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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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uksung ] in KIDS
글 쓴 이(By): gazebo (YoungBlood맧)
날 짜 (Date): 1998년03월10일(화) 23시46분29초 ROK
제 목(Title): 3월 10일 실습일기...


오늘은 다른날보다 1시간을 더 일찍 출근해야 했다...

북리뷰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아침식사까지 희생했는 데도 불구하고 5분지각하고 말았다...

슬그머니 선생님무리에 끼어들어가 얌전히 있었다....

잠을 못자서 집중도 안될뿐더러 막연히 텍스트를 읽어가는

진행에 멍한 상태가 지속될뿐 전혀 머리속으로 어느것도 들어

오지 않았다...(오 아까운 내 한시간 ...정말 꿀맛같은 잠이었는데...)

내 수면부족도 이유겠지만 발표하는 사람의 성의없음도 문제였다...

순간 뭐 이따위 발표가 다 있어 하고 욱했지만....

곰곰 생각해 보니 그럴 만도 했다....

발표하는 3년차 선생님이 너무 많은 것을 하고 있는것이다...

지난 주에 어시스턴트를 하던 1년차 여 선생님이 도망갔다고 했다...

그런 경우가 종종있어 이 병원에는 1년차 선생님이 없었다...

덕분에 3년차 선생님이 자기가 안해도 될 일까지 맡아서 하고있는 것이다..

거기다 매일매일이 응급환자와의 씨름.....

당직까지 서는 날에는 그야말로 초죽음이다....

지난주에는 잠시 병원 분위기 가 너무 널널하다고 좀 비웃음 섞인 푸념도

한게 사실이다...

우리학교의 학구적인 레지던트 선생님들과는 전혀 분위기 가 달라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수많은 분만들과 수술들을 무사히 해내고

있는 노력과 솜씨들에 그저 박수를 보낼뿐...

의사에게 있어서 많이 안다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보다더 중요한

것은 알고 있는 것을 얼마만큼 사람들에게 되돌려 주는가이다....

결국은 의학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아카데믹한 의사든 실무에 능한 의사든 각각 그 나름의 필요가 있고 

존재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누가 우위에 있느냐는 사실 거시적인

의미에서는 논의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난 어떤 의사가 될까?.....

아직은 모른다....  아직도 해내야 할 과정과 겪어야 할 사건이

수없이 많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앞으로 닥칠 그러한 일들이 나를 변색시키기 보담은

좀더 좋은 방향의 인간으로 만들어 주기를 간절히 원할뿐이다....




모두들 아침을 굶었는지 회진 끝나고 매점으로 내려가자 거기에 다있었다...

덕분에 공짜 빵과 우유로 요기를 하다...

분만장으로 올라오니 마침 3년차 선생님이 컵라면을 준비하고 있었다...

김치하나 달랑들고 락커룸으로 들어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같이 라면을

먹는데 어느 때보다 맛이 좋았다....

(수술복 입은 두사람이 좁디 좁은 라커룸에 앉아 라면국물 홀짝거리는 모습

상상이 됩니까....)

파일과 책들고 모 과장님의 외래 진료실로 갔다...

(오늘 나를 1시간 일찍오게한 문제의 그 학구적인 과장님...)

의외로 친절하게 편하게 대해주셨다...

난 물고기가 물만난듯 이거저거 자잘한 것까지 질문을 했고

과장님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대답해 주셨다....

학교에서 보다 훨씬 편안한 느낌이었다...학교에서는

교수님은 너무 어려워서 말도 잘 안떨어지고 조교선생님들에게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질문하나 제대로 하기도 힘들다...

마치 가정교사가 생긴 듯한 기분....

덕분에 진찰 과정도 같이 참여 했다.....

외래에서는 임신1-2달 정도의 산모들과

출산을 몇주 남겨둔 산모들..그리고 수술받은 후 통원 치료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임신 4주째의 여자 환자가 왔는데 초음파로 보니 아직 배자의 모양이

작아서 보이지 않고 yolksac만 조그만하게 보였다...

