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181818) <220.75.17.46> 날 짜 (Date): 2003년 2월 12일 수요일 오후 01시 51분 13초 제 목(Title): Re: 궁금한 거 하나. 개요 BC 1세기∼AD 1세기에 사두가이파(派)와 함께 세력이 컸던 유대교의 일파. 본문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율법의 세목(細目)까지도 철저히 지킨다는 형식적인 순수함을 근거로 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들을 우월적(優越的)으로 분리시켜 특수층으로 자처한 사람들이다. 그리스 시대의 경건주의자인 하시데아(하시딤)파(派)를 계승 ·발전시킨 일파로 알려졌다. 신약성서 시대에 바리사이(바리새)파는 사두가이(사두개)파와 갈등을 빚고 있었는데, 그것은 사두가이파가 천사나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고 구비전승(口碑傳承)도 부정한 데 반하여, 바리사이파의 가르침은 율법과 동시에 구비전승에 바탕을 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육체의 부활이나 천사의 존재 등을 믿었는데, 이런 내용들이 모세 오경(五經)에 분명히 언급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후대의 저작들과 구비전승에서 그 원천을 찾으려 하였다. 윤리면에서 바리사이파는 안식일을 엄격히 지킬 것과 십일조(十一租) 등을 가르쳤다. 이들의 엄격함과 결의론적(決疑論的)인 가르침은 때때로 참된 신앙심을 깨뜨리는 형식주의에 빠지기도 하였다.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이스라엘이 망한 후에 그들은 유대인들 사이에서 영향력 있는 집단으로 남았다. 그 후 몇 세기 동안 그들은 유대인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데 주역을 담당하였는데, 후대의 랍비들은 바리사이파를 이스라엘 율법과 전통의 진정한 옹호자로 찬양하였다. 《탈무드》의 랍비들은 바리사이파의 정신적 후예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이나 예수의 비난의 적(的)이 되었다. 예수가 바리사이파의 율법적인 전통의 많은 부분을 거부하고(마르 7:1∼23), 사람들을 그 무거운 짐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여 주어(마태 11:28∼30), 그들에게 율법의 보다 심오한 의미를 가르치고자(마태 5:20∼48), 형식적인 신앙을 통렬히 비난하고(마태 6:1∼18, 23:5∼12), 예수 자신으로부터 구원이 성취되리라고 가르친(마르 10:45) 사실 등은 바리사이파와의 갈등을 불가피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결국은 혹세무민(惑世誣民) 죄목으로 십자가에 처형되는 운명을 자초하였다. 이 갈등은 예수의 사망 후 초대 교회신도들과 바리사이파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