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gD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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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ngDuk ] in KIDS
글 쓴 이(By): charina (보잉~)
날 짜 (Date): 2000년 7월 20일 목요일 오전 01시 10분 02초
제 목(Title): [보잉~] 전통..터키! -오일레슬링



터키기행기3 - 오일 레슬링

639년의 전통. 크르크프나르의 오일 레슬링
우리나라에 씨름이 있고, 일본에 스모가 있고, 스페인에 투우가 있다면, 터키엔 
오일 레슬링이 있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레슬링과 경기 규칙은 같은데, 
선수들이 온몸에 올리브 기름을 바르고 경기를 한다는 것이 특이하다. 터키의 
아이들은 오일 레슬링 챔피언이 되는 것이 꿈이며, 터키 전국의 방송국과 
신문사들이 이 경기가 있을 때면 이스탄불 위 쪽의 작은 마을 크르크프나르에 
집합한다. 터키가 가장 번영했던 오스만 투르크시절, 영토확장을 위한 끊임없는 
전쟁 때문에 민심은 날로 흉흉해 졌고, 왕은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이러한 
경기를 만들었다. 그 유래 이후 경기가 지속된 세월이 자그마치 639년. 그 어떤 
세상 풍파에도 굴하지 않고 이 경기는 끊임없이 계속되어 온 것이다. 우리 
촬영팀은 4일 동안 열리는 경기 일정 가운데 제일 첫날 이곳을 찾았다. 결승전을 
못 보는 것이 아쉽긴 했지만, 경기 전 오프닝이 또 장관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놓칠 
수 없었던 것이다. 

- 벌써 며칠째 수면부족과 극심한 신체 노동에 시달리는지 그 정도를 헤아리는 
것조차 끔찍한 일이다. 
앞으로 남은 일정 모두가 이렇게 초인적인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지치게 한다. 
하지만 난 생각한다. 내가 이곳에 오게 된 것은 운명이었다고. 
반드시 어떤 일이 일어나게끔 신이 만들어 놓은 시험장이라면
내가 이 먼 곳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는 것도, 
숨이 멎을 것만 같은 감동에 휩싸이는 것도,
또 다른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계획된 일이리라.
악천후가 사람을 더욱 강인하게 하듯이, 
고단함이 나를 더욱 활기차게 해 줄 것이다.

경기를 알리는 오프닝. 축제, 축제!
터키 촬영 5일째. 우리 스텝들 모두는 지쳐있었다. 새벽에 레슬링 경기장에 도착해 
아침을 먹는데 다들 식욕이 없는지 우유와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식사를 마쳤다. 
김피디님은 아예 차에서 좀 자야겠다며 아침을 걸렀다. 하지만 축 늘어져 있는 
시간도 잠시. 우리 전 스텝은 오프닝의 시작과 동시에 절로 신이 나서 이리저리 
뛰어 다니느라 고단함 따위는 바지 가랑이 사이로 모두 떨어져 내려간 듯 했다. 
그야말로 축제, 축제!였다.
오전 10시 정각. 시청 앞 대로변에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터키군악대의 
우렁찬 트럼펫 소리였다. 그 뒤에 엄청난 크기의 챔피언 벨트가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행렬이 시작되자 가장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은 역시 세계 각국의 
프레스들. 뒤에서 따라가며 찍기도 하고 또 앞에서 받기도 하고.. 하여간 좋은 
장면을 잡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 만큼이나 절박해 보인다. 
다시 행렬에 이어지는 터키 전통악단. 20명의 장고와 20명의 피리. 장고의 
리더1명과 피리의 리더1명이 서로의 눈빛을 맞추며 악단을 지휘한다. 터키 
전통악단의 연주에는 우리나라의 사물놀이와 같은 혼이 느껴졌으며, 그 신나는 
리듬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동요시켰다. 그리고 이어지는 커다란 두개의 화환이 
축제의 화려함을 더했고, 마지막으로 역대 챔피언들과 시의 고관들이 행렬의 끝을 
장식했다. 
일단 행렬은 이 동네를 한바퀴 돌아 아타 투르크-터키의 아버지란 뜻으로 터키 
공화국 수립자-동상 앞에 1차 집결. 간단한 국민 의례를 마친 후 다시 이동 2차 
집결지는 묘지. 639년 전 이 경기가 처음 있던 때 마지막 까지 남아 40일 동안 
싸우다 동시에 탈진해 죽었다는 두 사람의 묘가 있는 곳에서 간단한 기도식. 
그리고 다시 한번 동에 한 바퀴를 돌고 시청 앞 광장에 돌아와 신나게 한 판 
공연을 하는 것으로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은 끝이 난다. 사람들은 이제 
점심을 먹으며 오후에 있을 경기를 기대와 흥분으로 기다리는 것이다.

