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Dongduck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아~아~아) 날 짜 (Date): 1996년02월01일(목) 16시21분45초 KST 제 목(Title): [개그맨 신돈엽 이야기] 이화보드에도 올렸었는데 지워졌군요. 게스트신세가 말이 아니네요. 아무튼 지워지기 전까지 많이 읽히기를 바라면서... ----------------------------------------------------------------- <어머니의 콩나물국 - 신동엽/개그맨> 95년 2월호 가이드포스트 ---------------------------------------------------------------- 희미하게 잠을 깨우는 어머니의 음성이 들린다. 새벽 촬영을 마치고 돌아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채 저절로 깨어질 때까지 세상 모르게 자고 싶었다. 오늘은 촬영도 없는 날인데...그러나 어머니의 끈질긴 "동엽아, 일어나라 어서"라는 말에 이미 잠은 달아난 상태이다. 몸은 피곤에 절어도 어머니의 음성에 잠을 깰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생각하니 당장이라도 부엌에 계신 어머니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리를 박차고 부엌으로 달려나갔다. "네가 왠일이냐?" 어머닌 당신이 깨우고도 의아하게 웃으신다. "우리 어머니 어디로 가 버리셨나 무서워 깼지요. 어머니 오늘 아침은 아들 동엽이가 좋아하는 콩나물국이 어떨까요?" 이미 오늘 아침국은 다른 것으로 끓여져 있었지만 어머닌 흔쾌히 "그러마"하신다. 어머니가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오랜만에 여유로운 아침을 맛보며 난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을 동안의 쓸쓸했던 많은 아침 중에서도 그 날을 떠올려 보았다. ~~~~~~~~~~~~~~~~~~~~~~~~ "달그락 달그락" 새벽부터 개수대 안에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했다. 순간 어머니가 집에 계신가 착각하고 벌떡 일어났다. 부엌을 들여다보니 허리를 굽혀 식사를 준비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쓸쓸했다. 난 기분을 좀 내 보려고 큰소리로 떠들어 댔다. "야, 오늘은 무슨 반찬이에요? 아버지, 죄송해요. 제가 해야하는데.." "이제 엄마 없어도 굶진 않겠지? 오늘은 우리 동엽이가 좋아하는 콩나물 국이다." 죄송한 생각이 들어 난 밀린 빨래를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빨래통엔 일 주일 전에 벗어놓은 양말이 돌돌 말린 채로 그대로 놓여 있었다. "자 시작해 볼까!" 세탁기에 물을 넣고 세제를 타고 그런대로 능숙한 손놀림으로 빨래를 시작했다. 빨래통의 빨래감을 뒤집어 엎어 놓고 한숨 돌리려니 '우리의 만찬'을 알리는 아버지의 목소리.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시원하고 맑은 콩나물국을 떠올리며 식탁에 앉았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아버지, 국이 왜 이렇게 새까맣죠?" "글쎄, 모르겠다. 네 엄마가 하던 대로 했는데." 난 보기에도 이상한 그 까만 콩나물국울 맛있게 먹어 보려 했다. 아버지 역시 "색은 이래도 맛은 괜찮아"하며 열심히 드셨지만 간장으로 간을 맞춘 콩나물국 맛이란! 그러나 식사를 마치고 발견한 내 '작품'은 더 굉장했다. 흰 속옷이 온통 파란색 붉은색 얼룩으로 뒤덮여 있었다. "동엽아, 우린 엄마 없이는 못살겠다. 그렇지? 허허!" 아버지의 웃음엔 서글픔이 잔뜩묻어 있었다. 어머니가 입원한 이후의 우리 생활은 이렇게 거의 엉망이었다. 어머닌 늘 몸이 약하셨다. 가족들은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 보라고 권유 했지만 어머닌 다친 곳도 없이 병원에 가는 것을 돈낭비라고 생각하셨나 보다.그러던 중 그날은 이상하게도 어머니 스스로 병원에 가보겠다며 집을 나섰다.당시 최양락 선배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에 단역을 맡고 있던 난 평소와 다름없이 방송국으로 나와 연습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다. 울먹이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좋지 않은 상태임을 직감했다. 여러 검사를 하고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렸다. 간암 말기였다. 그날 이후, 멀쩡하던 어머니에겐 여러 가지 간암 말기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 했다. 황달에 걸리고 복수가 차고, 항암치료로 머리카락도 다 빠졌다. 같은 상태의 옆 침대 환자들이 입원 중에, 수술 중에 한 명씩 한명씩 영안실로 자리를 옮겨 갔다. 의사의 진단은 3개월! 우리 가족이 중대 결정 을 해야 할 시기였다. 혈관 치료를 받는 도중 피를 한없이 흘리는 모습에 어머니를 그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었다. 남은 기간만이라도 편안하게 해주자는 아버지의 결정에 우리 사남매는 그저 묵묵히 동의할 수밖에 다른 방도를 찾을 수 없었다. 난 밤새 어머니의 병구완을 하다가 방송국에선 횡설수설 농담을 하며 사람들을 웃겨야 했고 단역 신세를 면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다. 처음엔 사경을 헤메는 어머니를 두고 이렇게 농담이나 하며 웃겨 대는 것이 죄를 짓는 것 같았다. 