-임신 3-8주까지를 배자기(embryonic period)라고 하고 그 이후부터를

태아기(fetal peroid)라고 하는데 3-8주까지 몸의 기관들의 싹이 만들어지는

것이고 태아기에는 이것들이 성장을 한다.... 그렇다면 산모에게 영향을 주는

돌연변이 자극원이 제일 영향을 크게 미칠 수 있는 때가 배자기인 셈인데

실제 이 시기에 몸에 대해 소홀할 경우 눈이 하나달린 아이가 나온다든가

손과 발이없거나 무뇌아가 나오는 등의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시기에 자기가 임신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는데

있다. 따라서 결혼한 여성이라면 자신의 월경주기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고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는 듯 싶으면 일단은 병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은 소변을 묻혀서 검사할 수있는 좋은 임신진단 시약이 있으므로

이것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태아의 심장박동도 들을 수 있었다. 초음파 검사시에 루틴으로 하는 것인데

상당히 빠른 박동이었다. 물론 스피커를 통해 증폭된 소리겠지만

그걸 듯는 산모는 자신의 뱃속에 또 하나의 생명이 있다는 것에 얼마나

감동을 느낄까?

오늘보니 부인과 남편이 같이 진찰실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처음엔 어색한 기분이었는데 오히려 좋아보였다...

아이를 갖는 다는 것은 두사람 모두의 일이고 책임이다...

여자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조금 쑥스럽기도 하겠지만 부인과 함께 병원에 와서 같이 이야기듣고

같이 이제 태어나게될 생명을 준비한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작업일까?


초음파로 곧 태어날 태아의 기형여부를 관찰하는 것도 구경했다.

얼굴이며 손과 간 심장 심지어는 척추까지 마치 카메라를 대고 보듯 또렷하게

잡히는 영상에  감탄에 감탄을 연발....

손을 움츠렸다 펴고 몸을 고개를 움직이고 발을 차고....

또하나의 생명의 표현에 자못 엄숙하고 신비스런 기분까지 들다....



점심을 먹고 분만장으로 올라갔다...

두건의 수술이 준비되어있었다...

한건은 제왕절개 수술이고 한건은 자궁에 종양이 생겨 자궁을 도려내는 수술

이었다.. 둘다 같은 시간에 있어서 자궁적출술을 입회하기로 하고 

수술장으로 향했다.

50대 중후반이 되어보이는 환자...척추마취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마취가 끝나고 본격적인 수술.....

메스로 배를 째로 자궁을 드러냈다...

온통 이상한 덩어리가 달라붙어있는 모습이었다...

수술에 참가한 선생님들 이런 종양은 처음본다는 모습으로 잠깐 당황....

특이한 케이스라 냉동 절편을 order하고 적출술을 시행....

세명이 달라 붙어서 해야 하는 힘든 수술이었다...

집도를 하는 과장님은 여유있게 농담도 하시고 해서 주위의 간호원들을

웃음바다로 만드는데 나머지 두분의 레지던트와 펠로우 선생님들은

긴장한듯 수술에 집중한 모습이었다...

역시 의술에 있어서 경험만한 것은 없는 거겠지....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초로의 아주머니....

가만히 생각해 보니 참 여자는 고통의 일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시절은 애낳느라 키우느라 고생이었을 텐데

겨우 허리피고 쉴만하니까 자궁에 종양이 생겨 수술까지 받아야 하고...

남성들은 위암이나 폐암등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지만 여성들의 경우

유암(유방암)이라든가 자궁경부암 자궁암 난소암등 부인과 암이 암으로

인한 사인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결국 아이를 낳고 기르기위한 장기가 나중에 또 문제를 일으키는 셈이다...

공평치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공평한 것이 있다면 남성의 평균수명이 여성보다 낮다는 것이다...

4-5년 정도...

아마도 신꼐서는 여성에게 해산의 고통과 힘든 삶을 내리는 대신에

끈질긴 생명력이라는 것을 내리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암쪼록 세상의 모든 여성들이 삶이 끝나는 그날까지 건강하기를...

너무나 비현실적인 기원도 해보다....



3시쯤 학교로 돌아와 리뷰를 들어갔다....

너무 피곤한 탓에 지하철도 한정거장 지나치고....

조금은 의욕이 떨어진다... 몇일되었다고 벌써 매너리즘에 빠지는지...

회의실에 가니 선생님이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수없이 많은 질문들....

그리고 선생님께서 쏟아내는 용어의 폭포수...

더욱 지쳐버렸다...

파견나간 사이 본교에 남은 녀석들은 상당히 많은 걸 배운 모양이다...

초조해 진다....

담주에 본원돌때는 나도 저런 상태에 가 있을지.....




다시 한번 의욕을 다져야 겠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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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ainy Days.......
                    Never Say Good Bye.......
                                    Gaze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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