이번 행사의 주인공은 바로 나였다.
행진이 계속되면서 나는 미친 듯이 뛰어 다녔다. 장고 팀의 옆에서 북 치는 모양을 
따라 흉내내어 보기도 하고 8년째 우승을 기록하고 있는 천하무적 무스타샤 선수와 
나란히 행진하기도 했었다. 내가 무스타샤 선수와 어깨 동무를 하고 팔을 들어 
힘이 좋다는 포즈를 하자 각국의 취재진들이 일제히 그 장면을 촬영했다. 그들은 
아마 나를 고삐 풀린 동양 망아지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 
장면은 다음날 터키 중앙 일보에 기사화 되어 실렸다.- 그 이후로 그곳에 모인 
취재진들은 모두가 나를 예의 주시하기 시작했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사람들은 
경기 보다는 내 행방을 파악하느라 시선들이 바빴으며 내가 선수들과 인터뷰 할 
때, 포즈를 취할 때는 어김없이 내 쪽으로 몰려 들었다. 어떤 때는 우리 촬영 팀과 
함께 이동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붙잡아 놓고 아까 했던 포즈를 요기에서 다시 
한번 취해 달라느니, 잠깐 인터뷰에 응해 달라느니, 자기네 카메라를 좀 보고 
액션을 취해 달라느니 하고 요청하는 일이 여러 번 있었는데, 여건이 되면 
충실하게 액션을 취해 주기는 했지만 바쁠 때는 "I'm sorry, I have to go to 
work, perdon(터키어로 '미안해요'라는 말)"라며 잽싸게 그 자리를 빠져 나와야 
했다. 다들 보도성 취재진들이라 우리처럼 리포터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없어서 
인지, 아니면 동양 여자 아이가 하도 이러 저리 뛰어 다녀서 신기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 그러니까 선수들, 취재진들, 행사 요원들, 
악사들뿐 아니라 관중까지도 모두들 나를 좋아했다. 내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어 
가면 관중석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이라니..윽. 생각해 보면 내가 너무 심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지만 난 그때의 내 감정에 충실했던 것이다. 너무나 신기한 것이 
많았고, 궁금한 것이 많았고, 신나는 일이 많았으며, 나는 그 속에서 한 없이 
자유로웠다. 
김피디님은 이런 상황들이 재미있었는지 터키 방송국 피디에게 역으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도대체 왜 여기에 모인 취재진들이 이 동양 여자아이에게 관심을 
갖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 여자 피디 대답이 이랬다.
"일단 동양 여자가 이렇게 활발하고 열성적으로 일하는 모습이 우리들에겐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고, 외국인들이 우리의 오일 레슬링 경기를 이렇게 흥미로워 
한다는 사실이 매력적이며, 특히 영리 (Young Lee 터키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불렀다)씨의 행동이나 손짓, 표정, 웃음이 우리 터키 사람들에게 매우 친숙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결국 이 행사의 홍보담당자가 우리에게 와서 그날 밤에 있는 디너파티에 와 달라고 
몇 번 이나 부탁했었다. 하지만 그때의 우리 촬영팀은 너무나 피곤했고, 우리의 
거처인 이스탄불까지는 여기서 3시간을 또 이동해야 했으므로 경기가 끝나자 마자 
출발해도 늦게 도착할 것이 뻔했으며,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이스탄불을 
촬영해야 하는 부담까지 있어서 정중하게 거절해야 했다.