그러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막내 아들을 보며 좋아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더 힘내서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아이고 우리 아들 나왔다. 들어간다." 눈 깜짝할 사이에 카메라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옮겨가지만 어머닌 그 잠깐 동안 비친 아들의 모습에 큰 힘을 얻으시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완치하고 퇴원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고 병원을 나왔을땐 정말이지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하루하루가 힘에 겨웠다. 분주한 하루 스케줄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 발 한 발이 무겁고 두려웠다. 언덕바지에 있는 집으로 올라 가며 '오늘도 무사히 저 위에 어머닌 계실 거야' 하며 매일 기원했다. 내 어깨는 한 짐을 얹어 놓은 듯 무거웠다. 어렴풋이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어릴적 동네인 옥인동 언덕을 올라오던 어 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국민학교 교사의 박봉으로는 장남으로서, 한 집안 의 가장으로서 역할이 버거웠던 아버지. 그런 남편을 돕기 위해 어머니는 시장에서 옷보따리를 풀어 놓고 장사를 했다. 먼저 퇴근한 아버지가 하루 종일 혼자 있던 막내인 내게 저녁을 차려주고, "동엽아, 우리, 엄마 어디까지 왔나 보러 갈까?" 하며 내 손을 이끌었다. 물을 길어다 먹는 펌프장 앞의 키작은 전봇대엔 백열등 하나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가끔은 누나가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지만 대개는 아버지와 다섯살 먹은 나 단둘이 그 아래에 쪼그리고 앉았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어머니는 쉽게 나타나 주질 않았다. 우린 약속이나 한듯 노래를 시작했다. "아름다운 베르멘 맑은 시냇물이 넘쳐 흐르네. 새파란..요르리요 요르리리." 어느새 아버지와 난 흥이 나 목청을 돋우며 더 크게 노래했다. 그러다 저 쪽에서 희미하게 어머니의 모습이 나타나면 노래는 곧 황호가 되고 아버지와 난 달리기 시작했다. 못다 판 보따리의 무게에도 아랑곳 없이 우리를 보는 어머니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셋이 함께 오르던 언덕길. 작고 초라했 지만 '우리 집'으로 돌아가던 그 길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의사가 예정한 3개월이란 시간을 앞두고 언덕을 오르며 한 발에 걱정을 한발에 기도를 실었다. "도와주세요" 사람이 좋고 활동이 좋아 시작했던 신앙 생활. 은혜를 입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회개하기 위해 다녔던 교회. 그러나 난 그 언덕길을 오르며 기적 같은 은혜를 간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닌 하루 종일 성경을 읽고 찬송하고 며칠씩 기도원에 계셨다, 모든 약물 치료를 멈춘 채 그저 믿음만으로 버텼자. 퇴원한 지 5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우리 가족은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가 한때 입원했던 여의도 성모병원을 찾아갔다. 그땐 이미 의사들이 예측한 삶의 기한이 훨씬 넘어선 때였다. "암세포가 거의 없어졌습니다. 이런 일은 몇 천분의 일의 확률도 안되는 일입니다." 겉모습을 보고도 알 수 있을 만큼 혈색도 좋아지고 호전되는 느낌이있었 지만 검진을 통한 의사의 말에 우린 다시 한번 놀라고 감사할 수밖에 없 었다. 어머니를 잃을 거라는 절망 속에 있던 우리 가족은 모두 빛을 얻은 듯했다. 어머닌 더 열심히 감사드리며 기도했다. 더욱 신기한 것은 어머니가 호전되는 시기에 맞춰 한 주가 다르게 나의 인기도가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일주일 내내 막내 아들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만 기다리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몰랐다. 이렇게 어머니의 병의 호전도와 나의 인기는 서로서로에게 힘이 되며 촉진제 역할을 했다. 지금의 목동으로 이사온 지 일년이 되어 간다. 어머니를 다시 얻음으로써 나는 모든 일들에 새로운 의미를 두게 되었다. "어머니, 이리 와보세요. 체육 수업인가봐요." 길 건너 국민학교 운동장에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와 난 오밀조밀 한 아이들과 함께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 어서 밥 먹어. 국 다 식겠다." 난 식탁에 앉았다. 창너머로 아버지를 바라보는 어머니, 그 어머니를 바라보 는 나! 그리고 식탁 위엔 이 행복을 더하는 것이 올려져 있다. 주님의 은혜처럼 맑고 시원한 콩나물 국이!! --------------------------------------------------------------------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쪼록 큰 은혜가 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