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MinKyu (김 민 규) 날 짜 (Date): 2003년 11월 17일 월요일 오전 10시 55분 10초 제 목(Title): Re: 네로를 변호함 (by staire) 네로를 변호한다는 글의 취지에는 별 이견이 없는데요, 몇가지 사소한 점에서 제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것이 있네요. 제가 참고한 책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와 프리츠 하이켈하임이란 사람이 쓴 로마사 (물론 번역판)입니다. 1. 클라우디우스의 죽음 로마인 이야기와는 달리 (사실 여기서도 자세히 보면 단정적으로 서술하고 있지는 않음; "... 클라우디우스에게 독버섯을 먹였다고 역사가들은 말한다."), 하이켈하임의 로마사에서는 그가 독버섯을 먹고 죽었다는 이야기는 적대적인 전승 (아그리피나의 대적 대 플리니우스)에서 유래했으므로 신중하게 받아들여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p.648) 2. 음유시인 세네카 보통 세네카에 대해서 말할 때에는 철학자라고 하지 않나요? 3. 네로 이후 네로의 죽음이 큰 혼란을 불러온 것은 사실이지만, 네로 이후가 바로 부패한 '군인황제' 시대가 되느냐는 좀 의문입니다. 이것은 fact의 문제가 아닌 해석의 문제이니까 맞다 틀리다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흔히 로마의 전성기라 불리는 오현제 시대가 네로가 죽은 지 약 30년 후에 시작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로마의 부패가 네로의 죽음과 더불어 시작되었다는 것은 좀 무리가 있는 해석이 아닌가 싶습니다. 네로 사후의 혼란은 곧 베스파시아누스에 의해 수습이 되었고, 인용하신 글에 묘사되는 모습은 콤모두스 사후의 혼란기에 해당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로마가 후기에 가면 권력의 무게중심이 군대로 옮겨간 것은 사실이겠지만, 네로 사후에 급속히 일어난 것이 아니고 일련의 과정을 거쳐 서서히 일어난 것 같습니다. 제 결론은, 인용하신 글에서 네로가 쿼바디스(이건 사실 역사서가 아니고 소설일 뿐이죠) 에서 공정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라는 점과, 티베리우스나 클라우디우스 등의 모습이 초기 기독 교회에 의해 왜곡되었다는 점은 제가 읽은 책 내용과도 일치하는데, 반면에 네로의 죽음이 로마 쇠망(인용하신 글에서는 쇠망이란 말은 안썼지만, 그런 의미라고 제가 해석했읍니다.)의 계기라고 하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사족: 교회에서 부르는 찬송가 등에 '병정', '승리' 등의 말이 자주 나오는 것도, 로마에서 공인받은 계기가 전쟁(콘스탄티우스가 집권하는 과정의 내전) 이다보니 그렇게 된 것인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