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ongduck ] in KIDS 글 쓴 이(By): kdotori (도토리) 날 짜 (Date): 1995년08월25일(금) 11시48분56초 KDT 제 목(Title): 퍼온글)정은임씨 서울대 학보에 실린 인터� 우리마을에 갔다가... 정은임씨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아나운서여요! 그럼... 제 목 : 정은임 인터뷰기사 전문.. ----------------------------------------------------------------------------- - 선배를 찾아서 MBC 아나운서 정은임씨 "힘들지만 소신은 지키고 살아야죠" 밤잠 없는 사람들 중에는 그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이가 꽤 있을 것이다. 또한 방송을 들으며 가끔 놀란 적도 있을 것다. "방송에 저런 것도 나오네." 하기야 한 밤중에 방송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나오고 '인터내쇼널가'가 울려퍼지기도 했 으니 말이다. 그는 바로 MBC라디오 'FM영화음악'을 지난 달까지 진행하던 정은임씨(본교 고 고미술사학과 87학번). 하지만, 요즘 그는 5분뉴스 외엔 하는 일이 없다. 지난 1일 자로 그 프로에서 '잘린' 것이다. 물론 "프로그램개편에 따른 인사이동"이라고 했 지만 가끔씩 그의 방송에 나오던 사회성 짙은 영화들, 정부비판도 서슴지 안호는 입바른 소리들이 심의에서 자주 지적되었다고 했고, 심야라고 고위간부들이 잘 안들어서 그렇지 그동안 곱지 않은 눈길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그 상황도 궁금해서 그를 직접 만나 보았다. 87학번. 제대로 된 80년대라는 걸 앓아본 마지막 세대인지 모른다. 곱게 자라 집 과 학교 밖에 모르던 그에게 87년의 격동은, 명동에서 종로까지 서울지리를 '빠삭 하게' 알게 해주었고, 임수경씨 방북때 임진각에 함께 갔다가 '대공사범'으로 분류 돼 창살신세를 지는 일도 겪게 했다. 모든 것이 충격과 분노였던 그의 대학생활, 동아리에서 봉천동 탁아소를 하던 경험이나, 영화'Z'를 보며 '선거혁명의 허황됨 '을 밤새 토론하던 일, 파출부 아줌아에게 '계급성'에 대해 한바탕 연설을 했던 일 들을 떠올리며 자시도 한때"과격'했다고 웃는다. 그것이 관념적 과격성이었을지라 도, 적어도 당시 정서로는 '제도언론'이라며 그렇게도 경멸하던 방송사에서 그는 지금 '아나운서'로 일하고 있다. 그는 희망은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노조도 있으니, 건강한 생각 가지고 주위 사람들돠 함께 하면 제도언론에서도 뭔가 할 몫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졸업후 우여곡절끝에 입사한 방송사. 들어가자마자 그곳은 파업(92년)중이었고, 수습들에 겐 노조불가입 각서가 강요되었다. 입사동기중 유일하게, 높은 분이 있는 그 자리에 서 분명히 거절하였고, 그 일은 버로 그가 '찍히게'되는 계기였다. 동기들은 모 두 TV간판뉴스의 아나운서를 맡고 있는데 그는 아직 이렇게 '물만 먹고' 있으니 말이다. 노조에서 노래패를 하는 그는 요즘 새일을 해보고 싶다. 처져 있는 사람들 힘좀 차리자고 노조 '풍물패'도 만들 생각이고 '영화팀'도 만들어볼 계획이란다. 만남이 즐겁고 서로 친해야 나중에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는 노조사무실도 예쁘게 꾸미자고 주장해서 그렇게 만들었다. 여성부장이니 교육부장이니 맡으라 는 벼슬은 많지만 아직 젊어 방송을 더 하고 싶은 욕심에 더 '찍히고' 싶지는 않 다며 멋적게 웃는다. 노조 가입률은 70%를 넘지만 진짜 생각 가지고 활동하는 이들은 5%도 안된다며, 이익집단화되는 노조와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사원들을 안타까와하기도 한다. "아직 학생 같다느니 잘 나가기는 글렀다느니 하는 소리 많이 듣죠. 한때 싸움 꾼같다는 말까지 들었으니까요. 하지만 점점 자신이 없어요. 이젠 큰 소리내기도 힘들고 나 하나라도 건강한 생각 안 버리고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 요 ." 기자에게 제발 '투사'처럼 묘사하지 말아달라며 당부하는 정은임씨의 모습 에는, 지나간 시대에 대한 죄의식화 함께, 거대한 조직 속에서 나름대로 소신을 갖고 버티려는 이의 힘겨움이 어려 있었다. -The End- <<<< FREE & LOVE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