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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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guest)
날 짜 (Date): 1996년04월24일(수) 10시22분31초 KST
제 목(Title): 법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
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
겠나이까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하여 예수를 시험함
이러라 예수께서 몸음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
라 하시고 다시 몸음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저희가 이 말씀을 듣
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
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
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
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라] (요 8:3-11)

요한 복음 8장에서는 예수님께서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정죄하지
않고 보낼수 있었던 깊은 이유와 뜻을계속 살펴보고 있읍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그의 거룩하심을 방해받지 않으면서도 우리를 사랑하
수 있고 죄를 처리하실 수가 있었읍니까?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법궤 속
에 들어 있었던 돌비와 만나와 싹난 지팡이로 대별된 인간의 인간된 것들
이 어떤 것들인가를살펴보고 있는 중인 것입니다. 우리는출애굽기 25장에
있는 말씀을 통해서속죄소가 법궤 위에 있음으로 말미암아 일년에 한번씩
대제사장이 갖다 붓는 피가 법궤를 덮을 수밖에 없던 상징들을 이해하고
있읍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싹난 지팡이에 관해서는 민수기 16장과 17장
에 걸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건을 제대로 이해할때 비로소 법궤 속에
데다 세 가지 물건을 간직해야 하ㅆ던 이유와,그것이 얹혀짐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아름답게 해결되는가 하는 것도 아울러 이해될 줄 믿습니다.
민수기 16장을 보면 이런 기록이 아놉니다.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
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외에 택
함을 받은 자 곧 회중에 유명한 어떤 족장 이백 오십인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리니라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요호와의 총외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민 16:1-
2)
여기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당을지어서 그들을 좇는 이백 오십
인의 족장과 함께 모세와 아론을 거스렸던 사건이 나옵니다. 모세가 하나
님께서 과연 누구를 선택하셨는지 보자 하며 너희는 너희끼리 향로에 불을
담아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라고 합니다. 15절 이하를 보시면 그들이
하나님 앞에 향로를 가지고 나왔다가 향로에서 나온 불이 오히려 그들을
소멸시킨 하나님의 저주를 보게 됩니다. 또한 고라와 그의 자손들과, 백
오십인의족장이 하나님의 싶판 아래 어떻게 무너졌는가 하는 것이 나오고,
그 후에는 아직 남아 있는 다단과 아비람이 백성들이 떠난 이후에 지진이
일어나서 산채로 땅속에 묻혀 버리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읍니다.
41절부터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멸망한 후의 백성들의 반응이 나
옵니다.
"이튿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가로되 너희
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도다"하고 회중이 모여 모세와 아론을 칠때에 하
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면서 그들에게 염병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17장에서
는하나님께서 친히 이 백성들을 이대로 내버려 두었다가는 다 죽게 되겠으
므로 각 지파에게 지파대로 지팡이를 가져 오도록 명하여 하나님께서 어느
지파 누구를 선택하셨는지를 알게 하도록 행하심니다. 그래서 법궤 앞에
각 지파대로 이름을 쓴 지팡이를 두게 됐는데 다음날 보니 아론의 지팡이
에만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 열매가 맺혔고 나머지 지팡이는 그대
로였읍니다.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선택하셨다는 것을 백성들로 하여
금 알게 하신 것입니다. 계속해서 17:10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읍니다.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지팡이는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
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패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개 대
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지니라"라고 하였읍니다.
이렇게 지금까지 우리는 싹난 지팡이가 어떤 사건과 경위를 거쳐서 법궤
속에 들어가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았읍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 이 사건에 나타나는 싹난 지팡이
가 어째서 앞에 있었던 사건의 답이 되느냐 하는것입니다. 고라와 다단과
온이 모세를 거스렸던 사건이 무엇이며, 거기에 대하여 백성들이 항복하지
않았던 것은 무엇이며, 거기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왜 싹난 지팡이로 답하
셨어야 했는가 하는 것을이 본문을통해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왜 이것을법궤 안에 넣고 법궤 위에 속죄소를 놓아서 속죄의 피를 그
위에 부어야만 했는가 하는데까지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16장으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고라가 다단과 아비람과 온을 세우
고 이백 오십 인의족장들을 자기네 편으로 끌어서 거는싸움이 무엇인지를
먼저 살펴보면, 그들은 모세와 아론의 명예를 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읍니
다. 이런 싸움이야말로 어떤 인간이든지본능적인 죄의 속성으로 말미암아
갖는 성격들인 것입니다.
