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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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Convex (Gambler)
날 짜 (Date): 1994년06월03일(금) 09시14분47초 KDT
제 목(Title): 김일성과 예수님 (이찬삼 기자)


        김 일 성 과   예 수 님

                                     이 찬 삼
                                  제 1호 북한방문 기자

 기독교하면 바로 하나님의 이야기에서 시작되어야 하듯이 북한 이야기 하면
바로 북한의 김일성 수령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마치 기독교 방송이
찬송가를 들려주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하듯이 북한에서 눈을 뜨면 아침 라디
오 방송은 복음성가를 방불케하는 김일성 찬양곡으로 시작합니다. 명곡이라
하면, 베에토벤, 모짜르트가 아니라 김일성 수령과 김정일을 찬양하는 것이
면 모두가 명곡이요, 나머지는 혁명가 두가지로 나누어지는  우리의 반쪽
북한땅의 아침에 배달되는 로동신문은 1페이지부터 3페이지가 김일성과 김정
일 부자에 대한 찬양기사요, 제 4페이지에는 김일성을 숭상하는 간증문이 실
려있습니다.

 거기에는 얼마나 재밌고도 슬픈기사들이 가득차 있는지 모릅니다. 예를들면
아파트가 불에 활활 타오르고 있는데 자기 집 방에 걸어두었던 김일성 수령의
사진을 불에 태울 수 없어 그것을 구하기 위하여 불 속으로 뛰어들어가 품에
안고 나오다가 불 속에서 목숨을 잃어버리기 까지 김일성 수령에 충성을 아끼
지 않았던 순교자들의 간증이 거기에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
는 남조선의 나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등교길의 아이를 유괴하여 생
매장했던 이야기, 여고생을 납치하여 인신매매한 이야기 등 남한의 부끄러운 
이야기들이 그들의 가슴에 비통함을 자아내게 합니다. 이런 악한자들이 판을
치는 남조선의 동포들을 빨리 구해내기 위해서 통일을 하여야겠다고 눈물을
흘리며 소원을 토하는 곳이 바로 우리의 반쪽 북한입니다.

 얼마나 불쌍한지 몰라요. 그들의 가난이 아니라 획일화된 의식구조가 말입니
다. 한편 부러운 생각이 들 정도로 단일적인 사고방식 만은 가진 그들입니다.
제가 한번은 국민학교 아이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에 제가 있게 되었는데     
아이스크림을 애들 수대로 한꺼번에 30개쯤 샀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그냥
주는 거니까 먹으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그 아이들이 하는말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배가 아프니까 우리는 안먹갔시요." 그러는게 아니겠어요? 이애한테
물어보아도 저애한테 물어보아도 대답은 다 똑같았어요. 아무도 그중의 어느 
누구 하나 그 먹고싶은 아이스크림을 먹겠다는 아이가 없었어요. 그들의 입술
은 꽉 다문 의지의 눈물 같은 것이었지만 그들의 눈동자 속에서는 북한에선 
91년도에 처음 나온 그 아이스크림을 너무나도 먹고싶어하는 표정이 역력했어
요. 차라리 먹으란 소리라도 하지 말것을.... 이 아이들을 위한다고 한 것이
이 아이들을 이토록 괴롭게 했으니.... 아이들이 그 가게 앞을 돌아서 가는데
걸음은 몸을 따라 앞서가는데 고개는 자꾸만 이 아이스크림 통을 바라보느라
뒤로 돌아가는 거에요. 그날처럼 아이스크림을 산 것을 후회한 적이 없어요.
얼마나 아이스크림이 먹고싶었을텐데.... 이것을 뿌리칠 용기가, 그 단단한
의지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단 말인가? ....

 또 이런 일이 있었어요. 12월의 북한은 얼마나 추운지 몰라요. 코트를 입어도
쌩쌩 이는 바람을 어른인 나도 이길 수가 없는데 거리에 등교하는 애들의 뛰는
모습이 좀 별나다 싶어 다가가 보았어요. 앞으로 달려가는 달음박질이 아니라
멀리서 보니 호득호득 마치 불에 데여 어쩔 줄 몰라하는 것처럼 뛰어가는 것이
었어요. 가까이서 보니 양말을 안신고 있었어요. 그 허름한 납작한 운동화 안
에는 양말로 포근히 싸여져 있어야 할 아이들의 조그만 발이 그냥 맨발인채로
평양의 매서운 바람 속에 노출되어 있었어요. 털양말 대신 그들의 발 밑에는
보온을 위해 지푸라기 몇개가 깔려있더군요.

 그런데 그 고생하는 아이들이 우리 남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요. 왜냐구요?
자기들은 김일성 수령동지께 외치기만 하면 그래도 굶어죽지 않게 보살펴 준다
고 믿기 때문이에요. 그들은 김일성 수령님이 자기들의 생사화복을 좌우한다고
믿어요. 예수는 죽어간 역사 속의 신이라면 수령님은 살아있는 신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그 고생 속에서도 행복을 느껴요.

