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omicsAnim ] in KIDS 글 쓴 이(By): clone (한시적좌파) 날 짜 (Date): 2003년 11월 8일 토요일 오전 04시 13분 09초 제 목(Title): 사형수 042 저는 왠만하면 만화 이야기는 잘 안하려 합니다. 왜냐하면 현재 만화를 보는 루트가 스캔본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죠. 사실은 애니보다 만화를 더 좋아하는 편이고, 이야기를 하자면 만화 쪽이 더 풍부하게 할 수 있지만 정당한 방법이 아니라는 양심이, 그리고 스캔만화는 진짜 만화가 아니라는 믿음이 말을 못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만화는 역시 책으로 봐야 하는 것입니다! T_T 어째서 스캔본 밖에 못보냐 하는 것은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실 것입니다만... 독어판 만화들도 꽤 나와 있지만 독어 잘 하지도 못하는데다 일어를 독어나 영어로 번역했을 때의 그 어색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으므로 여기선 책 볼 생각도 안나는군요. 잡설은 이만 하고... -_-;;; 여기서 논할 만화 '사형수 042'는 제목만 봐도 아시겠지만 사형수의 이야기입니다. 사형제도를 폐지하게 된 나라에서 사형수에 대한 형벌을 민간봉사로 대체하는 제도에 대한 실험을 하게 되는 이야기이지요. 이 만화의 주인공 타지마 료헤이는 수인번호 042, 일본어로 읽으면 'おしに' 로서 'お死に' 곧 '죽음'과 같은 발음입니다. 참 상징적이죠? ^^;;; 그는 아무도 없는 독방에서 신체의 자유도 구속된 채로 오로지 콘크리트 천장만 처다보며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에게 어느날 제의가 들어옵니다. 뇌 속에 칩을 박아 넣고 밖에 나가서 살지 않겠냐고. 다만 범죄를 저지를만한 흥분상태가 되면 그게 폭발해서 죽게 됩니다. 그에게 어떤 선택이 있었을까요?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선 그와 같은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풀려나 9년만에 보는 푸른 하늘과 꽃을 보면서 그는 30년 생애 처음으로 눈물을 흘립니다. 자유의 소중함, 사회 속에서의 생활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경우는 다르지만 저도 제대하던 날 하늘 빛깔도 달라보였더라지요. ^^;;; 그렇게 밖에 나온 그는 고등학교에 배치되어서 용무원 일을 하게 됩니다. 사실 이것도 실험의 일환으로 보다 많고 다양한 사람들과 접촉하게 하기 위해 의도된 것입니다. 감방에선 나왔지만 그는 아직도 수인 신분입니다. 규칙도 교도소와 다를 것도 없지요. 6시 일과 후엔 방에서 철저히 대기, 자위행위도 금지. -_-;;;;;; 이후 이 만화는 그가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눈먼 소녀와의 만남, 화단을 가꾸며 느끼는 삶의 보람, 아름다운 유부녀와의 로맨스 -_-;;; ...... 사형수도 인간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당연하지 않은게 현실이죠. 사형수는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고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 것입니다. 토끼 한마리를 찾기 위해 몇분을 초과했을 뿐이지만 료헤이는 경관들에게 붙들려 비오는 진흙탕에 처박히고 개처럼 끌려갑니다. 국가권력이란 것의 잔혹함을 이보다 명료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겠지요. 그러나 그러한 엄혹함이야말로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 요소일 것입니다. 맹인소녀 유메와의 만남은 그에게 아주 큰 의미를 갖습니다. 처음으로 접촉한 사회인이라는 것, 그리고 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서요. 유메가 신체적 장애인이라면 료헤이는 사회적 장애인입니다. 그리고 그때문에 남의 도움 없이는 사회와 접촉할 수 없다는 것도 같습니다. 뒤에서 남들이 수근거리는 것까지 같군요. 둘이 만나게 되는 계기인 화단은 그들의 그런 아픔을 달래는 유일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런 화단에서 불량학생이 짓밟아버린 꽃의 죽음을 보며 눈물 짓는 료헤이. 이 장면에선 저까지 울컥하더군요. 생명이란 소중한 것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사형 찬성론자입니다. 죄는 벌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사형반대론 쪽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면서 살짝 눈물지으면서도 '대통령은 왜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가.' 하고 따지는 사람이 접니다. -_-;;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원칙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며, 가해자의 인권보다는 피해자의 인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 만화는 지나치게 감상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뭐 사형폐지론자들이 내세우는 가장 큰 근거가 인간적인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니 이상할 것은 없겠지요. 다만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피눈물을 다시한번 떠올려 보기를 바랄 뿐입니다. 한가지 또 생각해 보자면 비용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 만화에서 료헤이 한명을 교화시키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니터 장비 임대 또는 구입비용, 모니터요원의 인건비, 항시 대기시켜야 하는 경관의 인건비, 뇌수술에 필요한 비용, 주민들에 대한 홍보비용, 사형수와 모니터요원이 거주할 집의 임대비용... 네, 한마디로 사형시키는 데 드는 비용의 수백배가 들겠군요. 어떻게 보면 사형이란 국가가 집행하는 형벌 중에서 가장 비용이 싸게 먹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중세와 고대국가에선 사형이 그렇게 많았는지도 모르죠. 참으로 비정한 이야기입니다만. 돌이켜보면 사형제도와 경제성의 문제는 그리 멀리 떨어진 문제가 아닙니다. 길로틴이 나온 것도 사형집행을 '쉽게', '경제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것이었죠. 사형 찬성론자들의 논거 중 하나가 국민세금을 범죄자 먹여살리는 데 쓸 필요 있냐는 것이니, 어쩌면 인간의 목숨은 돈으로 칠 때 그리 값지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써놓고 보니 씁쓸합니다만. 소설이든 만화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은 '형식은 가볍게, 내용은 무겁게' 입니다. 사자성어식으로 표현하자면 表輕裏重이라고나 할까요. 다나카 요시키의 소설을 가장 좋아하는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이 만화는 진지한 주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녹아 있는 작가의 위트는 상당히 산뜻하고 재밌습니다. 그림체도 산뜻하고 가벼운 편이구요. 가끔 있는 개그신도 괜찮았습니다. 작가 자신의 말을 빌리면 이 만화는 판타지이고, 실제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담긴 진실은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참으로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만화는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아직 두권 밖에는 안나왔지만 말이죠. '사형수 042' 적극적으로 일독을 권합니다. ps. 맹인소녀 유메와 불륜 유부녀(--;) 아야노 씨는 상당히 미인입니다. ^^a;;;; ----------------------------------------------------------------------------- " 날지 않는 돼지는 그냥 돼지일 뿐 " - Porco Rosso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