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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leat ()
날 짜 (Date): 2003년 6월 27일 금요일 오전 03시 29분 37초
제 목(Title): 건담시드평


 2002년 9월에 쓴 글이군요. nKino에서 잠깐 끄적거리다가, 재미있어서

퍼왔습니다. 역시 애니메이션/영화 평가는 아무나, 아무때나 하는게 아니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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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담 Seed> - 건담의 씨가 마르는 그 날까지 갈 것인가.
 
이상언(e-Writer) 2002.09.06


다시 건담이다. 선라이즈가 다시 한번 건담에 손을 대고 말았다. 퍼스트 건담의 
초반 도입부를 그대로 가져오고, <신기동전기 건담W>에서 맛을 본 5대의 건담의 
아이돌 컨셉을 그대로 가져왔다. 그것은 패러디나 오마쥬가 아니다. 치밀하지도 
않은, 집요하기만 한 장사속이다.

아직 작품이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함부로 논평한다는 것은 위험하고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무수한 요리만화에 나오는 레파토리처럼, 아무리 이상한 
냄새가 나고 색깔이 퀴퀴하더라도 일단 입 안에 넣어봐야 한다. 그래야 입 안에 
천국이 펼쳐지는 느낌도 느낄 수 있고, 손뼉도 치고, 고향의 어머님 얼굴도 눈 
앞에 아른거리고 그러는 법 아니겠는가.

허나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요컨대 환상의 요리는 대부분 재료나 재료기법을 
숨기는 법이다. 그래서 겉보기에 고약해도 재료가 무언지 몰랐다던가, 재료를 
알았더라도 조리법을 몰랐기에 그 숨겨진 진미에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건담 Seed>의 문제는 재료와 제작법을 불 보듯 뻔하게 볼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공식 홈페이지와 전문지에 공개된 보도자료를 통해 보이는 스탭들의 
익숙한 이름과 방식은 과거의 여러 작품을 통해 익숙한 스타일을 그대로 
재현하여 팬들에게 식상한 느낌을 주고 있다. 심지어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메카닉 디자이너인 오카와라 쿠니오는 한때 존경받았던 자신의 디자인들을 
악습처럼 재반복하는 바람에 자신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결과까지 가져왔다. 
글쎄, 지금의 어린 시청자들이야 그런 점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 이후의 일은 아무도 책임지지 못 할 것이다. 스탭이나 컨셉이 
구태의연하더라도 제작 과정에서 활력이 불어넣어진다면 전혀 다른 파장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옹호세력과 거부세력이 극명하게 갈리는 이전의 
건담들도 그랬다. 건담 파이트라는 상식파괴적인 아이디어를 독특한 감각으로 
풀어나간 <기동무투전 G건담>이 그랬다. 아이돌과 비쥬얼적 이상을 구체화시킨 
낭만적 스토리와 캐릭터 관계도의 <신기동전기 건담W>가 그랬다. 건담이라는 
존재 자체를 뒤집고 들어온 <턴A 건담>이 그랬다. 선라이즈의 이러한 시도는 
80년대에 절정기를 보여주었다. 다양한 로봇들이 다양한 이야기와 스타일을 
가지고 등장하여 로봇 애니메이션의 황금기를 가져왔다. 다그램, 드라구나, 
자붕글, 그 로봇들은 모두 건담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고, 건담 이상의 
의미를 가진 애니메이션 캐릭터였다.