 이처럼 북한땅의 살아있는 신, 김일성 수령, 온 북조선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온통 점령해버리고 만 김일성 수령, 그의 유년시절 이야기를 들으시면 우리 
크리스챤들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김일성 어머니가 어떤 분인줄 아십니까?
독실한 교회의 권사님이셨어요. 그리고 그의 외삼촌은 목사님이셨지요. 그의
부친은 미션스쿨 교장 선생님이셨지요. 여기서 주지해야할 사항은 모르긴 몰라
도 김일성은 어린시절을 거의 완벽하달 수 있는 기독교적 가정의 배경에서 자라
났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성인이 된 김일성은 그가 기독교적 환경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는 증거
가 어디에 있습니까? 아무데도 없다구요? 천만에요.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것
의 증거가 있긴합니다. 너무나도 심하게 굴곡된 나머지 차라리 그가 기독교적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도 들 정도이긴 합니다만, 기독교의 형식
만 나타났지 내용이 안들어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무서운 형태로 나타나고 말았
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기로 하지요. 기독교에서는 금요일부터 일상생활에서 구분
되는 날들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금요기도회가 있고 토요 구역예배, 주일
예배와 같은 프로그램을 갖습니다. 북한의 일과도 동일합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
까지는 기업과 학교로 흩어졌다가 금요일에는 금요노동이라 하여 온 인민이 다 
노동에 창여하여야 합니다. 또 토요일에는 구역성경공부 대신 주체사상 공부를
합니다. 또 주일날은 집에서 쉬는날이라고 하는데 그날 주로 밀렸던 집안 일을
하느라 바쁘게 보냅니다. 또 가끔씩 수요일 저녁에는 주체사상을 고취시키는 영
화를 상영해줌으로써 일에 지친 그들에게 김일성 수령에 대한 충성을 다시한번 
재충전시켜주는 것은 수요예배를 연상케 합니다.

 그가 받아들인 기독교의 프로그램과 형식은 지금 북한의 정치적 사상적 프로그램
에 그대로 반영됩니다. 성부성자성령(신)의 삼위일체 사상은 그대로 김일성, 당,
인민이라는 삼위일체 사상으로 반영되고 있으며 기독교의 간증은 그들에게선 교화
라는 것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어버이 수령동지께서 동무들을 사랑하고
있는데 나는 동무들을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해 왔다고 눈물을 흘리며 간증합니다.
또 김일성 수령은 예수 그 자체로 대신하여 신적 인물로 모든 주체사상의 근본이
됩니다.

 한가지 없다면 예수재림이 없는데 여기에도 대응할만한 것으로 통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통일이란 남한에서 생각하는 그런 통일만은 아닙니다.
마치 크리스챤들이 예수재림 이야기를 하면 모든 것을 참을 수 있고 이겨낼 수
있는 소망을 주는 그런 것 처럼 그동안 못먹고 못입고 그 고생한 것이 통일이
되면 모든 것이 요술처럼 풀려버리는 마치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예수 재림이 
오는 곳, 눈물도 더 이상의 고통이나 질병, 미움이나 시기도 없는 곳 바로 그
날이 오는 것이 통일의식입니다.

 자세히 보니까 기독교 체제와 김일성 체제가 그 구조면에서 똑같지요? 
맞습니다. 김일성이 그 좋은 기독교적 환경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는데 왜 그는
예수를 부인하고 그 자리에 자기가 대신 들어갔을까요? 바로 그가 헛예수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 자녀교육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아야만 할
것입니다. 어디 이런 경우가 김일성 한사람의 경우만 그렇습니까? 기독교 가정
에서 태어나 자기의 꿈을 목사로 키우며 강단에서 목사흉내를 내며 놀이를 하고 
그 부드러운 모짜르트의 음악을 사랑했던 감수성 예민했던 독일의 히틀러는 
자라서 세계의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요?
다 하나님의 뜻대로 된 것이라고 밀어부쳐야 합니까? 서정윤 시인의 시에
이런 귀절이 있습니다.
        "하늘 가득 먹구름으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건 당신의 일이지만
         그 빗방울에 젖는 어린 화분을
         처마 밑으로 옮기는 것은 나의 일"

 기독교인들이 자녀들의 신앙교육에 단지 교회에 보내는 것으로, 혹은 내가 
집산데, 장론데, 목산데 하는 것으로 저절로 배우겠지 하는 것에서 그친다면 
우리는 자칫 자녀들에게 헛예수를 심어주고 있지나 않은지 검토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김일성이 가졌던 유년시절의 예수, 그는 살아있는 예수,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무능하고 역사 속에서 죽어간 죽어버린 신, 단지 역사적
인물로서의 예수였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신이되어 이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린이날 어버이 날이 있는 오월, 북한 땅 김일성 수령의 유년시절과
그의 신앙을 검토해 보면서 오늘날 우리들이 과연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자녀로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되돌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혹, 이들에게 헛예수를 심어주고 있지나 않은지 혹 이세상에 퍼져있는 그 많은
험한 사상들, 가치관 속에 방치하고 있지나 않은지 말입니다.

<가나안 장로교회 안드레 에스더 선교회 4월모임에서 발췌>
<가나안 장로교회 5월 선교지에 재수록 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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