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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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bdkil (길병도 )
날 짜 (Date): 1995년12월29일(금) 15시11분27초 KST
제 목(Title):  무숙자들의 코리언 마마(



도심에 황혼이 깃들고 썰물처럼 근로자들이 빠져나가면 텅 빈 거리에 남게 되는 
사람들, 갈곳이 없는 그들을 일컬어 무숙자 혹은 홈리스 피플이라고, 거리에서 
잔다고하여 노숙자라고도 한다.  자유경쟁 사회의 낙오자라고도 할수있는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영원한 미제인 빈부 격차의 일면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면서 
오늘날 미국의 대도시마다 수천, 수만명씩 존재하고있다.
  아메리칸드림을 안고 이민의 땅을 밟은 한인들은 대개 이들의 모습에서 미국에 
대해 최초로 실망감을 느끼게되고 그들을 게으르다거나 도와 줄 필요가 없다고 
질타한다.왜냐하면 그들은 국가로부터 식품 구입권인 푸드스탬프등 기본생활 원조를 
받지만 대개 2,3일이면 다 날려버리고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구걸해서 번돈으로 
마약등을 구입하기때문이다. 물론 모든 무숙자들이 다 그런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도와줄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묻지 안고 도움이 필요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선한 사마리아인의 정신을 실천하며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불태우는 한인여성이 
있어 그를 찾아보았다.
  글로리아 김 선교사, 거리의 무숙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함으로 "코리언 마마"로 
잘 알려진 그녀의 주 활동 거점인 '시온 복음 선교회'는 한인 상가가 밀집해있는 
웨스턴 2가의 한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었다. 자원 봉사자 등 열 식구가 기거하고 
있다는 낡은 2층 목조 건물은 도움이 필요되는 사람을 위하여 정문이 항상 열려 
있었고, 그녀의 활발한 구호 봉사경력을 말해 주듯 거실 벽면에는 탐 브레들리 전 
LA시장이 수여한 감사패를 비롯하여 라이온스크럽, LA한인상공회의소, 재미 
기독교여성협의회등 각종 단체에서 수여한 커뮤니티 봉사상등이 즐비하게 붙어 
있었다.
  아침 배식을 나갔다 오는 김선교사는 오후 2시가 되어서야 돌아왔는데, 깡마른 
체구에 걸친 흰옷 가운과 틀어 올린 백발이 세속적 관심에 초연한 그녀의 삶을 
한눈에 보여 주었고, 빨갛게 그을린 얼굴에 깃든 미소와 빛나는 눈빛이 50대 
중반의 활력과 더불어 봉사로 일관된 삶에서 얻는 기쁨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야 하나님이 주신 것이겠지만, 그들을 돕는 일 
자체는 바로 나를 돕는 일입니다.  음식을 받아먹는 그들의 기쁨이내게로 와서 내 
생활의 즐거움과 활력이되지요."
  무숙자들을 돕는 일이 별로 대단할 것이 없다고 겸손해하는 그녀는 이 일을 하게 
된동기를 묻는 기자에게 인근 헐리우드 산에 기도하러 갔다가 새벽 찬 이슬을 
맞으며 자고 있는 17세 소년을 발견, 도와 준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 아이를 데려다가 씻기고, 먹이고, 옷도 입혀주고, 정부로부터 생활보조금을 
받게 해주고 직장도 알선해 주었지요.  1주일 후에 다시 그를  찾아갔는데, 메모만 
남기고 나간 후였어요.  그래서 가져간 음식을 줄데가 없어서 무숙자들이 많은 
다운타운 6가의 샌 줄리안 거리로가서 먹을 사람을 찾았더니 5, 6 명이 
모여들었어요.  음식이 모자라 못먹은 사람이 마음에 걸려 그 다음날 더 많이 
가져갔는데 여전히 모자랐어요. 그래서 그 다음날 또 가져가고 하는 중에 이것이 
매일의 일과로 정착되었고, 늘 모자라던 음식은 300명 분을 해가니까 
충당되었어요."
  그래서 그 이후로 지금껏 매일 200-300명분의 식사를 준비하게되었다는데, 이를 
위하여 LA시 당국에서 배급하는 밀빵을 타오고 연방 농무성으로부터 야채, 과일을 
배급받는 등 각 기관과 단체의 원조를 받는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것을 
무숙자들에게 그냥 나누어 주다가 나중에는 샌드위치, 야채수프 등을 만들어 
더나은 식사를 제공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번의 배식에는 3시간 가까이 소요되는 시간 뿐만아니라 차량운행비를 
비롯하여 1회용 접시와 컵, 포크, 스푼, 냅킨 등 부수적으로 소요되는 소모품 
경비도 무시할수없다.  그동안 한 한인 마켓 사장의 배려로 이것을 충당해왔는데, 
때로는 자신이 구입할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렇게 김선교사의 생활을 파헤치다보니 떠오르는 한 인물이 있는데, 그는 
김선교사의 어머니로 자녀에게 구호 봉사의 귀한 유산을 남긴 고 이목림 
여사이다.  이씨는 충북 청원군 출신으로 8남매를 키우는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걸인, 약장수, 광우리장수 등 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잠자리를 제공하는데 인색치 않아 근동에 소문이 자자했을 정도로 타고난 
'이웃사랑'의 실천가였다.  그는 후에 기독교에 귀의했으며, 81년에 도미한 후에도 
이사랑의 불길은 꺼질 줄 몰라 86년도에는 작은 창고를 임대, 막내딸 김선교사와 
함께 '시온 복음 선교회'를 조직하여 본격적으로 구호 활동에 나섰고, 창고 
임대료와 무숙자 급식을 위한 차량운행비를 위하여 미 정부로부터 매달 그녀 
앞으로 지급되는 부양료인 웰페어를 몽땅 털어 넣었다.  90년 3월에 타계하기까지 
90 고령의 노구를 이끌고 딸과함께 양로원, 무숙자 방문에 앞장서온 그의 아야기는 
한국일보LA, 미주동아 등 교포 신문에 소개되어 교포사회의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어머니의 감화 아래 성장한 김 선교사의 내면 깊숙이 잠재해있던 
구호봉사의 열정은 불우 환자들과의 대면을 통하여 마침내 그 불길이 점화된다.  
76년도에 도미하여 간호사로 근무하던 그녀가 미군에 입대한 것은 여군 장교를 
동경했기 때문인데, 한국 주재 미 8군 병원 간호사로 파병되어 극빈 환자들의 
참담한 현실을 접하게 되면서 그녀의 삶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수술 혜택만을 받기위해 원근 각지에서 모여든 암환자들과 그 
가족들을 먹이고 재우고 돌아갈 차비까지 마련해 주는 등 불우이웃을 향한 그녀의 
선행은 소문이 날 수 밖에 없어 마침내 병원장의 표창을 받게 된다.
  그뒤 그녀는 한 맹인 여환자를 뜨거운 사랑으로 간호하다가 맹인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타인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함을 깨닫고, 점자책을 구하기 위해 맹인 목사와 
상담하던 중 회현동에 맹인교회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그교회로 나가 맹인들의 
손발이 되어 봉사했다.
  81년도에 다시 도미해서는 교도소 선교와 의료선교, 양로원, 무숙자 방문으로 
이어지고 그일에 전념하기 위해 과감히 제대하여 직장까지 그만둔 그녀의 행적을 
다 기록하기엔 지면이 좁음을 느낀다.  이렇게 병자와 가난한자, 장애자를 위한 
구호 활동에 전념해온 김선교사가 LA 길바닥에 뒹구는 무숙자들의 참혹한 모습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로 보였다.

