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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ultureOfKids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 강 민 형)
날 짜 (Date): 1996년05월13일(월) 11시27분38초 KDT
제 목(Title):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작년 겨울, 서울대 보드에 올린 글입니다.


  [ SNU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 강 민 형)
  날 짜 (Date): 1995년11월25일(토) 17시24분54초 KST
  제 목(Title): 김광규의 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김영삼같은 엉터리 선배가 아닌 진짜 서울대 동문 선배 김광규 시인이 79년 
  
창비에 게재한 글이다.

시인 김광규는 1960년 4.19 당시 문리대 독문과 1학년에 재학중이었다. 미학과의

김지하, 독문과의 김주연, 이청준, 영문과의 박태준, 정규웅, 불문과의  김태주, 

김현, 김승옥등 굵직굵직한 이름들을 그의 동기 명부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시에서

'우리'라는 애매한 이름으로 통칭되는 이들이기도 하다. 

이 철없는(?) 학생들이 책을 옆에 끼고 담배를 뻐끔거리며 다니기도 하고 때로는

격한 외침으로 시위에 참가하기도 했던 60년의 대학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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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을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 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우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이제 아무도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각자의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우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여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이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아직도 남아 있는 몇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자국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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