본래 인간들이 신을 섬기는 것은 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 자신의 유익
을위해서입니다. 그 예로 고대 문명을 보면 어떤 나라이든지 신을등장시킬
때는 통치권을 위한 부수적인 장식물로써 등장시킵니다.
중국의 왕은 이름이 천자입니다. 그 의미는 하늘의 아들이라는 뜻인데, 그
것은 하늘 아래에 있는 두번째 통치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높
다는 뜻입니다.즉 인간이 아니라 신이라는 뜻입니다. 그만큼 오만한 표현
인 것입니다. 어떤 신이나 마찬가지로 그 신은 다들이 이쑈고 그 신은 바
로 세상의 왕입니다. 인간들이 만들어 낸 신일때는 꼭 그렇습니다.
로마의 황제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분명히 황제로 출발을 했는데 나중에는
다 황제의 상을 가지고 로마에서 섬기던 신들의 위치와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로마는 군사력으로는 그리이스를 정복했지만 정신적으로는 그리이
스의 문명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그리이스의 신들을 섬겼읍니다. 제우스 신
이 쥬피터 신이 도고, 비너스 신이 아프로디테가 되는 등 이름만 살짝 바
꾸어서 자신들의 신으로 섬긴 것입니다. 그 가운데 나중에 황제가 하나의
신으로서 그 대열에 섭니다.
초대 교회때에도 황제를 신으로 섬기라는 데 대한 거부가 바로 초대교인들
이 순교를 당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실제적인 핍박의근거가 도니 것입니
다. 이렇게 신을 들먹이는 것은 언제나 자기네들의 영광을 위해 서였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기독교만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실재하시고 우리
는 다만 하나님의 증인으로서 그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은 쉽지 않아서 모든 인간들이 종교를 자기들의
장식물로서 쓰듯이 기독교인들도 종종 기독교라는 신앙을 자기를 위한 장
식물로써 바꾸어 놓기가 일쑤입니다.
지금 싸우고 잇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너희가 하나님의이름으로 너무 너희만 뻐기고 있으니 우리와나누어 가지
자' 이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싸움에서 누가 가장 모욕을 당하니까? 하나
님이십니다.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아무나 하나님을 붙잡아다가 매어달
수 있는 훈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은 언제나 자기가 필요하면 꿰어
차고 오면 되는 분입니까? 아닙니다. 지금 그들과 모세와의 싸움은 하나님
앞에서 판결을 받아야 합니다. 여기서 고라와 그의 일당은 하나님이 있다
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무시하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께 묻자는 바른 자세를 가지고 있읍니다. 고라와 그의 일파들은 좋
다고 나아옵니다. 그 결과는 그들은 불이나서 죽고, 지진으로 인해 주겄읍
니다. 민수기 16:41을 잘 보십시오.
이스라엘 회중이 오히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있읍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들은 이 일에 항복하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그 심판의 결과를 보고서도
항복하지 않는다는 것이 상상이나 됩니까? 결국은 무슨일이 발생하였읍니
까? 이번에는 염병이 이스라엘 회중에게 번진 것입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방지책을 마련하셨읍니다. 각 지파들이 가져온 지팡이
들 중에서 아론의 지팡이에만 싹을 내고 꽃을 피우게 하심으로 이 사건을
마무리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 뜻을 잘 살펴보기로 합니사. 우리가
이 과정에서 중간에 넘어오는 과정을 풀기 위하여 결론부터 보기로 하겠읍
니다.
왜 하필이면 지팡이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히는 거스오로 이 사건의 끝
을 맺어야 했읍니까? 이때의 지팡이는 전부 나무로 했읍니다. 나무의 본분
은 나무로서 생명을 결실하는 것입니다. 지팡이는 이미 생명이 없어진 죽
은 막대기로 만듭니다. 원래 생명이 있는 나무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박혀
있어서 그것을 손에 들고 남을 때리거나 찌를 수는 없읍니다.잘려서 죽은
나뭇가지야만이 어느 손에든지 들려서 상대방을 질타하게 되는 것입니다.
죽은 나무토막만이 남을 때릴수 있는 것입니다. 잘라낸 나뭇가지가 아닌
한 지팡이로 사용될 수가 없읍니다. 살아있는 나무는 반드시 열매를 맺습
니다. 바로 이것이 정답인 것입니다.
