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OfKi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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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ultureOfKids ] in KIDS
글 쓴 이(By): shimrox ( 내 삶에서()
날 짜 (Date): 1996년05월21일(화) 23시16분40초 KDT
제 목(Title): [월간 인터넷] KIDS 이야기 (퍼온글)

(주) 정보시대에서 펴내는 월간지 인터넷에 실린 기사입니다.

WEB으로 보고 싶은 분은 다음의 위치를 들리시면 됩니다.

http://www.chosun.com/internetmag/9605/netmania.html


<네티즌의 꿈과 추억을 담습니다.>

국내 인터넷 매니아들이 한번쯤은 머물러간 추억의 공간 KIDS. 국내 최초의 인터넷
BBS인 키즈의 최승규 시삽을 만난 날은 키즈가 주는 이미지 만큼이나 푸른, 봄기운이
물씬 풍기 는 금요일 오전이었다. 우면동에 있는 한국통신연구개발원 2층
컴퓨터시스템실. 연구개발원내 모든 컴퓨터시스템을 관리하는 이 곳에 키즈를
움직이는 시스템과 그 운영자인 최승규 시삽이 있다. 

 91년 4월 ISS로 시작된 키즈 

오랜 매니아들은 물론이고 인터넷을 꾸준히 사용해온 네티즌이라면 키즈에
빠져보지 않은 이가 없을 만큼 인터넷에서 키즈는 특 별한 곳이다. 단순히 국내
최초의 인터넷 BBS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 KIDS(Korea ISDN Data
Servece)의 모태는 91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통신 연구개발단 ISDN 연구실 전임연구원이던 조산구 씨가 ISDN
응용서비스의 하나로 만든 ISS(ISDN Service System) 가 바로 키즈의 전신이다.
처음 4개월간은 인터넷과 연결되지 않은 일반 BBS 형태였던 ISS는 5개월 후인
91년 9월 국내 최초의 인터넷 BBS로 모양새를 갖추게 된다. 
그후 94년 여름 미국 텍사스 A&M대학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 조산구 연구원을
대신해 키즈를 맡아줄 시삽이 필요했고 평소 조산구 씨와 친분이 있으면서
키즈에 애착이 남달랐던, 그리고 한국통신연구개발원내 컴퓨터시스템
운영관리를 맡고 있던 최승규 씨가 아이들(KIDS)의 아버지 역할을 맡게 된다. 

인터넷에서 처음으로 한글 서비스가 가능했던 키즈는 그후 한국과학기술원의
ARA(아라)를 비롯한 수많은 BBS들을 생겨나게 한, 한국 인터넷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존재이다. 특히 해외 유학생들에게는 인터넷을 통해 유일하게
한글로 고국의 소식을 접 할 수 있고 한국사람을 만나 대화할 수 있었던
곳이어서 유학 생활의 외로움과 고국의 향수를 달래던 곳이기도 했다. 유학생들
뿐 아니라 국내 인터넷 매니아들에게 키즈는 온라인상의 추억의 보금자리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KIDS를 키워가는 최승규 시삽. 그가 시삽을 맡고 있지만 그에 대해 잘 아는
이는 드물다. 그가 30대 후반, 두 아이의 아버지라 는 사실을 아는 이는
손가락으로 꼽는다. 키즈가 오늘에 이른 것은 초기 개발자인 조산구 씨의
노력은 물론이지만 지난 3년간 시 삽을 맡아온 최승규 씨의 노고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키즈를 움직이는 힘은 '자유' 

시삽을 맡을 당시인 94년 3200명 수준이던 회원수가 지금은 6400여명으로
늘었다. 동시 사용자수는 약 250명 정도. 키즈가 이렇 게 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이들은 키즈에서 배어나오는 '자유'를 그 이유로 꼽는다. 

최 시삽의 스타일은 한마디로 '자유방임형'. 그는 지난해초 누구라도 제한없이
자신의 생각과 글을 익명으로 올릴 수 있게 한 ' anonymous 게시판'을
개설했는데, 이는 키즈의 매력이자 BBS가 활성화된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BBS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키즈는 시삽이 주도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죠. 인터넷이 지향해온 정신처럼 자유롭게 자 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시삽의 간섭이 가장 적은 BBS가 비로
키즈이다. 사람을 만나 고 새로운 정보를 얻는데에 제약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시삽은 단지 환경과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이에 불과하므로 간섭은 적
을수록 좋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키즈는 학교별로 활성화된 다른 BBS 보다는 학생과 일반인의 구분없이 활발히
움직인다는 점도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키즈내에도 학교별 게시판을
만들어놓긴 했지만 대학생들만을 위한 인터넷 BBS라는 분위기는 거의 느낄 수
없죠." 