역시나 경기는 진지하고 치열하다.
오후 2시. 하루 중 가장 더운 때에 경기는 시작한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몸에 
오일을 바르는 것이다. 햇볕에 선수들의 피부가 다치지 않게 하기 않기 위해서 
말이다. 이스탄불에서 이곳 크르크프나르까지 오는 길에 끝없이 펼쳐져 장관을 
이루었던 그 해바라기 밭에 피어난 수 많은 꽃들은 바로 이 오일을 만드는데 쓰는 
것이었다. 
경기장의 규모는 잠실 운동장의 1/2정도. 선수들이 경기를 펼칠 운동장 바닥은 
축구 경기장 같은 잔디밭이고 선수들은 매트위도 아니고, 모래밭 위도 아닌 이 
잔디밭 그대로의 바닥에서 경기를 한다. 
일단 여러 고관과 주요 인사들의 축사가 있고 국민의례가 있고 이어지는 
오스만투르크 궁중악단의 연주가 압권이다. 교향악단과 같은 진지함과 전통 
악기들이 뿜어내는 민족 혼, 궁중악단의 자부심, 화려한 전통 의상과, 완벽한 
리듬의 하모니. 팔과 팔목의 꺾임이 많아 춤을 추는 것 같이 북을 치는 고수를 
중심으로 반 원을 만들어 연주하는 이 궁중악단은 마치 그 부분만 한참이나 시간을 
거슬러 올라, 그 기세 등등했던 오스만투르크 시절로 돌아가 있는 듯 여겨졌다.
드디어 선수들이 경기복(가죽바지)으로 갈아 입고 몸에 오일을 바르기 시작했다. 
나의 일은 여기까지. 일단 경기가 시작되면 취재진들은 경기장 가에 쳐져 있는 
프레스 라인을 넘으면 안 되는 것이다. 피리소리가 삐리리 나면 선수들은 손바닥과 
무릎을 번갈라 치면서 이상한 걸음 걸이로 경기장 안에 들어 간다. 다시 한번 피리 
소리가 삐리리 나면 상대와 손을 마주치고 바로 공격태세를 갖춘다. 선수는 팀을 
나눠 한번에 한 서른 개의 쌍이 경기를 하는데 하나, 둘 승부가 가려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아주 재미있어 진다. 마지막에 남게 되는 팀은 두 사람의 실력이 
막상막하라는 뜻. 어떤 때는 시작한지 20분이 넘도록 싸움을 계속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때는 보기 힘든 테크닉도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4개 정도의 
팀이 경기를 치루게 된다. 그야말로 희비가 엇갈리는 현장. 반은 이기고, 반은 
떨어지고. 한 선수가 본부석에 우승을 알리러 뛰어 가면 다른 한 선수는 애통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탈의실로 돌아오는 것이다. 난 이런 분위기에 익숙치가 않아서 
어떻게 취재를 해야 할지 좀 난감했다. 기쁘고, 또 아픈… 인생은 그런 걸꺼야. 
내가 치뤄야 할 나만의 몫이 있는 것이겠지.

- 아, 나는 오늘 몇km를 뛰었으며, 몇 km를 걸었을까?
팔, 다리 안 쑤신 데가 없다. 
일을 마치고 시원한 Efes 맥주를 한 모금 마시니 온 몸이 축 늘어졌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후회 없이 이곳을 떠나기 위해,
나 자신의 만족도를 시험해 보기 위해,
끊임없이 나를 몰아 갈 것이다.

- 일몰까지도 좋은 하루를 향해 달리고 있구나.

그로부터 나흘 후 경기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우리 촬영팀은 터키의 전국을 
다니면서도 TV와 신문을 통해서 경기의 진행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 
9연패에 도전했던 무스타샤선수는 결승에서 아깝게 새로운 챔피언에서 벨트를 
넘겨주고 말았다.
"전 늘 제가 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지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하지만, 만약 진다고 하더라도 나는 다시 이 경기에 도전할 겁니다."
경기 첫째 날, 무스타샤 선수와 했던 인터뷰. 그의 강인하고 매력적인 눈매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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