  "자동차 씻는 세차장은 많아도 사람 씻는 샤워장이 없다"고 한탄하는 김선교사의 
말에 문득 10미터 전방에서부터 코를 막아야 했던 한 무숙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빗지 않아 수세미가 된 머리, 온 거리의 오물을 다 닦은 듯한 누더기, 눈의 흰자위 
외에는 피부색과 옷색깔을 구별할수 없을 정도로 불결함 그 자체였던 그의 모습에 
길을 잘못 들었다는 후회로 보냈던 신호 대기에서의 그 지옥 같았던 몇 분간 동안, 
기자는 "동물은 씻지않아도 깨끗한데, 왜 사람은 그렇지 못한가?"하는 의문과 
더불어 짐승의 수준으로 하락한 인간의 모습에 몸서리쳤지만 그를 집으로 데려가 
샤워를 시켜주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과연 누가 이들을 집으로 
들이며, 그들에게 일자리를 줄 것이ㄴ가?  그들 스스로 온전한 모습을 갖추기 
전에는 그들은 영영 거리를 배회하는 인간 짐승으로 남을 뿐이다.
  마약중독자, 알콜 중독자 등 거리에 떠도는 무숙자들을 사회로 귀환시키기 위해 
제일 긴요한것이 샤워시설임ㅇ을 김선교사는 누구보다도 절감한다.  다섯 차례나 
옮겨야 했던 그녀의 옹색한 세ㅅ방살이에서도 그동안 많은 무숙자들이 인간의 
모습을 갖추어 나갔지만, 수많은 무숙ㅈ자들에게 그것은 턱없이 모자랄 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샤워장과 무숙자 센터, 배식할 장소 건립을 위햐여 30만불 모금 
목표를 세워놓고 각계의 후원을 애타게 바라고 있다.
  이제 대화를 마무리짓고 일어서려는데 한 젊은 여인이 아기를 안고 들어왔다.  
그녀는 4세 때 입양되었다는 한인 고아 출신으로 15세 때 가출, 7년을 방황하다가 
만삭의  몸으로 이곳에 왓으며, 아기를 낳은 지 20일이 되었다고 한다.  한인 
남성을 만나 동거했으나  임신한 후 그가 사라지고 10개월을 무숙자로 견뎌왔다는 
그녀는 아무것도 없이 왔지만 김 선교사가 아기 옷과 기저귀, 우유, 수유 기구를 다 
사주었다며 밝게 웃었고, 그녀의 웃는 모습에 자금 문제로 짓눌리던 김 선교사의 
얼굴도 환하게 피어났다.

황숙이 (미 LA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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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지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
+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한일서 4장 8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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