

        "북에 계신 사모님으로부터 최근 편지가 왔다죠 ?"

        "저 바다 너머에 살고있는 조카편으로 받았어요.  

         내가 설흔 여덟살, 아내가 설흔 일곱 살때인 전쟁중에 헤어져 이제 

         내나이 여든 하나이고 그사람이 여든이니 꼭 마흔 세해 만이군요"

        "그동안 재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안 하셨어요 ?"

그러자 이 할아버지 빙그레 미소지으며 하시는 말씀좀 들어봐.

        "결혼은 일생에 딱 한번 하는 거예요"

        "할머니도 그럼 혼자 살고 계시겠군요."

        "물론이지. 내가 한아이를 데리고 오고 아내와 나머지 다섯아이는 그쪽에

         남았는데 다들 건강하게 잘 성장하였다는 구먼요.  그사람 고생은 말로 

         할 수 없었을 거예요. 내가 그동안 일원 한푼 건네 주지를 못했으니까요.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요 ?  삼팔선으로 막혀있으니 월급을 보낼수가

         있는가요 ?  아이들 공책을 사 보낼 수가 있는가요 ?"

젊은 기자가 검은 눈을 껌벅이며 말하더군.

        "선생님은 그동안 설움많은 우리 이웃들의 눈물을 닦아준 고마운 

         손이셨어요. 돈 없는 환자들을 돌보아주고 죽어가는 걸인들을 

         그냥 버려두지 않으셨고 ... "

할아버지 의사가 손을 내 저었지.

        "내가 잘 하고자 한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산 것 뿐이예요.

         굳이 내 마음이 있었다면 '지아비 없는 북의 우리 가족도 불쌍한 

         이웃이 아니겠어요 ?   그래서 내가 내곁의 불쌍한 사람들 돕는다면 

         북에있는 우리 식구들도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그것이 맞은 걸로 봐서 정말 기쁩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기자가 천천히 눈을 들며 물었어.

        "남쪽의 선생님이 이렇게 홀로 살아오신것을 북쪽의 사모님도 알고 

         계시지요 ?"

할아버지 의사가 고개를 끄덕이었지.

젊은 기자가 동백분을 바라보며 말했어.

        "어떻게 이리도 오래 기다릴 수 있지요 ?"

        "참이니까요. 참사랑은 헤어져 있어도 변치 않는 것이거든요. 

         또한 우리가 죽어 흙으로 돌아가더라도 사라지지 않고 영원할 것이예요."

젊은 기자의 눈이 아득히 하늘을 우러러 나를 보더군.

나는 산봉우리처럼 뭉게뭉게 부풀어 보이며 말해주고 싶었어. '보게 이런 분도 

있지 않은가' 하고 말이야.  할아버지 의사 또한 나한테로 눈길을 주며 말했지.

        "아내의 손때묻은 편지를 받아들고는 혼자 실컷 울었지요.  그랬더니 

         속이 좀 시원했어요."

        "선생님 께서도 편지를 보내셨습니까 ?"

할아버지 의사가 저 아래 바다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끄덕였지.  

바다에는 통통배 한 척이 물살을 가르며 선창을 향해 돌아오고 있었어.

젊은 기자가 노트를 덮으며 말하더군.

        "아마 사모님도 선생님의 편지를 받으시면 이불을 뒤집어 쓰시고서 실컷

         우실 것입니다."

        "이제 그만 나도 가 봐야겠소.  먼데서  온 손님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거든요."

아아, 나도 그곳을 떠나 어서 흘러 가고 싶은 데가 생각났어.  이 할아버지 

의사의 부인이 살고있다는 강계 하늘.  그곳에 가서 할머니를 위로 하고 싶은 거야.

할아버지는 남녘 항구에서 겨울 타는 이웃의 동백의사가 되어 있더라고 말이야.

한겨울 눈보라 속에서도 당신을 향한 빠알간 꽃을 고이 피우고 있더라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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