애니메이션과 세상이 변하면서 선라이즈의 방식도 변했다. 용자물로 칭해지는 
장르의 블록 형태의 합체로봇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전면에 내세우고, 과거의 
유명작 건담의 이름을 빌린 새로운 형식의 로봇들을 만들어냈다. 전혀 다른 
이름과 설정을 가진 로봇들이 나오던 자리를, 건담이라는 가면을 쓴 로봇들이 
대신하게 된 것이다. 90년대의 건담들이 이전의 건담과 전혀 다른 스타일을 
보여줬던 것은, 다그램이나 자붕글, 단바인이 설 자리에 서야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건담 Seed>를 보며 이제 그 건담이라는 유명배우마저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건담이라는 이름은 이제 끊임없는 
복사로 원본은커녕 글씨마저 알아보기 힘든 A4용지를 보는 듯한 처량함마저 
느껴지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90년대 후반 게임으로 일으킨 건담의 유행은 
프라모델 시장 구조에마저 변화를 일으켰다. 줄임말로 건프라(Gunpla)라 
불리우는 프라모델들은 프라모델 시장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고 소비량을 
급증시켰다. 그러나 건프라는 프라모델계에 있어 양인 동시에 음인 존재이다. 
시장은 확대시켰지만 질적으로는 향상되었다 보기 어렵다. 프라모델의 질은 
나아졌지만 모델러의 마인드는 오히려 후퇴했다. <건담 Seed>의 최초의 
프라모델 시리즈는 300엔으로 가격이 책정되어 있다. 더 없이 저렴한 
가격이지만 그 결과물의 수준을 짐작하면 긍정적인 형태라 볼 수는 없다. 
건프라의 존재는 이제 프라모델계를 되려 쇠태시키는 존재가 되고 만 것이다.

우리는 긍정적 위치에 도달해 있던 존재가 발전적 성장없이 자기 복제를 
계속하다가는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태권 V> 시리즈를 회상해 
보자. 탄생과정에서의 복제성과 비도덕성, 환경의 열약성은 논외로 치고(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오고갔다), 이 작품의 긍정적 존재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자. 
태권 V는 한국 로봇 애니메이션계의 로봇대전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소년들이 
여름방학을 기다리게 만드는, 이번엔 어떤 적 로봇이 나오며, 어떤 싸움을 
펼칠지, 태권 V의 모습은 어떻게 변할지를 기다리게 하는 점은 로봇대전을 
기다리는 지금의 모습과 비슷한 것이었다. 그러나 태권V는 그 많은 지지와 성장 
가능성을 활용하지 못 하고 무너져 갔다. 우리와 비슷한 상황을 꾸려나가는 또 
다른 차원의 세상에서는 태권 V가 지금도 커다란 시장을 꾸려나가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우리 세상의 태권 V는 끝없는 자기복제를 반복하다가 영원히 
잠들고 말았다.



우리는 깊은 심연 속에 잠들어 버린 태권 V를 인양하기 위해 그렇게도 부던히 
노력하며 일본의 애니메이션 시장을 부러움과 질투어린 시선으로 올려 보았다. 
우리에게 저들의 시장만 있었다면, 저들의 사회적 명성만 있었다면, 저들의 
자본만 있었다면 태권 V를 끌어올릴 수 있으리란 생각에 안타까움과 사회적 
불만은 쌓여만 갔다. 우리도 어서 일본 애니메이션을 따라 가자는 의욕도 
늘어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가 일본 애니메이션을 닮는게 아니라 일본이 우리 
애니메이션을 닮아가고 있다. 태권 V가 그렇게 심연 속에 가라앉은 것처럼, 
지금 건담이 죽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팬들의 가슴 속에서 살아갈 건담이라는 
노병이 힘든 밥벌이에 나서서 죽음을 재촉하고 있다.

건담, 그 마지막 명성과 가치의 씨가 마르는 날이 코 앞까지 다가왔다. 
선라이즈의 개발회의에서 그 이름을 거론하는 것 만으로도 '이제 그 
애니메이션은 장사가 안 되서...'라는 부정적 반응을 얻으며 보톰즈, 라이징오, 
엘가임과 같이 나란히 퇴물창고에 들어갈 날이 다가오는 것이다.

건담 Seed(씨)라는 작품명이 운명을 암시하는 저주와도 같은 느낌을 주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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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nkino.com/NewsnFeatures/article.asp?id=8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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