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김 경 수)
날 짜 (Date): 1996년04월03일(수) 06시01분11초 KST
제 목(Title): 과연 하나님은 한 분이신가?


과연 우리가 믿고 있고, 기도하는 대상인 우리의 하나님은 한 분이신가?


이전부터 계속해서 고민해왔고, 지금도 이 보드에 올라온 몇몇 분들의

글을 보면서 똑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봅니다.

이 질문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단일성에 관한 질문이 아닙니다. 바로 그 

한 분이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 크리스챤들의 믿음의 양태가 왜

이렇게 여러 가지로, 마치 정신분열적인 모습으로 드러나야 하는 지에

관한 오래된 저의 고민입니다.


바위에 던져진 계란의 모습이 싫어서 이러한 질문과 고민을 그친 지도 꽤나

오래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땅에는 이러한 고민을

일깨우는 많은 상황들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노수석 학우의 죽음에 관한

KSCF 기도문을 보면서 새삼 깨닫게 됩니다.


제가 학부생 시절, 그러니까 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던 그 해 봄과 여름에,

한 학기 동안에만 저와 같은 학교를 다니던 학우들이 세 명이 분신 자살을

하고 한 명이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졌던 그 끔찍했던 시절에, 저는 고민

끝에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세상으로 뛰어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전 해에 저는 하나님을 나의 구주로 모시고, 또한 성령의 세례를

받아서 그야말로 하나님과 달콤한 첫사랑의 밀월 관계에 있었던 그러한

때였습니다.


그 당시에도 저는 똑같은 질문과 고민으로 몇날 몇일 밤을 지새운 끝에

나의 하나님을 부정한 적이 있었습니다. 과연 어디에 하나님은 계신가?

독재 타도를 외치며 피흘려 싸우는 학생들의 데모 현장인가? 아니면, 골방과

기도원에서 기도로 꼬박 밤을 지새우는 이들의 곁인가? 현재의 상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크리스챤들의 삶의 양태는 그 자신이

참이라고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 따라서 너무나 달랐습니다.

저는 그러한 분열된 모습들을 보면서 나의 신앙이, 내가 믿는 하나님의

절대성과 유일성이 한낮 꿈이요, 관념이요, 이론 뿐이었구나 하는 자책 끝에

하나님을 결국 버렸습니다.


그러한 제가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찾게 된 것은 다행히도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 였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이전에 글을 올린 적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줄입니다.). 우리가 처한 이 정신 분열적인 삶의 극단의

양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시던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다는 것을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구원,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던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태도를 한 번 성경을 통해서 가만히 고찰해 보십시오. 한 무리는 그 구원과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즉각적이고, 현세적이며, 
정치적으로

바로 지금 (당시의 이스라엘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도자가 없어서 헤메이던 그들에게, 바로 눈 앞에 죽은 이를 살리며,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명을 먹이는 능력의 인물이, 그것도 다윗

왕조의 정통을 이은 메시아가 나타난 상황을...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어떠한

모습으로 다가왔겠습니까? 거의 모든 예수님을 추종하던 이스라엘 사람들과 세례 
요한도,

심지어는 에수님의 제자들까지도 성령이 그들에게 오실 때까지는 예수님을 이스라엘

민족의 비참한 식민 지배 상태를 끝장내고 단번에 다윗 왕국을 회복시킬 수 있는

정치적인 왕으로 보았습니다. 그러한 예수님께서 나약하고 비참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의 그들의 심정을 우리는 족히 헤아릴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의 인간적인 눈과 마음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 모습을, 그 분의 이 땅에서

행한 모든 역사의 의미를 바로 볼 수도 깨달을 수도 없었습니다.