현재 키즈는 해외 회원이 약 30%, 국내 회원이 70% 정도다.
물론 학생이 대다수이고 회사원은 30%이다. 그래도
초창기에 비하면 직장인의 비율이 상당수 증가한
셈이다.과거 대부분 학생이었던 키즈의 멤버들이 이젠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사회 각분야에서 제몫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시삽으로서 흐뭇함을 느낀다. 그들이
모이면 "초창기 키즈 멤버들이 모이면 웬만한 기 업 하나는
차릴 수 있겠다"며 웃기도 한다고. 

키즈에는 여성회원들의 움직임도 활발한 편이어서 전체 회원중 약 40%를
차지한다. 회원증가로 인해 초창기 문화와 달라진 점이 라면 예전의 가족적인
분위기가 대중적인 형태로 변해간다는 점이다. 대중화가 나쁜 건 아니지만
예전의 가족적인 분위기를 간직 한채 발전해가기를 바라는 게 시삽으로의
바램이다. 그래도 회원들 스스로가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마움을 느끼기도 한다. 

 ETRI 거쳐 KT에온 통신 토박이 
 시간나면 사진 즐기는 탁트인 30대 후반 

그가 인터넷을 사용하기 시작한 건 90년 연구망 시절부터다. 정보통신 관련
분야가 전공이어서인지, 82년 한국전자통신연구소에 들어가 일한 바 있고 84년
1월 한국통신 컴퓨터시스템부로 옮겨왔다. 직장이 통신관련 연구소다보니
통신환경은 자연스레 갖춰 졌고, 일반인들 보다 훨씬 수월하게 인터넷과 접하게
됐다. 한국통신에 들어온 그해에 결혼했으니 그의 결혼생활도 벌써 12년째 를
맞는다. 

그가 한국통신 연구개발원에서 하는 일은 연구원내 컴퓨터시스템의 운영이다.
연구원내 문서유통이나 사무자동화, 공용 유닉스 머신, 자택 서비스 지원용
시스템의 유지보수 관리를 맡고 있다. 

그의 취미는 사진이다. 틈이 나면 카메라를 메고 들로 산으로,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아이들과 다닌지 벌써 5, 6년째 됐다. 하 지만 갈수록 그런 여유를 찾기
힘들다. 회사업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업무외에 처리해야 할 일들이 폭주하고
때로는 회원들의 요 구가 시삽의 능력을 넘어설 때, 일처리가 마음먹은 대로
원활히 안돼 회원들의 요구를 다 수용할 수 없을 때 그는 가장 속이 상 한다.
하지만 부시삽(보드지기)들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도와주고 있어 키즈가
운영된다고 고마움을 표시한다. 

그의 키즈 접속시간은 평균 4시간쯤 된다. 어쩌다 채팅방에 들어가면
인사하느라 볼일을 못볼 정도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는 쏟아지는 메일로 인해
업무가 마비가 될 정도였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매월 1,2,3일까지만 메일을
받기로 했다. 그래도 300여 통의 메일이 시삽 앞으로 오기 때문에 매월 1일부터
사흘간은 쇄도하는 가입신청 메일을 처리하느라 밤을 꼬박 세우기 일쑤다.
연예인을 능가하는 열성팬(?)들의 팬레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대부분은
ID개설 요청이 주류를 이룬다. 

키즈 회원들 대부분이 그의 나이를 알지 못한다. ㅈ고 신선한 키즈의 분위기를
흐릴까 염려해서인지 그는 처음에 나이 밝히기를 꺼려했다. 30대 후반을 훌쩍
넘은 그이지만 젊은이들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자유분방한 시삽이며, 서바이벌
게임을 즐기는 이른바 '개싸움 모임'에도 나가고, 포켓볼도 즐길 줄 아는 탁 트인
30대 후반이다.

1년에 한번 겨울에 정기모임을 갖는 키즈는 여름이면 체육대회를 비롯한
비공식 모임이 활발하다. 주로 해외에 있는 회원들이 긴 여름방학을 이용해, 또
키즈 모임을 빙자해서 한국에 들어온다. 오는 여름에는 키즈의 대부인 조산구
씨가 온다고 하니 이번 여름 모임은 여느 때보다 더 화기애애할 것 같은
느낌이다. 