이 말을 마태복음 3장의 말씀에서 생각해 봅시다.
"요한이 많은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
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
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
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도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마 3:7-10)
이 장면은 세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고 있는 장면입니다. 좋은 열매
를 매즌 나무는 놓아 두고, 그렇지 않는 나무는 찍어 불에 던지우겠다는
말입니다. 어떤 열매를 맺는 것을 좋은 나무라고 합니까? 성경에서 좋은
열매를 맺는 것으로는 대표적으로 무화과와 포도를 들고 있읍니다. 포도를
맺는 나무를 포도나무라고 합니다. 포도나무에 다른 열매가 냅히는 것을
보신 적이 있읍니까? 포도나무는 포도밖에 맺지 못합니다. 그런데 포도나
무더러 나쁜 열매를 맺으면 찍어 불에 던진다는 말씀이 말이 도비니까? 그
런데 우리는 이런 선택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말하자면, 하나
의 나무가 A라는 열매도 맺을 수 있고 B라는 열매를 맺을 수도 있는데,
A를 맺으면 살려주고 B를 맺으면 죽인다는 선택으로 생각하고들 있읍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ㅇ려매를 맺음에 대해 한번 더 고찰해
보십시오.
갈라디아서 5장을 보십시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
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 23)
여기서 보면 성령의 열매들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입니까? 이 열매들의 가
장 큰 특징은 그것이 독립적이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 열매는 서로 관련성
을 갖고 있으며 그것은 바로 대인 관계적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육
체의열매를 맺어 놓고서 성령의 열매들이라고 속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대표적인 것이 사랑과 희락입니다. 혼자 좋아하고 혼자서 사랑을 베푸는데,
그 사랑이 상대방에게는 전혀 사랑도 아니고, 그 기쁨이 상대방에게는 전
혀 도움이 안되고 오히려 상대방을 죽이는 희락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언
제든지 대인 관계적이라는것을잊지 마십시오.
그러면 육체의 열매들을 보십시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
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
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
할 것이요"(갈 5:19-21)
여기에서 보듯이 유게체의 열매들에서도 가장 주류를이루는 것들은 대인
관계적인 ㄱ것들입니다. 또한 충실하지 못한 시간의 낭비에 관한 것들입다.
성경이 한 그루의 나무에 대해좋은 열매와 나쁜 열매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 나무가 심기어져서 자기의 열매를 맺느냐, 아니면 지팡가 되어서 남을
때리고 다니느냐 하는 것을지적하고 있는 것이비낟. 나무에게 생명을 준
이가 요구하는 그 본연의 열매를 거부하고 죽은 나무가 되어 누구의 손엔
가 붙잡힌 바 되어 남을 때리고 찌르고 다니는 역할을 하고 다니는 지팡이
가 되어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것을 나쁜 열매, 즉 육체의 열매라고 칭하
고 있는 것입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하는 나무가 그러지 못하고
죽어서 남의 손에 들려 쓸데없이 누군가를 때리고 다니는 것이라는 말입니
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지적하고자 하는 의미입니다.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이 부분에서 혼동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자신은 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누구보다도 충성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그것이 남을괴롭히고, 심적
으로 죽이고 있는지에 대하여서는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읍니다. 오랫동안
산에서 기도하고, 또 오랫동안 금식 기도를 했다고 하면서 오히려 자신의
기준에 비추어 남에게 기도 안 하고, 금식 기도 안 한다고 정죄를 하고 다
닌다면 그것은 결단코 성령의 열매가 아닙니다. 어딘가에 가서 집회에 참
석해서 성경을 깨달았다고 하면서 고작 편을갈라 놓는 일을 한다면 그것이
무슨 성령의 열매입니까?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것은, 성경을 더 깊이
깨닫는다는 것은, 한 사람을 용납하는 것이요, 온유와 절제로 참아내는 것
이요, 기다리는 것입니다.그렇지 못하고 자기 잘난 것을증명하는 것으로
밖에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다시 민수기 16장의 싹난 지팡이의 사건을 머리 속에 그려 보십시오. 고라
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이백 오십 인의 족장을 데리고 항의를 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싫어하셨다는 것이 어디에서 판가름났읍니까? 그들이
들고 나온 향로에서 불이 나와 그들을 다 죽여 버림으로 나타났읍니다. 그
래서 백성들이 그사건을보고 깨달았읍니까? 깨닫지 못했읍니다. 거기에 올
라오지 않았던 아비람과 온은 자기의 장막에서 아직도 살기가 등등합니다.
