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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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HAYANNIE (  하 야 니D)
날 짜 (Date): 1995년12월16일(토) 00시33분58초 KST
제 목(Title): 부활의 교회 한만영 목사님 - 동아일보에서


12월 15일자 13면에 실린 기사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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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단지 약속 하나를 지키기 위해 '서울대 교수'라는 자리를 버릴 수 있는가. 

말 바꾸기를 밥먹듯 하는 사람들이 힘쓰는 세상, 도무지 약속이란 무슨 말라

비틀어진 물건인가.


그런데도 '어리숭한' 인물이 있다. 신에 대한 다짐 한마디, 보이지도 않는 마음의

새끼 손가락 한 번 건 일로, 그것을 지키기 위해 환갑을 목전에 두고

서울대 교수에서 목사로 변신한 사람이 있다.


서울 대치동에 자리잡은 부활의 교회 담임 목사인 한만영(韓萬榮) 씨 (61).

그는 영어 교사에서 국악 교수로, 다시 목사로 보기 드문 인생 유전을 거친

사람이다. 학창 시절 피아노를 치며 한국의 모차르트를 꿈꾸었던 소년은 그의

뜻과 무관하게 서울대 영문학과로 진학한다. 졸업 후 6년 간 교편을 잡았던

그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 지 30 나이에 서울대 국악과에 편입하는 무책임한

가장이 되고 만다.


머리는 타고 난 것일까. 피아노를 치고 교회 성가대를 지휘하던 소년이 비록

'국악'이라는 낯선 분야에 뛰어들었지만 곧 국악이론계의 으뜸이라는 평도

듣는 서울대 국악과 교수가 된다.


그러나 시련은 인생의 절정기에 도둑처럼 찾아왔다.

"그러니까 그게 서울대 재직 시절인 76년이었어여. 후두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수술을 하게 되면 언어 기능을 잃고 그나마 6개월의 수명도 보장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말이 좋아 6개월이지 사형 선고나 다름 없었다.


"수술에 앞서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 뒤 내방에 들어가 기도를 했습니다.

 권사이신 어머니께 권하기에 기도를 했는데 죽음이 눈앞에 와 있다 보니 

 말 그대로 결사적인 기도가 되더군요." '이번만 살려주시면 나머지는 덤으로

살겠다'고 눈물 콧물 범벅이 돼 기도를 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그말 처음

하느냐"하는 말씀이 들렸다.


기겁을 하면서 정신을 차려보니 살아온 인생이 전광석화처럼 지나갔다. 그러고보니

'이번만' '이번만' 하면서 바친 기도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어려울 때마다 신을

찾았으면서도 그 때마다 약속은 지킨 적이 없었다.




기도를 마친 뒤 병원의 수술대에 올랐는 데 이번에는 의사들이 기겁을 했다.

암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 일은 韓목사의 생을 돌려놓고 말았다.

그러나 신과의 약속을 지킨다해도 천직이자 생업을 버리기가 쉽지 않았다. 

막상 직업을 바꾸려고 하니 앞이 캄캄했다. 당시 그는 속말로 '잘나가는 사람'

이었다.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예술 연구실장과

국립국악원장을 지냈고 미국 UCLA로부터 초청 교수 제의를, 5공 시절에는

국회의원 제의를 받은 명사였다. 달고 편한 일상을 떨치고 하느님 (하나님이 

맞겠죠?)의 아들이 된다고 생각하니 억울하고 암담했다.


부인은 "목회는 교수를 하면서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이혼을 담보로 한

협박에 가까운 설득을 했다. 아끼는 사람들은 "국악과 문화계의 손실"이라며

만류했다. 그러나 '살려주시면 덤으로 살겠다'는 기도로 기적을 체험한

그로서는 끝내 약속을 저버릴 수 없었다. 87년 서울 대림동의 아세아신학대학원에

들어가 89년 6월 목사 안수를 받았다.

韓목사의 알 수 없는 인생역정은 그의 전공에서도 엿보인다. 배타적인 종교로

알려진 기독교인이 불교음악의 대가가 된 것이다. '한국불교음악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88년 일본 오차노미즈대학)한 韓목사는 1년이 넘도록 절에

기거하며 범패와 영산회상(靈山會相)을 연구, 우리 불교 음악의 이론적 기초를

다졌다.



"기독교가 영의 문제를 다루는 반면 불교는 정신의 세계에 가깝다"는 그는

자신의 신앙이 학문으로서 불교를 다루는데 장애가 되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韓목사가 요즘 관심을 쏟는 분야는 해외 선교다. 신도 2천여명의 교회에서

20명이 넘는 선교사가 파견됐다. 구공산권에 대한 선교붐을 타고 모스크바의 

목회활동이 유행하고 있지만 아무도 안들어간 시베리아의 노보시비리스크에

신학교를 설립했다.

그러나 환갑인 韓목사는 피아노 앞에 앉으면 아직도 소년이다. 전직에 대한

여운일까, 아니면 타고난 '끼'일까. 그의 작은 교회에는 7개의 합창단외에도

국내 초유의 국악선교단과 무용선교단이 있다. 또 피는 속일 수 없는 것인지

두 아들이 국악이론을 전공, 대학강단에 섰다. 그를 앗긴 국악계에 대한 신의

배려와도 같다.

                                                        [정XX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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