 
또 다른 한 무리는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그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기대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일어나지 않고, 그들의

눈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의 사역과 그 현장을 지켜볼 수 없었기에 그들은 그들

신앙의 촛점을 현실로부터 오직 영적이고 내세적인 것으로 돌려버렸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육신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더 없이 허무하고 아무런 가치가 없어졌기에,

그들은 자연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종류의 부조리와 잘못된 역사의 흐름에서

눈을 돌려, 오직 자기 자신의 내면에만 모든 관심을 집중시켰습니다. 그들에게

육신이란 부차적인 의미 밖에는 지니지 않고 있기에, 구원이란 말은 오직 영혼의

구원을 의미할 뿐, 성경이 말하고 있는 구원의 여러 양태 - 병든 자에게는 병 
고침의

형태로, 눌린 자에게는 자유의 형태로, 배고파 굶주린 자에게는 빵의 형태로 
다가가는

구원의 여러 모습들 - 는 과거의 일로, 단순히 성경이 기록된 시점의 역사적인

사건으로만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두 무리는 극단의 형태를 강조하고자 아주 단순히 그 특징만을 나열한

것입니다. 또, 모든 시대를 통털어서 언제나 겉으로 쉽게 드러나는 것은 극단의 
형태

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마 적지 않은 수의 크리스챤들은 이 두 극단에 속하지 
않은,

좀더 바람직한, 성경적인 삶을 살아왔다고도 추측할 수 있겠습니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참 모습과 그에 따른 우리의 삶의 가장 바람직한 형태는 무엇일까요?

현실에 드러나는 이 극단의 모습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고 반응해야 
할까요?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오면서 답은 읽는 모든 분들에게 삶을 통해서 답해져야 


계속적인 과제로 남기고 기도로서 저의 두서없는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하나님, 인간이 살아가는 한 우리가 처한 상황은 예나 지금이나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실을 또 한번 절감합니다. 참으로 세상의 많은 상황들과 우리가

날마다 부딪치는 현실들을 볼 때에 제가 살아왔고, 현재 살아가며, 또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이 세상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심정 간절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바로 이 바랄 것 없는 척박한 땅에 우리와 같은 사람의 모습으로, 지극히 낮고

천한 모습으로 오시어 죄인들을 섬기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죽기까지 주셨습니다. 그러나, 절망적이고 캄캄한 이 세상의 모습이, 한 점의

구원의 가능성도 없이 살아가야만 하는 비참한 죄인의 모습이 바로 저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주님,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한 우리에게 한 줄기 빛으로 다가오신 주님, 유일한 구원의 길로 오신 예수님,

비록 우리가 세상 가운데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 길을 또한 가르쳐

주소서. 날마다 쓰러지고 좌절하지만, 넘어진 바로 그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일어서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하나님의 복음에는 국경이 없지만, 크리스챤에게는 간절히 기도해야할  조국이

또한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조국이 처한 현실을 긍휼히 여기사 모든 갈등과

눈물과 분단의 역사가 속히 종식되어 삼천리 반도 강산 곳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감사의 기도 소리가 넘치게 하소서. 아직껏 하나님을 마음대로 부르지도 섬기지도

못하는 것도 서러운데, 이제는 우리의 반쪽, 북녘의 이천 오백만 동포들이

굶주림이라는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한계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과연 남쪽의

또 다른 반쪽, 사천 오백만 동포들은 이러한 현실을 자신의 문제로 여기며 가슴

아파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기 자신들의 문제만으로도 힘겨워하며 서로 손가락질

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주님, 우리의 시야를 열어서, 1996년 4월 2일이라는 좁은 시간의 한계를 벗어나

멀리는 인류 전체에 걸친 하나님의 역사의 시간대를, 가깝게는 오천년 우리 민족의

역사의 시간대를 바라보게 하소서. 또한 좁디 좁은 그 가슴을 열어서, 잘리워진

반도의 남녘을 벗어나 온 세계를 가슴으로, 기도로 품게 하소서.

멀리서 바라보는 내 조국의 모습은 어찌 그리 작디 작은지요. 그러나 그 안에서

살아가는 내 부모, 내 형제, 그리고 내 친구들은 그 작고 작음을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 비록 내 조국이, 살고 있는 국토의 크기와 살아 가는 사람들의 수에 있어서는

작지만,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크고 위대한 나라,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그러한 민족이 되게 하소서. 그러기 위하여 우리 모두 하나되게 하소서.

십자가의 피로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모든 장벽을 허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