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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wha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artistry �) <PPPa21-ResaleTac> 
날 짜 (Date): 2000년 6월  9일 금요일 오전 03시 48분 59초
제 목(Title): 진중권/ 남성과 군대 


진중권 (kyoko@channeli.net)  Access : 528 , Lines : 15  
대한남아의 공격성에 관하여  
남성과 군대


"군대를 갔다 와야 사람이 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시민은 
반인반수(半人半獸)다. 왜? 적어도 부모 중의 한 편은 군대를 갔다 오지 
않았으니까. 실제로 고대 정복국가 시절엔 국방에 참여하는 군인만이 시민으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이 고대의 전통이 군국주의 시절의 일본에도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시민이 되려 했던 당시 일본의 여권운동가들은 자발적으로 
군신(軍神)이 됨으로써 참정권을 보장받으려 했다고 한다.

물론 이 정도로 심각하진 않지만 아직도 이 고대적 사고방식이 한국 남성들의 
무의식 속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모양이다. 얼마 전 헌법재판소에서 군가산점 
제도가 위헌이라고 판결을 내리자 대한민국 남자들의 입에서 당장 튀어나오는 말. 
"그럼 여자들도 군대를 가라." 

한 마디로 군복무를 했다는 사실로 성차별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말도 안 되는 논리라 누구도 공공연히 이런 주장을 내놓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런 
사고방식이 우리 사회의 무의식에 뿌리 깊히 박혀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사건을 두고 대한민국 남성들이 보인 그 광적인 반응은 설명이 안 
된다. 단언컨대 군복무의 경험은 우리 사회에서 남성들의 자존심을 이루는 아주 
중요한 근거임에 틀림없다. 헌재의 판결은 대한민국 남성이 가진 이 유일한(?) 
자존심을 건드렸고, 그래서 별 것도 아닌 일에 그 난리들을 쳤던 것이리라.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쳐서 피가 끓더니 마침내 헌법소원을 낸 여성들의 모교의 
홈페이지를 융단폭격을 해버렸다. 그리고는 의기양양해 한다. 또 거기에 사용된 그 
끔찍한 언어적 폭력이란....

사실 이 판결로 영향을 받을 사람은 대한민국 전체 남성 중에서 소수점 몇 자리 
아래의 퍼센티지에 불과할 것이다. 사실 이보다 중요한 판결이 수없이 내려지고, 
이보다 더 영향력이 있는 법안들이 하루에도 수없이 통과되고 있다. 그런데도 아무 
관심 없던 분들이 하필 어떻게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이 사소한 문제에 왜 그토록 
광적인 반응을 보인 걸까? 헌법소원을 낸 사람 중에는 남성 장애인도 끼어 있었다. 
근데 왜 이 문제가 '남성 대 여성'의 성대결로 나아가야 했을까? 또 이들은 
군필자에게 혜택을 주지 말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 혜택을 다른 방식으로 주라고 
주장했을 뿐이다. 그런데 대체 왜 이게 군필자를 무시하는 처사라는 걸까?

이런 것을 따져 보는 이성적인 논의는 없었다. 엄마 품을 떠나 집단생활을 
해봤다는 자부심에 넘치는 우리의 다 큰 보이스카웃 어린이들. 대한민국 예비역 
장병 여러분들은 그런 재미없는 문제엔 애초에 관심 없다. 이들의 몸부림은 현실적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이 아니었다. 외려 원시부족의 
연례행사처럼 남성들이 오랜 만에 집단적으로 자기과시를 하는 일종의 종교적, 
상징적 제의였다고 봐야 정확할 게다. 이들의 과장된 분노 속에서 나는 거꾸로 
은밀한 기쁨을 읽는다. 즉 사회생활을 하며 여기 저기서 받은 억압의 스트레스를 
만만한(?) 상대를 만나 맘껏 퍼부으며 해소할 껀수가 생겼다는 데에서 오는 기쁨. 
그리고 그 야수와 같은 공격본능을 맘껏 발산하는 가운데 사나이들 사이에 
맺어지는 끈끈한 의리와 전우애... 

이번 일로 나는 한국남성들의 집단이 여성집단에게 언제라도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가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아울러 
봉건적인 가부장제와 함께 근대 국민국가의 군복무 경험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성차별을 뒷받침하는 사회적 무의식의 또 다른 축을 이루고 있음을 
확인했다. 대한민국 남성들의 그 단순무식한 사고방식엔 기가 막혀 그냥 
너털웃음이 나오나, 그 사고를 표현하는 그 가공스런 폭력성 앞에선 소름이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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