 매니아들의 사랑과 추억이 깃든 곳 
 푸르고 순수한 꿈을 키우는 KIDS

그의 컴퓨터앞에는 마치 인디안 부족 어린아이들의 장난감 같은 토속적인
분위기 부메랑이 놓여 있다. 지난 1월 키즈 정기모임 때 호주에 사는 회원이
선물한 것이다. 해외 각국에 살고 있는 키즈 회원들은 서로 얼굴은 몰라도
'키즈'라는 단단한 끈이 있어 필요할 때마다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한번은 그가
컴덱스쇼에 출장을 갔을 때다. 미국내에는 연고가 없어 LA에 사는 키즈 회원들
에게 메일을 보내 안내를 부탁했다고 한다. 얼굴도 모르는 처지이지만 키즈라는
인연으로 인해 미국 여행 기간동안 친절한 안내 를 받았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최 시삽이 가장 행복한 때는 언제일까. 물론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다.
요즘은 가족과 지내는 시간이 늘 부족해 미안한 맘 뿐이다. 아이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늘 긍정적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갔으면 하는 것인데, 막내가 몸이
약해 늘 걱정이다. 아 이들에게 좀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는 미안함이 늘
마음 언저리에 남아 있다.

"인터넷의 붐으로 많은 이들이 접할 수 있게 된 건 바람직한 일지만 아직은 통신
환경면에서 미흡한 점이 많고, 사용자 역 시 제대로 알고 쓰는 이들은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이 대중화되고 발전하면서, 때로는 인터넷이
외설적인 정보의 온상 으로 잘못 알려지는 점이 안타깝기도 하죠. 

하지만 인터넷이라는 공간속에서 서로의 생각과 정보를 주고 받고
상호공감대를 형성해가는 것, 이것은 제가 느낀 인터넷의 가 장 큰
매력이었습니다. 인터넷과 관련해 많은 분들이 긍정적인 사고와 희망을 갖고
있으니 한국 인터넷에 대한 미래는 밝다고 자 신합니다." 

본인이 느끼기에 너무 고지식한게 흠이라는데, 그를 만나보면 알겠지만 차분한
분위기에 어린애 같은 순수함이 언뜻 보기에도 ' 고지식함'이 느껴진다. 역시
키즈의 시삽을 맡을 만하다. 어린시절 이웃에 사시던 선생님 한분을 무척
따르고 존경했던 기억이 있는 그의 장래희망은 선생님은 아니었지만 자상한
어른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는 어린시절의 장래희망을 이룬
셈이다. 6400여명의 아이들을(KIDS)을 돌보는(?) 어른이 됐으니, 게다가 전혀
잔소리나 간섭없이 자유분방한...... 

 회원 모두가 꾸며가는 꿈의 광장으로 

키즈에는 아직 어린이 관련 동호회나 게시판은 없지만 Hope for the
kids(어린아이에게 희망을)라는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대 대적인 운동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 처한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하는 행사인데 현재
계획중이다.

시삽으로서 키즈에 대한 계획이 있다면 물론 회원들에게 보다 나은 환경을
제공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동안 키즈는 많은
분들의 관심과 애정으로 성장해왔고 이는 모든 사용자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 바램이라 면 보다 나은 서비스를 위해 회사에서 시스템
업그레이드에 적극 협조해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키즈를 조금
더 키웠으면 하는 마음이고 또 키즈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좋은 인터넷
BBS들이 생겨 함께 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스팍10에서 운영중인 키즈 서버는 시스템 한계로 인해 서비스가 원활하지
않거나 회원들의 요구를 다 못들어 줄 ㄸ 가장 안타깝 다. 시스템이
업그레이드되면 할 일이 많다. 회원들의 개인 홈페이지 제작도 해주고 싶고,
유익하고 흥미로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보고 싶기도 하고, 머리속이 복잡하다.
시삽다운 고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키즈 가족의 일원으로 영원히 남고 싶은 마음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키즈
회원들이 사회에서 자리잡아가는 걸 보는 것이 그의 커다란 기쁨중 하나다.
마치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처럼 말이다. "키즈는 여러분 모두가
꾸며가는 꿈의 광장이 라고...늘 생각합니다."

국내 인터넷 매니아들이 거쳐간 추억의 보금자리, 네티즌들의 언제나 푸르고
순수한 꿈을 키워가는 곳, 바로 키즈에 붙여주고 싶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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