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OfKi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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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ultureOfKids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 강 민 형)
날 짜 (Date): 1996년05월13일(월) 15시03분44초 KDT
제 목(Title): [의대시리즈] 13년간의 사랑 


  [ SNU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 강 민 형)
  날 짜 (Date): 1995년09월12일(화) 04시50분27초 KDT
  제 목(Title): 우선... 좀 오래 된 이야기부터... 


우리는 아울로스에 갔었다. 

자정이 지나고 1시가 넘도록 마시고 또 마시면서 

13년을 끌어 온 용준이의 사랑을 이야기했다.


녀석이 정민이를 '찍은' 것은 의예과 1학년 때.

늘 정민이 주위를 뱅뱅 돌며 말없는 호소를 정민이에게 실어 보내기를 6년...

그러나 정민이는 그런 용준이의 마음을 알면서도 

졸업과 동시에 성규와 결혼했고

그날도 우리는 아울로스를 찾아 용준이의 씻겨내린 6년을 위해 잔을 부딪쳤다.


정민이는 아이를 둘이나 키우는 주부 의사가 되었고 

성규는 레지던트를 마쳤다.


지난 겨울, 왜 아직 결혼 안 하냐는 내 물음에 

'그러는 넌 했냐.' 라며 산낙지를 씹던 용준이의 눈빛은 

정민이를 향하던 그 6년간의 뜨거움이 하나도 식지 않았음을 보여주었고...


엊그젠가 한밤에 요란하게 울린 전화,

성규가 머리를 심하게 다쳐 입원했다는...

내가 그를 찾았을 때 이미 성규는 뇌사 상태로 빠져들고 있었다.

좌측 전두엽과 측두엽을 거의 다 들어내는 뇌수술을 받아 

회복되더라도 언어장애가 올 것임에 틀림없고 

어쩌면 식물인간이 되어야 하는 그는 더 이상 내과의사가 아니었다.


결혼 후 7년, 이미 친구의 아내가 된 정민이는

넋이 나간 모습으로 병실을 지켰고

친구들이 모두 성규와 정민이를 걱정하고 있는 그 웅성거림 속에서

나는 용준이의 타는 듯하던 눈빛을 떠올리고

남몰래 죄스러움에 몸서리쳤다.


용준이는... 돌아올 것인가

다시 정민이에게 손을 내밀 것인가.

어째서 나는 지금 성규보다도 

13년을 골돌아 흘러 온 용준이의 사랑을 먼저 생각하는 것인가.


아울로스의 어두운 구석에서 

우리는 떠들썩하게 잔을 들었다.

내 눈에 괴어 넘칠 듯한 눈물은 

성규를 위한 것도, 용준이를 위한 것도 아니다.

누구에게도 내놓고 말하지 못할 사랑에만 예민한 

유치한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그 부끄러움이 울고 있었다...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 SNU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 강 민 형)
  날 짜 (Date): 1995년09월12일(화) 05시30분21초 KDT
  제 목(Title): 다음... 그 뒤의 이야기... 



"민형이니? 나 용준이다."

"웬일이냐? 이 시간에..."

"나... 약혼한다... 일요일에. 놀러 와..."

"......"


수화기를 내려놓고서 웃었다. 

녀석은 서두른 걸까.

정민이에 대한 미련의 싹이 다시 자라는 것이 두려웠을 게다.

한동안 결혼 안 할 것같던 녀석이 선 본 지 2주만에 약혼을 선언하다니...


장마비가 퍼붓던 어느 주말, staire는 함을 지게 되었다.

좋은 날 언성 높이고 얼굴 붉히는 건 피차 원하지 않는 일이라 

함은 쉽게 쉽게 들어갔고

우리는 아울로스 대신 그 아가씨의 집에서 다시 잔을 들었다.


11시... 다들 추스리고 일어나는 시간에 용준이가 어깨를 짚는다.

"넌 조금 기다려라..."

"?"


꼬냑을 두 잔 이상 마시면 즐길 줄 모르는 거라던가?

그러나 우리는 2시간동안 둘이서 두 병을 비웠다. 두 시간, 둘이서, 두 병...


"무슨 얘길 하고 싶어? 신부 댁에 실례일텐데..."

"괜찮아. 지금 친구들이랑 함 열어보고 있으니까 한참 걸릴 거야.

여자들은 보석이나 옷 보는 게 재미있는 모양이지?"

"......"

"민형이 너... 앙드레 말로의 인간 조건... 기억하냐? 거기 배경이 어디더라?"

"상해... 서구화의 물결을 제대로 타지 못하고 뒤뚱거리던..."

"오늘 저녁 이 집은 어때?"

짜식... 알 것도 같다. 


그 시절을 배경으로 한 중국 영화는 

한결같이 화려하지만 어딘가 텅 비어 있는 상해를 배경으로 삼아 

떠도는 인간들을 그리고 있지.

함에 든 것은 한복과 비녀, 반지, 노리개...

그렇지만 둘이 마주 앉아 마시는 테이블에는 꼬냑과 훈제 연어. 치즈와 아몬드.

'복'자가 새겨진 은수저와 미끈한 곡선의 포크...

양복에 금시계를 찬 용준이와 

가짜 달비에 댕기를 드리고 한복을 입은 그 아가씨...


"그래서... 넌 동서양 문화가 억지스럽게 짜맞춰진 결혼 풍속이 불만이냐?"

"아니... 처음엔 뭐가 불만인지 몰랐어. 그냥 싫었지..."

"......"

"이제는 알겠어... 이건... 졸부들의 돈지랄이야..."

저 녀석... 자기 장인어른을 향해 졸부라니...

"내가 왜 이런 비싼 양복에 금시계를 차야 하지? 

내 능력으로는 어림없는 패물을 뭣때문에 선물하는 거지? 

이건... 단지..."


그래... 무슨 말인지 안다. 

의예과 시절, 아침마다 서로 다짐하던 

'후진국 학생은 5시간 이상 잠을 자면 안 된다...' 

'후진국 학생은 하루에 8시간 이상 공부해야 한다...' 

치기만만하지만 맑았던 우리의 눈은 어느새 꼬냑 위에 흐릿하게 비치는구나...


"용준아..."

"......?"

"하지만 네 결혼이야..."

"알아... 너는 정민이 때문에 더 걱정스러운 거지?"

"......"

"걱정하지 마... 내 결혼을 소중하게 지킬 거야."


그래... 깨끗이 씻겨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

같이 씻어내볼까?

......


둘이는 밤새 퍼붓는 빗속을 같이 걸었다.

용준이의 새 양복과 staire의 윗주머니에 든 디스켓이 후줄근해지도록...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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