그때에 모세는 두번째 심판을 무엇으로 행하였읍니까? 지진입니다.이 지진
이 결코 우연이 아니요 하나님의 심판임을 알게 하기 위하여 여태껏 없던
방법으로 죽게 했으니 바로 지진인 것입니다. 지진이 일어남으로써 모세는
무엇까지 증명해 보였읍니까? 이것은 인간의 방법도 아니고, 우연도 아니
고, 하나님의 간섭이라는 것을 분명히 시시했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 아니라 몽땅 뛰어나와서 모세와
아론을원망했다고 했읍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염병이 나돌았읍니다.
오늘 아론의 싹난 지팡이 사건에서 똑 제시되어야 할 중요한 메시지가 여
기에 나놉니다. 만일 우리가이 사건 속에 같이 있었다면 언제쯤 회개하였
을까요? 향로에서 불이 나왔을 때입니까? 지진이 일어났을 때입니까? 염병
이 돌때입니까? 아니면 싹난 지팡이를 보고 나서입니까? 성경이 말하는 것
은 그 으느 때에도 회개치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들 중에서 구원의 감격 속에서 너무 기쁜 나머지 옆에 있는 사람
을 붙잡고서 '당신 언제 구원받았읍니까?' 이렇게 묻고 싶은 사람이 있읍
니까? 그런 분에게 꼭 알려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읍니다. 우리는 아무도
지진이 일어난 것을 보고 돌아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불이 나오는 것을 보
고서 회개한 사람들도 아닙니다. 우리가 어떻게 회개케 된 사람들인 줄 아
십니까? 그 어느 것으로도 항복하지 않아서 그것들을 법궤 속에 넣고 그
위에 피를 흘려서만이 우리를 고칠 수 있었다고 성경은말씀하고 있읍니다.
우리 중에 혹시 '나는 지진을보고 돌이켰는데, 당신도 싹난 지팡이를 보고
서 돌아서라' 이렇게 말하고 싶은 사람은 없읍니까? 그러면 그 사람은 상
당히 심각하게 틀려 있읍니다. 싹난 지팡이가 법궤 속에 들어가 있고, 그
위에 피를 흘렸다는 것을 잊지 마시시오. 거기까지도 아직 해결이아닙니다.
오늘 이 사건들을 통하여 성경이 말하고 싶은 것은 그 많은 기적으로도 사
람들느 결코 돌이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요한복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많은 기적들이 있었지만, 그 많은 기적으로
인해서도 인간들은 돌이키지 않는다는 지적을 하기 위한 책입니다. 그분이
태어날때 동방 박사들이 오고, 하늘에서 별이 비취는 등 신비로운 일들이
있었지만, 그 어떤 것으로도 인간은 하나님 앞에 항복하지 않았읍니다.
38년 된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지만 인간들은 항복하지
않았읍니다.그래서 어떻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십니까? 결국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는 길밖에 없었읍니다.그것은 이렇게 해도 안되고, 저렇게
해도 안되니까 마지막으로 취하신 행동이 아닙니다.예수님은 처음부터 그
일을 위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제자들에게 물으셨을 때 베
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고 고백했
고, 이에 대해 예수님은 '이를 알게 하신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비로소 자신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부활하겠다는 말씀을 하셨읍니다. 이 말씀에대해 베드로
는 '안 됩니다'라고 강력히 반대했읍니다. 베드로에게 그만큼 깨우쳤는데
도 알아 듣지 못하자 예수님께서는 죽는 방법밖에는 너희를 고칠 방법이
없다고 하셨읍니다. 그래서 어느 복음서든지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으로 끝
을 맺고 잇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도 속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궤가 등장하는 것
입니다. 법궤 위에 속죄소가 있고 거기에 피를 붓게 되어 있읍니다. 말하
자면 법궤를 피로 덮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세 가지
는 인간의 인간 된 것을가장 잘 고소하는 것들로서 첫번째 돌비는 주어지
ㅈ기도 전에 그들의 불신앙으로 깨뜨려져야 했으며, 그래서 다시 주어진
두번째 돌비와 만나가 있었읍니다. 여기서 만나는 어떤 것이었읍니까? 이
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오자마자 '돌아갑시다. 애굽에는 고기 가마가
있었고 떡가마가 있었읍니다.'라고 아우성을 치자 그들에게 40년 동안이나
만나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하나님을믿었읍니까? 믿지
않았읍니다. 그리고 그아나에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었읍니다. 이것을
제시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수많은 심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항복하
지 않아서 결국 이것을 세울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었읍니다. 싹난 지팡이
