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plpk) 날 짜 (Date): 1996년02월03일(토) 16시31분59초 KST 제 목(Title): [ 사 명 을 다 하 는 날 까 지 ] < 아버지가 70여 차례나 당해왔던 테러는 그날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 테러였다. > "피고 임홍천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딱 딱 딱! 법의 심판이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해하고 받는 형벌! 그 형벌을 받을 영생 교 교주 임홍천이법정에 서 있다. 고개를 돌려 담담한 모습으로 있는 그를 보니 다시 그날이 떠올라 아찔해졌다. -------------------------------------------------------- "여보세요. 네...네...잘 생각했습니다...그래야죠..네, 내일 안양에서 만납 시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 지원아, 드디어 사건이 해결될 것 같구나. 내일 양심 선언이 있을 예정이 야." 좀처럼 밖의 일을 집에서 내색하지 않는 분이었는데 오랜 시간 끌어 오던 사 건이 해결된다는 생각에선지 아버지는 오랜만에 한껏 기뻐하시며 곧 민주당 인권 위원회와 한국일보에 전화했다. 다음날 아침에도 아버지는 어제의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초지 일관하셨다. '오대양과 18년 전쟁' 처럼 한 문제를 차근차근 풀어 가는 끈덕짐과 70여 차례의 크고 작은 테러를 겪으면서도 굽힘과 두 려움이 없는 분이었다. 1994년 2월 18일, 밤 늦게 영생교 피해자의 양심 선언은 끝났다. 오늘 이 선 언은 내일 경찰에 제출될 것이며 영생교가 이단임을 밝히는 결정적 증거가 되 리라. 피곤해 하는 아버지 대신 운전을 하며 여쭈어 봤다. "아버지, 내일이면 이 문제가 해결되겠지요?" 대답 대신 아버지는 희미하게 웃었다. 눈을 감은 채 시트에 기대고 있는 아 버지의 얼굴은 피곤함으로 주름져 있었다. "지원아, 며칠 후면 네 엄마와의 결혼 30주년 기념일인 것 알지? 결혼하고 신혼 여행이란게 고작 남산 한 바퀴 돌고 영화 한 편 본게 다였지. 이번에 월 급 받으면 우리 제주도 여행 좀 보내 주겠니? " "그럼요!" "그리고 네 형이 지금 미국에 있어서 손주 진솔이를 볼 수 없으니 네 손주를 안아 봤으면 좋겠다." "전 아직..." 신학 대학 졸업을 앞둔 나에게는 이른 말이었다. 지금은 아버지를 돕고 있지 만 불과 몇 년 전엔 아버지를 이해하기 힘든 시절이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일 년 넘게 모은 14만원으로 전축을 사왔다. 박스를 열고 꺼내 전선을 연결 하려는데 바로 그 때 누군가가 들어오더니 내 전축에 '칠천원'이라고 적은 빨 간 종이를 붙였다. 일 년에 몇 번씩이나 이사를 다니는 일도 싫었는데 이젠 집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 가압류가 되어 내 전축까지도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 모두 아버지 때문이었다. 그날 순식간에 모든 걸 빼앗긴 우리 가족들이 그 현실을 슬퍼할 새도 없이 아버지는 인근 교회에서 초청연설이 약속돼 있다며 나와 형을 데리고 그 교회로 갔다. "저는 오늘 이단과 사이비에 의해, 그리고 그들의 음모로 집에 빨간 딱지가 붙은 상황이지만 여러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왔습니다. 2층엔 내 아들 들이 있고 집에서는 아내가 걱정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연설에 귀기울이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집중했다. " 하나님 외에 감히 그들을 이단과 사이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성서적인 것 외에도 그들은 분명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그 동안 겪은 일들과 이단, 사이비에 대해 말했고 이 일을 계속할 것임을 밝혔다. 그날 아버지의 연설을 듣고 우리가 왜 이렇게 생활해야 하는 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린 나이지만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대학을 다닐 때 아버지의 출판 기념식이 있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참석 했고 많은 축하 속에 기념식이 진행됐다. 