는 해결책이 아닙니다. 불이 나와도 대들고, 지진이 나는 심판에도 대들고,
염병이 나돌아도 항거하여서 할 수 없이 잠잠케 하기 위해 임시로 내어 놓
은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만일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을 제대로 보이시기만 하
면, 혹은 낱낱이 설명하시기만 하면 즉시 믿을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 속
에 있읍니까?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선언하고 있읍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입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생각할 때마다 조심하십
시오. 우리는 지금 죽은 나무토막이나 다름없읍니다. 모두 다 지팡이에 불
과합니다. 지팡이끼리 일어나서 서로 전쟁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아무도 참답게 뿌리를 내리고, 자기 생명으로 말미암는 꽃과 열매를 맺고
있지 못합니다. 바로 이 지적입니다. 우리 자신을돌아보십시오. 나무가 나
무끼리 칼싸움하는 것을 보신 것이 있읍니까? 절대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읍니다.그러나 죽은 나무토막만큼은 언제나 싸울 수 있읍니다. 원치 않
는 자의손에 잡혀서 자기도 모르는 춤을 출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러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중생시
켰다고 성경이 선언하고 있는데, 그 열매가 바로 우리들인 것입니다. 이
기쁨을 아시겠읍니까? 자랑할 수가 업속, 남을 경멸할 수도 없고, 오직 은
혜를 입은자로서의 감사만 있다는 복음의 복음된 메시지를 이해하시겠읍니
까?
우리가 남보다 잘나서도 아니요, 우리 스스로가 깨우쳐서도 아니라 하나님
께서 참으로 알수 없는 은혜속에 우리를 그의 피로 덮어 이 자리에 앉힌
것을아시겠읍니까?
혹시 우리 중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읍니까? '설마 나 같은 엉망인
사람은 아니겠지'라고 말입니다. 아니라면 고회에는 왜 출석을 하십니까?
'난 오고 싶지 않았는데 왔읍니다'라고 말씀하고 싶은 분이 계십니까? 그
러나 인간은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강요한다고 해서 하십니
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나오기 싫은교회는 왜 억지로 나오십니까?
이건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반문합니다. '나는 교회는 나가지만 아닌 것 같습니
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앉아 있는것만큼 우리의인생이 우리의
손에 있지 않고 어떤 큰 은혜의 손길에 있다는 것을보다 더 잘 증명할 수
있는 길은없읍니다. 무슨조건들이 있기에 교회에 나와 있읍니까? 이것보다
더신비한 것은 없읍니다.
속지 마십시오.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좀더 나은 인물일 것이라는 생각은
버리십시오. 아무도 더 나은 사람은 없읍니다. 구원을 얻은자 중에 남보다
조건이 낫기 때문에 구원을 얻은 자는 없읍니다.오직 그리스도의 피만이,
그의은혜만이, 법궤 위를 덮은피만이 우리들을 하나님의 존전에 있게하는
것입니다. 그거을 은혜라고 합니다. 성경은그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우
리가 믿겠다고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데려다 앉혀 놓고, '내가 네 죄
를 씨었다'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구원이라는 것을 훨씬 잘못 이해하고 있읍니다. 자랑하는
쪽으로 이해하고 잇읍니다. 아닙니다. 은혜가 은혜인 것을확인시키기 위해
서 성경은지금 설명하고 잇는 것입니다. 자랑하기 위하여 근거를 추적하지
마십시오. 은혜의 은혜된 것을 위하여 근거를 추적하지 마십시오. 은혜의
은혜된 것을위하여 성경의 말씀들을 제대로 추적하십시오. 그때서야 우리
는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속죄소를왜 법궤 위에 놓았어야 하였는지
를! 또한 예수님께서 현장에서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향하여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라'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는지를!
우리는 모두 다 간음하다 현장에서잡힌 여인과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그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노라'라는 것이 어떻
게 가능하니까? '내가 너희를 위해 내 피를 쏟았노라' 그것이 복임이요 기
독교입니다. 딸서 우리 마음 속에는 감사밖에 업속 예수 그리스도를아는
자랑밖에 없어야 함을 기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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