순서에 따라 지금은 돌아가신 문익 환 목사님의 축하 연설 차례였다. 그것은 도전이었다. 기념식장을 울리는 그 목소리는 내 가슴에 메아리쳤다. 박수 소리가 났을 때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통일이 됐을 때 남한의 연합되지 못한 기독교가 북한에 들어가는 것도 문제 인데 409종파나 되는 신흥 종교가 그대로 들어갈 때의 부질서를 생각해 보라.' 그날 이후 난 아버지의 일을 돕기로 결심했다. "아버지 다 왔어요." 안양에서 상계동까지 꽤 오래 운전을 하는 동안 피곤한 듯 눈을 감고 있던 아버지를 깨우기가 어려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버지는 눈을 비비며 가방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평상시 같으면 집으로 나란히 걸어 들어갔는데 그날은 아버지가 먼저 아파트로 향했다. 난 음악을 끄고 창문이 닫혔는지 전조등은 껐는지 확인한 후 보안 장치를 했다. 아버지 뒤를 따르려고 뛰어가는데 갑자 기 '퍽' 소리가 났다. '아버지께서 가방을 떨어뜨리셨나?' 2층 계단을 막 올라가니 아버지는 고개를 푹 숙인채 몸을 벽에 기대고 있었다. '또...' 아버지를 일으켜 세우는데 피가 흥건했다. 아버지 얼굴을 살폈다. 머리는 쇠 파이프로 맞아 크게 함몰되어 있었고 목젖이 오른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칼에 찔렸다..." "경찰 불러라...범인 잡아!"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가 가리킨 쪽을 향해 뛰어갔다. '잡아야 돼. 잡아야 돼.' 바람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아무 것도 없었다. 다시 아버지에게로 돌아왔을 땐 경찰차가 와 있었고 아버지가 힘겹게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아버지를 부축해서 경찰차에 태우고 나서 나는 얼른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뒤따라 갔다. 밤 0시 10분. 응급실 밖에서 기도드렸다. 얼마 후 어머니와 할아버지가 병원에 도착했다. 우리가 서로 놀라 손을 잡고 있는데 의사가 조금 전과 다름없는 표정으로 응 급실에서 나왔다. "돌아가셨습니다." "네?" 세상에 이럴 수가...응급실 문 하나 열면 다른 세계란 말인가? 하나님 어찌 된 일입니까? 지금까지 잘 지켜주셨잖아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다하 는 사람은 죽지 않는 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내일 아니 오늘 아침이 되면 영생교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 왜 벌써 데려가십니까? 번복할 수 없는 현실이 낯설었다. 친척들이 도착하고 어쩔줄 몰라하는 내게 검은 양복과 띠 그리고 주름잡힌 모자를 씌워 주었다. 사람들이 와서 위로를 해주었지만 난 원망의 기도만 했다. 아버지의 안구 기증을 위한 수술이 시작됐고 두 명의 시각 장애인이 눈을 떳 다. 절차가 하나씩 진행됨에 따라 이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생각이 떠 올랐다. 하지만 우리 삼형제 그리고 어머니의 외로움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아니지요? 하나님 아니지요? 다시 기도드렸다.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지만 기도하려 애쓰며 눈을 힘껏 감았다. '....' '사명을 다했다." 눈을 떳다. '사명을 다했다.' 라는 음성을 들은 듯했다. 그렇다. 아버지는 사 명을 다하고 하나님 품에 계신 것이다. 그 동안 부족했던 수면과 여러 위협과 위험, 모략으로부터 자유로워 진 것이다. 이제 뒤에 남은 우리가 이 일을 계 속 해야 한다. 그리고 용서해야 한다. 모두다... 평생 이런 큰 일은 내게 없을 것이다. 인간적인 슬픔이 아직 남아 있지만 난 영적인 편안함을 느꼈다. 교도관에 의 해 인도돼 나가는 임홍천씨를 보며 이제는 하나님께 이 모든 일에 대한 기도 를 드릴 수 있었다. 형사 법원 303호실 법정에서 판사는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난 피고 변호사에게 탄원서를 제출했고 임홍천씨는 징역 15년 형으로 감 형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